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셨는지? 영화 속 주인공 글리슨은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 행복했던 과거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해변가. 이들 부자는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관객은 일상에 숨겨진 소소한 행복이 있음을 스크린에서 깨닫게 된다.
나의 <어바웃 타임>을 헤아려본다. 지난날이 눈앞에 스르르 펼쳐진다. 문득 흐릿한 장면이 떠오른다. 노을에 잠긴 바다와 따스한 겨울 햇살, 남녘 달마산의 절경이 보인다. 맑은 풍경소리에 실린 아이들의 웃음이 들려오고 젊은 아내의 붉은 입술과 환한 미소도 보인다. 그래, 그런 날이었어. 오래전 미황사를 찾아갔었지.
달마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미황사는 고즈넉한 산사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포근한 햇살을 안고서 땅끝 해남으로 향했다. 봄날 같은 초겨울 날씨 때문이었을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하는 너그러웠다. 땅끝 해남은 가수 정태춘이 노래한 '시인의 마을'이 있을 것 같은 땅이다.
단풍이 짙은 가을이었다. 나는 교사 불자 일행들과 서산 지역 불교 유적지 답사에 동참했다. 이름난 마애삼존불을 관람한 후, 다음 여정으로 보원사 폐사지로 이동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자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앉아서 도시락을 꺼냈다.
식사가 끝날 때였다. “지금부터 15분을 줍니다. 숨겨둔 보물을 찾으세요.” 인솔 팀장이 외쳤다. 추억의 보물찾기 시간. 허리 구부정한 노보살님도 풍채 좋은 거사님도 분주히 발을 옮기며 돌멩이와 수풀 사이를 헤매기 시작했다. 십여 분가량 지났을까. 허공에서 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동심에 빠졌던 일행들이 서둘러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보물 찾기였다. 역시 이날도 나는 빈손이었다. 반면에 행운의 보물을 찾아낸 이들은 아이들처럼 들떠있었다. 뒤편에서 빗물을 훔치고 있던 보살님은 무려 세 장이나 찾았다며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와 좋겠습니다. 부럽네요. 저는 못 찾았어요”라고 푸념하자 그분은 내게 선뜻 한 장을 건네는 것이었다. 종이에는 미황사 가족 1박 2일 템플스테이가 적혀 있었다.
며칠 후 그곳 종무소에다 전화했다. 보물 찾기에서 미황사 템플스테이 경품을 받았노라고 조심스레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당연히 오셔야죠. 우리 절이 보물이잖아요”라는 말과 웃음이 들려왔다. 그는 곧이어 가능한 템플스테이 날짜를 물었다.
실은 미황사는 대학 시절에 한 번 들렸던 곳이다. 당시에는 대웅전과 요사채만 덩그렇게 있었는데 달마산의 절경과 무리 지어 서있는 부도탑이 인상 깊었다. 마을 어르신이 말하는 미황사의 내력은 신비로웠다. 먼 옛날 천축국에서 출발한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땅끝에 도착했는데 그 배에서 내려온 소 한 마리가 지금의 미황사 터에 주저앉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그 자리에다 세운 절이 지금의 미황사라고 했다.
늦은 오후, 우리는 들뜬 표정으로 미황사 일주문에 들어섰다. 종무소 보살님의 환대는 따뜻했다. 심지어 별도의 온돌방을 마련해 주었다. 아내는 방바닥이 따끈하다며 호들갑이고, 아이들은 손에 과자를 들고서 절 마당을 돌아다녔다.
공양간에서 식사를 마친 후, 경내를 서성였다. 하늘가에는 어둠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어느 거사님이 ‘여기 올라와서 보라’는 외침이 들렸다. 대웅전 계단 위에 올라 남쪽 바다를 바라보니 오~ 놀라워라. 허공에 진홍빛 홍시가 툭하니 터졌나. 뉘엿뉘엿 지는 태양을 품은 붉은 낙조가 하늘과 땅에 번지고 있었다. 나는 감탄사만 토할 뿐 말이 끊어졌다. 아내와 두 아이 얼굴에도 노을빛에 젖어 있었다.
저녁 예불 시간에 아들과 의식을 참여했다. 어둠이 커튼처럼 자락을 펼친 산사의 독경은 열락에 잠기게 했다. 다들 따끈한 방바닥에 등을 댄 채 ‘좋다’를 연발하고 있는데 주지스님께서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주지실에는 금강스님이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계셨다. 스님은 우리에게 미황사가 진짜 보물이라며 차를 따라주었다.
그날 밤 풍경소리를 벗 삼아 잠을 청했다. 미명이 피어나는 새벽녘 도량석에 눈을 떴다. 아침 예불을 드리면서 내가 받은 모든 것에 감사를 올렸다. 종무소에 감사의 인사하고 일주문에 나설 때는 햇살이 높았다. 미황사에서 열렸다는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CD를 들으며 완도대교로 방향을 잡았다. 차 안에는 피아노 선율이 아늑하게 맴돌았다.
다시 눈을 뜬다. 미황사와 땅끝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벌써 이십 년 전 일이다. 어느새 시간은 휘리릭 흘렀고 아이들은 취업과 결혼으로 집을 떠나갔다. 그 세월 동안 우리 집도 여타 가정처럼 희로애락의 파도에 출렁이곤 했다. 때론 난파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 험한 물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들의 힘이었다. 어느새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그날의 미황사 템플스테이는 작지만 소중한 내 삶의 <어바웃 타임> 가운데 한 순간이었다.
“사랑은 완벽함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살아내는 일이다” 영화 속 대사이다. 불현듯 '살아내는'이란 단어가 마음에 꽂힌다. 그래! 알겠다. 내 생의 가족과 살아냈던 그날들이 진짜 보물이란 사실을. 올가을 단풍 고운 날, 초로의 아내를 데리고 미황사를 다시 찾아보련다. 혹시 알겠는가? 또 다른 나의 <어바웃 타임>이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