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盛夏)의 계절이다. 며칠간 퍼붓던 비가 멈춘 여름 하늘. 이번에는 습하고 더운 열기가 지상으로 연일 하강 중이다. 오후 무렵 송광사를 찾은 것은 폭염 속에 맞이한 삼일 간의 연휴가 소중한 탓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섬진강 맑은 바람을 영접할까 하다가 출발 시간에 삼보사찰 송광사로 방향을 잡았다. 이유도 없이. 그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보자. 경쾌하게 시동을 켰다.
불현듯 송광사가 떠오른 것은 해 질 녘 산사의 예불 소리가 그리운 까닭은 아니었을까. 사하촌에 주차를 한 후, 매미 소리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8월 정오의 햇살은 장대했고 열기는 강했다. 산사 입구에서 십여 분 정도 걸었을까? 머리와 이마, 뒷덜미와 등짝으로 땀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번져 가는 땀의 영역은 손수건으로 처리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때마침 찻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땀과의 휴전을 위해 그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빨간 목탁이란 상호의 찻집이었다. 빨강과 목탁이라... 난해한 조합이다. 찻집은 흙으로 빚은 예쁜 컵들과 쟁반들이 볼만한 운치 있는 공간이었다. 땀을 닦으면서 냉 오미자차를 주문했고,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차의 냉기로 몸의 열기를 빼 낼 궁리를 했다. 그 순간에도 땀은 쉼 없이 뺨과 귓바퀴와 목덜미로 흘러내린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이윽고 주문했던 냉오미자 차를 한 모금 들이킨다. 달짝지근한 오미자의 냉풍이 기도(氣道)와 식도(食道)에 퍼져간다.
짐작하다시피 나는 땀이 많은 체질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닮아서 그런 것이라며 미안해했다. 대학 시절에는 ‘물차’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방학이 가까운 초여름. 전공 수업은 9층 강의실이었다. 901 강의실까지는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으로 다녀야 했다. 문제는 건물의 층고 간격이 8미터였다는 점인데, 보통 아파트 높이로 치자면 20층쯤 될 것이다. 아무튼 솟아나는 땀에 시달리다 901 강의실 문을 열때면, 자존심 머리를 꼿꼿이 세운 덕희가 "소나기라도 맞았냐"며 측은한 눈빛으로 맞아주었다.
땀이 많은 체질이다 보니, 습한 날씨에도 고슬고슬한 피부를 가진 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건조한 이들은 나와 같은 다습한 이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건조인 들은 이런 날, 무슨 에어컨이냐며 타박하기 일쑤였고 때로는 긴 팔 차림으로 나타나 더위에 힘겨워하는 다한(多汗)인들의 기를 죽이곤 했다.
찜통더위를 욕하다 못해 지구 이상 기후를 염려하는 요즘이다. ‘대’프리카와 ‘광’프리카라는 말이 들려오고 한반도의 여름 날씨가 자신의 고향 못지않다고 말하는 동남아노동자의 푸념도 들었다. 남녘 어느 마을에서는 바나나와 망고 재배는 물론이요, 야자수까지 자란다고 하니 머잖아 이모작 농사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하니 이것은 축복인지 재앙인지 아리송하다.
십 여 전 8월이 생각난다. 강진에 있는 남녘교회에서 열린 여름 풍경소리 모임에 참가했다. 3박 4일 동안의 프로그램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둘째 날 오후였다. 진행자가 한나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 안의 하느님을 만나 보자고 제안했다. '한나절', '여유'와 같은 말이 바람처럼 들렸다. 나는 푸르름이 가득한 남녘의 대지를 찾고자 차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무위사로 향했는데, 얼핏 ‘무위’라는 단어와 하느님 사이에는 통하는 의미가 있을 듯싶었다. 그렇게 무위사를 다녀왔고, 강진 읍내에서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까지 먹었다.
일행들이 다시 예배당에 모인 것은 한낮의 열기가 잦아들던 늦은 7시였다. 각자 보낸 오후를 주제로 나눔을 갖기로 했다. 다들 앉은 순서대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의 차례가 되자 인근 무위사를 찾았다는 것과 무위(無爲)가 하느님이라는 생각을 했노라며 말했는데 허세에 가까웠다. 다들 앉은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었고 머지막 차례는 김복관 할아버지였다.
김복관 옹은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서 말로만 들었던 씨알 농장 세대라고 했다. 여든이 넘은 연세였고 비쩍 마른 앙상한 노구였다. 늘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김복관 할아버지는 자신이 보낸 오후를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냥 방에 보냈습니다. 이 날씨에 비지땀 흘리는 농부를 생각해서 선풍기를 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 비해서 햇볕이 내리쬐지 않은 방 안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서요."
말이 끝나자 예배당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그날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TV에는 폭염에도 정장 차림을 한 이들이 곧잘 등장한다. 대부분 잘 나가는 대기업 임원이거나 고위직 종교인,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도 더위가 무섭지 않다. 그들의 여름은 24시간 내내 냉기가 가득하다. 그들은 모르리라. 무더위가 무서운 대낮에도 헬멧의 쓴 채 도로를 주행하는 배달원과 공사장 상판의 뜨거운 열기 위에 서 있는 노동자와 불기운 앞에서 웍을 돌리는 중국집 김 씨의 고뇌를.
산사의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나 또한, 더위에 싸우는 생활인이 볼 때는 신선놀음 같으리라. 모름지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자들은 대개 땀을 모르는 부류들이다. 땀의 고뇌를 알지 못하는 것들, 불한당(不汗黨)이란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녁 예불이 끝난 절집에는 정적이 맴돈다. 오늘도 땀을 꽤나 흘렀지만 그냥 자연현상일 뿐. 오히려 살아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게다가 '불한당'도 아닌 것 같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