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데우스를 다시 관람했다. 대학 시절 보았으니 벌써 40년 전 일이다. 포스터에는 리마스터링이라 적혀있다. 쉽게 말해 재개봉이란 뜻이다. 영화는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만큼 명화의 위엄으로 넘쳤다. 스크린에 가득한 모차르트의 명곡들로 모처럼 귀도 호강했다. 대형 스크린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함은 웬만한 콘서트홀에 지지 않다.
영화 속 살리에르의 마지막 독백 장면은 압권이다. 고해 사제에게 모차르트를 자신이 죽였다고 고백한 살리에르는 후련한 듯 웃는다. 욕망만 있고 재능이 없는 자신과 천박한 성품임에도 타고난 천재성이 빛나던 모차르트를 비교하면서 수 없이 신을 저주했던 그였다. 살리에리의 일생은, 요절한 모차르트에 대한 죄책감과 열등감으로 점철되었다.
살리에르는 병원 곳곳에 뒹구는 환자들 바라보면서 자신은 모든 평범한 자들의 대변자라고 말한다. 순간 이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모차르트의 경박스러운 웃음이 들려온다. 영화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막을 내린다. 극장을 나서는데 모차르트의 경박함과 천재성을 질투하며 신께 저주를 퍼붓던 살리에르의 음성이 아련하다.
"불공평한 신이시여. 인간을 조종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불공정해. 나는 이제 당신의 장난질에 굴복하지 않아.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줬어야지, 이제부터 우린 영원한 적입니다. “
일반적으로 천재의 판별은 아이큐로 한다. 아이큐가 150 이상이면 천재라 한다. 물론 재기 발랄한 130도 많이 보았다. 1980년대 신문에 소개되었던 이 모 씨는 지능이 무려 200이 넘는다고 하여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의 다빈치의 경우는 250이 넘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나의 지능지수는 100이 살짝 넘는 평균에 해당하니 살리에르가 반가워할 것이다.
중학 시절 경태라는 친구가 있었다. 3년 내내 전교 일등을 독식하다시피 했는데 평균이 무려 99점이었다.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나와 경태는 담임 선생님 심부름으로 어딘가를 다녀왔다. 일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가 보니 학급 친구들 모두가 영어 교과서를 암기하고 있었다. 이것을 다 외워야만 하교가 허락된다며 짝꿍이 숨죽이며 말해주었다.
뒤늦게 책을 펴 들고 부랴부랴 외우기 시작했다. 다들 4쪽 분량의 본문 암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나와 같이 늦게 시작했던 경태가 담임 선생님 앞으로 가더니 줄줄이 외우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설마!!! 급우들은 경악했고 담임 선생님은 감동했다, 경태는 내게 손을 흔들면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이때 나의 기분은 살리에르와 비슷하리라. 훗날 친구 경태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고 재학 중 사법고시를 가볍게 통과했다.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몇몇 공모전에 입상하였고 브런치 작가라는 작은 명함도 얻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매주 한 편씩 대략 1.500자 분량의 글을 썼다. 하지만 못난 필력 탓에 글을 쓸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든다. 갖은 용을 써서 겨우 초고를 완성하더라도 민망하기 그지없는 내용에 낙담하곤 했다. 하여, 박녀를 미녀로 탈바꿈 시키는 성형전문의처럼 퇴고를 무한 반복해야만 했다.
세상에는 내공 깊은 글쟁이들이 수두룩하다. 도올선생은 하버드 대학 박사논문을 일필휘지로 한 달 만에 끝냈으며, 청년 유시민은 감옥에서 몇 장에 달하는 항고이유서를 머리로 구상했다가 단 한 번에 쭉~ 적었다고 한다. 퇴고 없이 말이다. 또 소설가 김훈은 어떠한가. 그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은 미학적으로 수려하고 서사는 탄탄한다. 한데 이 소설이 작가의 첫 작품이니 말문이 막힌다. 역시 신은 편애를 하는가 보다.
국어 교사로 삼십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건만 문학은 먼나라였다. 나의 독서는 설명문이나 논설문 위주였다. 문학에 눈을 뜬 것이 겨우 몇 해 전에 불과하니, 미문(美文)에 대한 욕심은 언감생심이라 하겠다. 닮고 싶은 작가들이 한둘이랴. 공지영, 천명관, 이문열, 정지아, 박민규, 이문구와 같은 소설가를 필두로, 최민자, 장미숙과 같은 수필가, 나희덕, 정호승, 서정주, 안도현, 박노해 같은 시인도 경외하고 있다. 이뿐이랴, 유홍준과 류시화의 지적인 글은 점입가경이 아니던가.
세상은 넓고 필력이 출중한 이들은 많다. 지난 이 년 간 연말이 되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글을 보내곤 했다. 만용이었다. 물론 한심한 글임이 밝혀지는 현타와 마주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이름난 글쟁이들의 절차탁마 과정을 보니 젊은 시절 그들의 몸부림은 눈물겨운 수련의 연속이었다. 나와 같은 늦깎이가 미문의 필력을 탐낸다면 도둑심보와 다름없으렷다.
선가에서 화두를 뚫는 방편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 단박에 깨친 후, 할 바가 없다는 ‘돈오돈수’와 깨우친 이후라도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돈오점수’가 그것이다. 용맹정진한 수행승이 아니고는 답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를 글쓰기에 대입하자면 나의 필력은 아무래도 ‘돈오’와는 거리가 멀다. 돈오돈수는 친구 경태나 모차르트에나 해당될 것이요. 나 같은 평범한 부류는 차근차근 성품을 닦아야 하는 "점수(漸修)"가 제격이다.
평범한 이가 모차르트 부류의 천재와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다. 그저 성실이라는 꾸준한 수련 자세가 나의 무기임을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살리에르~여, 절망하지 말자. 천재는 천재답게. 평범한 장삼이사는 분수껏 무던하게 살아가면 될 일이다. 다만 전능한 신께서 간혹 평범한 이들에게도 작은 윙크라도 보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자는 것. 정답은 아모르파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