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으로 빛나는 땅

정유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by 박신호

호모 사피엔스는 걷는 존재이다. 걷지 않는 인간에게는 영적, 육체적 병증이 늘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산책과 순례가 영혼을 위한 걷기라면 여행은 감각을 위한 충실한 발걸음이다. 먹고, 마시고, 듣고, 보고, 수다를 떠는 낯선 경험과의 조우. 그것이 여행이다.


몇 해 전부터 아내와 유럽 여행을 목표로 주식을 시작했다. 피 같은 용돈을 종자 삼았기에 수익이랄 것도 없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이제는 아나톨리 반도의 튀르키에 정도는 갈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었다. 머잖아 로마, 피렌체, 파리와 같은 도시의 거리를 종일 걸어 다닐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더불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와 같이 여행 소감을 책으로 남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장유진 작가의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복지의 유토피아 핀란드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여행수필이다. 핀란드는 자일리톨, 사우나, 노키아, 산타 마을, 시벨리우스 등의 나라로 기억한다. 그곳은 평화로운 백야가 천지를 감싸는 고요한 땅이자 북유럽의 강건함과 명상적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느림의 땅이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내게 핀란드는 교육으로 먼저 다가왔었다. 그곳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때였다.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핀란드 교육은 무지개와 같은 환상이었다. 당시 핀란드 교육에 관련된 자료를 보면서 느꼈던 자괴감이랄까 절망감이 생각난다.


몇 해 뒤, 핀란드를 무대하는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2007년 개봉작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 식당>. 영화가 끝나자 주인장 사치에와 미도리가 차려 준 정갈한 요리와 커피를 찾아서 미지의 핀란드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인간의 역사는 기본적 삶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혁명과 반란의 근원을 추적하다보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과 만나게 된다. 핀란드는 이러한 삶이 가능한 국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르게 국가의 부가 분배된다는 복지 국가 핀란드.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공산주의는 소비에트가 아닌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에서 실현되고 있다


“얼마나 소유한 상태로 태어났는지에 관계없이 이 세상에 나온 순간, 누구나 기본적인 것들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한다는 생각.”-106쪽


낯선 단어를 만났다. 15년 만의 리유니언. 리유니언? 검색해 보니 다시 가족을 만나는 것이라 적혀 있다. 정류진 작가는 2008년 핀란드 쿠오피오 대학에서 교환 학생 시절을 보냈던 시절의 벗 예진과 함께 2023년에 핀란드를 다시 찾아간다. 한데 이들의 버킷리스트가 단출하다. 고작 자전거 타기와 호수 구경, 대학 구내식당에서의 밥 먹기가 전부라고 하니 핀란드는 관광이 아닌 여행에 제격인 나라인가 보다.

핀란드는 거대함보다는 소소함이 빛나는 곳이다. 더운 열기가 아닌 스산한 날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수개월 동안 지속되는 환한 저녁, 북쪽 허공에서 용처럼 날아다니는 오로라. 이곳은 음악마저 흐린 겨울날이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풍기는 서늘한 고독이라니. 그것은 북국의 정취이다.


“핀란드의 겨울은 유독 춥고 어두운 데다 심지어 길기까지 하기 때문에 ~ 그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섭리가 있다. 그건 당연하게도, 겨울이 끝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핀란드의 겨울은 언제 끝날까?”-163쪽


북유럽은 북극에 가까운 땅이다. 당연히 그곳에 사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밝음과 열기에 대한 욕망은 깊으리라. 이들에게 사우나는 단순한 힐링이 아닌 생존의 수단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혈액 순환이 목표인 일본의 온천 문화와 달리 핀란드의 사우나는 긴 겨울을 이겨내는 생명 시스템이라 하겠다. 작가는 핀란드 사우나 체험을 읽어보자.


“나는 물을 끼얹었다. 치익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났고 천장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면서 점차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이때 순간적으로 위쪽이 굉장히 뜨거워지기 때문에 아래로 미리 내려와 앉아 있거나 가장 뜨거운 부분인 귀를 감싸곤 했다.”- 289쪽

책은 ‘캄피’ 침묵교회와 ‘템펠리우스’ 암석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침묵과 신앙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침묵을 잃은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책을 읽은 후 동영상으로 보게 된 침묵교회는 묵직한 골방을 닮았다. 깊은 침묵에 잠기면 그분의 음성이 들릴 것만 같다. 템벨리우스 암석교회는 야외를 실내로 들어놓은 듯한 기도처였다. 문득 목포에 있는 디아코니아 자매 교회가 떠 올랐다. 그곳 예배당 천장에서 쏟아지던 빛살은 얼마나 신성했던가.


책을 덮고서 눈을 감아본다. 쫓아오는 순한 여름 햇살을 등 뒤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가문비나무 숲길을 지나 투명한 호수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잠시 후 길옆 벤치에 앉아 무심하게 책을 펼친다. 점심은 카모메 식당에 가서 빵과 커피를 주문한다. 그곳 주인장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침묵교회에 가서 진리의 말씀을 묵상한다.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오면 숙소에 돌아가 낮은 조명 아래 시벨리우스의 1번 교향곡을 듣다 보면 어느새 깊은 잠에 들것이다. 내게 하늘의 허락이 있어서 핀란드에 머무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하루를 보내련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믿으며 오늘의 주식 현황을 살펴본다. 기분 좋은 붉은색이다. 조금씩 나의 반짝이는 계절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그곳에 가면 느리게 느리게 해찰하듯 거리를 다닐 것이다. 백야의 계절에 향긋한 자이리톨을 씹으며 오로라를 바라보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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