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광대, 시네마천국으로.

by 박신호

'한 시대가 끝났다.' 이런 말이 필요한 날이다. 여수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의 부음 소식을 접했다. 유명 정치인도 학자도 재벌도 아닌 죽음이건만 마음 한편이 별스럽게 숙연해진다. 이런저런 상념이 꼬리를 물고서 일어난다. 평생토록 딴따라 광대로 살아낸 그의 생애가 범상치 않게 느껴진 까닭이다.


영화인들의 애도라는 자막이 지나간다. 불현듯 그가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서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수줍게 말할 듯하다. 재작년 대중 앞에 나타난 그는 혈액암과 투병 중이라고 했다. 백발과 흐린 눈빛. 어색한 미소와 쉰듯한 목소리. 괜스레 찡해져 한동안 그의 얼굴을 골똘하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낯빛은 연약했고 머잖아 강 건너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의 구부정한 어깨 위로 숱한 영상이 지나간다. 철부지 스타를 뒷바리지 하던 매니저 민수, 번뇌하는 구도승 법운, 실미도 684부대장으로 대원들을 명예를 위해 고전분투 하던 최준위, 비지스의 할러데이 음악이 흐르는 스크린 속 냉혈 킬러, 무작정 경주를 찾아 길을 떠나던 천진무구 자폐아, 병태와 춘자를 데리고 길을 나선 걸렁뱅이 민우, 투캅스의 부패한 조형사. 오십 년간 팔색조 연기를 했었던 그의 편린이 기억의 영상기에서 후루룩 풀려갔다.


그의 미소는 푸근하다. 그것은 꾸며낼 수 없는 본래의 무늬였다. 그는 강동원이나 정우성과 견줄 수 없는 평범한 외모였고, 이병현, 송강호과 같은 출중한 연기파라는 평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국민배우라 칭송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이십 대 배달부 덕배에서부터 한산대첩에서 공을 세운 칠순의 광양현감 어영담까지. 그는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을 잃지 않았다. 예능프로, 드라마, 뮤지컬 등 여러 유혹에도 요지부동. 오직 스크린을 향해 직진했다. 우리 영화는 그의 선한 미소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며칠 전, 그에게 마지막 시간이 가까웠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날.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를 다시 보았다. 그날의 시청은 그를 향한 나만의 진혼제다. 첫 장면은 버스가 떠난 후의 흙먼지와 물기 머문 오솔길이 아스라이 펼쳐있었다. 그 풍광은 청춘시절 익히 보았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영상에는 파계승 지산 곁에 있는 승려 법운이 수묵화 같은 겨울길을 걷고 있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 속에는 그 시절을 살았던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90년 들어서 한국 영화는 일본영화 개방과 스크린쿼터를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만개했다. 그런 화려한 날이 오기까지 우리 영화는 지리멸멸했다. 우울했던 80년대, 별 볼일 없던 그때의 한국영화는 그의 선한 눈빛과 착한 미소로 견뎌냈다.


그동안 그가 등장한 영화를 25편가량 보았던 것 같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아역시절부터 출연한 영화 편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라고 나와있다. 우리 사회가 독재와 가난, 산업개발과 민주화,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그의 영화가 기록하고 있다.


그가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없었던 80년대 한국 영화는 나의 학창 시절과 궤를 같이한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의 한 자락에 그가 있구나 싶다. 한동안 우리 세대는 그를 그리워하리라. 더불어 한치의 잡음도 없었던 그의 삶의 기술도 헤아려보련다.


그의 파안대소하는 표정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 로빈 윌리엄스가 겹쳐 보인다. 맞다. 그는 우리 세대의 선생님이었다. 오늘 밤에는 그가 성년이 된 후, 주목을 받았던 작품 <바람 불어 좋은 날>을 감상해야겠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련한 80년대로 떠나보련다.


"굿모닝~ 안성기 선생님. 시네마 천국에 도착하셨나요. 우리의 광대여. 당신의 시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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