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7시부터라고 했는데, 환한 불빛 너머로 많은 이들로 가득하다. 어리둥절하니 조심스레 문을 열고서 두리번거린다. 건너편 낯익은 얼굴이 빈자리를 가리키며 손짓한다. 겨우 의자에 앉고 보니 마리아 선생과 학생들이 합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벽면에는 '날다 종강식 6시부터'라는 글이 보인다. 아뿔싸! 착각했네. 그제야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
오늘은 '날다' 학생들이 일 년간 살았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날이다. 십여 년 전쯤, 마리아 선생이 도심형 대안학교 날다를 꾸리기 시작한 후로 드문드문 이곳과 인연을 맺어왔다. 칠 년 전에는 날다 학생들과 지리산 실상사에서 농사 체험을 했고, 올여름 방학 때에는 재능기부 형식으로 검정 대비 국어수업을 몇 차례 진행하기도 했었다.
날다 학생들은 고작 4~5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내 삶의 이야기는 어떤 학교보다 블록버스터급이며 드라마틱하다. 대부분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이다 보니 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노고가 필요하다. 달래고 어르고 껴앉고 꾸중하고 이들을 세상에 안착시키기 위한 날다 선생님들의 땀은 귀하다. 그 가운데서도 날다를 이끌어가는 마리아 선생의 노고를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하여튼 내 실수로 지각한 것이니, 저녁 식사는 건너뛰기로 했다. 합창이 끝나자 연극이 펼쳐진다. 어설픈 무대지만 연기하는 학생들이나 관객들 모두 진심이어서 보기에 흐뭇하다. 곧이어 학생들을 지도했던 선생님들이 지난 일 년간의 수업을 소개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요가, 영어, 한국사, 수학, 목공예, 음악, 미술, 심리상담 선생님까지 준비해 온 소품까지 동원하면서 설명에 여념이 없다. 교사, 학생, 학부모, 축하객들이 어울린 종강식은 떡케이크 나눔과 공동체 놀이로 마무리되었다.
종강식을 보면서 겨울 밤하늘의 별빛을 생각했다. 꽁꽁 얼어붙은 땅과 어깨가 움츠려드는 한겨울. 그 위로 펼쳐진 숱한 작은 별무더기. 날다의 종강식은 서녘 하늘에 흐르는 맑은 빛살과도 닮았다. 그네들이 애써 만들어내는 풋풋함.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날 것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근엄한 꼰대의 장광설이나 모범 학생도 성적우수 학생도 없는 종업식은 첨가물 없는 순결한 자연식이다. 참석한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날다의 별빛은 쌀쌀한 마음을 비추는 환한 아름다움이었다.
마리아 선생의 소개로 인사말을 하게 되었다. 별 수 없이 뻘쭘 하니 일어나서 '학교에서 있다가 다시 학교로 왔다'라고 했다. 내가 근무하는 제도권 고등학교와 제도권 밖 날다 학교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나는 인사말의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종강을 보았으며 열등감을 느낀다고 했다. 왠, 열등감? 서른 해가 넘도록 교사로 살아왔거늘, 이 순박한 향연에서 열등감을 느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날다의 종강식이 내게 준 화두라 할까. 그 이유를 꼽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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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스멀스멀 다가오던 96년. 마침내 소망하던 교사가 되었다. 젊은 새내기 교사로서 한동안 선생된 자의 바른 지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쏟아지는 공문들과 회의와 평가에 매몰되면서 그냥 교육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민원을 두려워하고 가르침보다는 그저 하루가 무난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그렇고 그런 교사가 되었다는 말이다. 수시로 변하는 교육제도와 대학 입시 구조, 갈수록 복잡해지는 나이스 업무에 불평하는 노교사. 퇴임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하다.
모처럼 고3 담임을 맡았던 일 년이었다. 학생 수도 적고 추천서나 자기소개서도 사라진 진학 지도는 과거에 비해 부담이 없었다. 담당했던 고전문학과 심리학이 진로 선택 과목이란 이유로 학생들은 대놓고 책상에 엎드렸다. 배움이 사라진 교실에서 외로웠다. 9월 수시 지원이 끝난 후부터는 수능 과목으로 선택한 학생들 몇몇만이 교재를 펼치고 있었다. 마침내 수능시험이 끝나자 고3 교실은 삭막한 황무지로 변했다. 가르침과 배움이 사라진 교실은 거대한 대기실이자 대학으로 가는 환승구에 불과했다.
엊그제는 후배 교사한테 '대체 뭔 짓인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국민신문고라도 알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투덜댔다. 한참 세상을 익혀야 할 19세 아이들이 고작 노숙자처럼 지내는 현실에 푸념을 내뺕은 것이었다. 이러한 수능 이후의 고3 풍경은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실은 대학 합격 소식에만 간헐적으로 꿈틀대는 무기력한 연체동물로 전락했다. 오늘도 교실은 서울 지역소재 대학교에 극적으로 합격했다는 학생 소식에 잠시 꿈틀거렸다. 그것뿐이다. 이미 십 년도 훨씬 넘은 오래된 광경이다.
수시,정시 통합과 수능 시험이 한 달가량 늦춰지기를 바라지만, 대학이 정한 입시 일정은 도도한 황하처럼 누렇게 흘러갈 뿐이다. 그러니 방하착.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뭐라도 해볼 테면 학생들은 자율을 들먹일 것이고 학부모는 민원을 만지작 거릴 것이다. 관리자들 역시나 책임을 질 수 있냐고 반문한다. 교육청은 어떠냐고요? 이념에 저당 잡힌 교육은 선전물로 변질되었다. 결국 내려놓을 수밖에. 그저 정해준 매뉴얼을 따르는 것만이 교사로서 살아가는 길이니 쓸데없는 수고로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청소년 공간 날다 학생과 교사들도 종강식을 끝으로 겨울 방학에 들어갈 것이다. 물론 틈이 생길 때마다 노니닥거리는 만남을 이어 가겠지만. 어쩌면 교육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이러한 배움의 노니닥거림이 아닐까 싶다? 무기력한 교실 공기에 질린 나로서는 노니닥거리며 북적대는 교실이 부러울 뿐. 이제야 날다 종강식에서 느꼈던 열등감의 정체를 알 것 같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데... 이길 도리가 없다.
교직 생활의 마무리가 다가온다. 그동안 내 눈을 마주했던 학생들의 눈빛을 떠올려본다. 과연 교육을 했던 것인지 호구지책에 충실했던 것인지 헷갈리는 요즘이다. 종강식이 끝난 늦은 시간,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돈 보스코 성인에게 이렇게 아뢴다. "청소년 공간 날다가 훨훨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살펴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