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부 지

by 박신호

생각할수록 한심스럽다. 지난 새벽 뱃속이 불편해서 뒤척거리다 결국 소화제를 찾게 되었다. 일본여행 중 구입한 것인데 효과가 좋아 애지중지하는 약이다. 야채 효소 추출물로 만들었다는 소화제를 두 알이나 삼킨 후 착잡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했다. 이순의 계절에 철부지처럼 과식이라니.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평소 아침 식사는 빵 한쪽과 찐계란 한 알, 과일 반쪽으로 다. 대신 점심은 넉넉하게 먹는 편이다. 문제는 항상 저녁식사 때 발생한다. 늦은 오후 시간에 먹게 되는 간식이 원흉이었다. 그날의 과식도 성당 모임 전, 반공기 밥을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회식이 예정된 모임이라서 식사가 필요 없었건만 빈 속에 마실 술을 대비한 자구책이었다.


모임이 끝나자 탁자 위로 노르스름한 치킨이 가득 펼쳐졌다. 위장은 마뜩지 않아했지만 이미 입 안에서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얼마만의 치킨이던가. 바삭바삭한 튀김옷의 파열음을 즐기며 집어삼켰다. 두세 조각이면 적당할 것을 대여섯 조각이나 먹고 말았다.(글쎄 더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딱 여기까지야'라는 뱃속의 충고는 곧이어 등장한 어묵탕 아래로 침몰했다. 식당 주인이 단골에게만 드린다면서 세수대 크기의 냄비에 어묵탕을 가득 담아 온 것이다. 정월의 늦은 저녁 시간에 따끈한 어묵이라..... 사양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위장의 마지노 선은 무너지고 있었지만 내 입은 여전히 어묵을 영접하고 있었다. 결국 회식을 마칠 때쯤 내 뱃속은 불벼락을 맞아버린 폐허로 변했다. 뒤늦은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이미 상황 종료. 늦은 시간의 참극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찌푸린 표정을 짓고는 멍하니 TV를 쳐다보았다. 불쾌한 배부름과 수렁에 빠져버린 내 영혼. 하루가 잿더미로 변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숱한 먹방 프로그램과 먹기에 바쁜 예능인들을 얼마나 조롱했던가. 비만한 몸으로 땀을 질질 흘리며 음식을 삼키던 그들의 식탐과 건강을 염려하면서 혀를 차곤 했다. 어떤 지인은 맛있는 음식도 먹고 돈까지 번다며 그들을 부러워했지만, 카메라 앞에서 죽어라 먹어야만 하는 그들의 처지가 딱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이해불가 먹방의 경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요리에 대고 스마트 폰시진을 찍어대는 문화였다. 인스타에 음식 사진을 올리는 요즘의 풍속도라고 했다. 입보다 눈이 먼저. 추운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난감한 미각처럼 내게는 요지경였다.


소식과 단식을 동경해 왔다. 위인들 가운데서도 단식의 아이콘 간디를 흠모했고(간디 작살!), 매주 정기적으로 간헐 단식을 한다는 지인을 존경하고 있다. 말기암에 걸린 스님이 단식을 통해서 스스로 목숨을 걷두었다는 풍문과 자발적 단식으로 100세의 생을 마감한 스코트 니어링의 삶은 감동 자체였다. 삶의 끝자락에 마지막 황혼이 밀려오면 곡기를 끊고 생을 정리하는 인생은 존엄했다.


문제는 이런 소식의 열망을 내 미각이 따라주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생각 따로 입맛 따로의 위선적인 감각이라 하겠다. 마음이 불편하면 업보가 남는다고 한다. 타다만 장작이 아닌 온몸을 내던져 남김없이 타버린 검은 숯덩이가 되어야 한다. 정직이란 이런 것이니. 결국 해법은 결단에 있다. 먹느냐 마느냐의 일차원적 딜레마를 언제까지 안고 살아야 되나? 영혼을 위한 감각의 조율이 절실한 시절이다.


얼마 전 8박 9일간의 단식피정 신청은 이러한 각오와 더는 철부지로 살 수 없다는 몸부림의 결과였다. 성경 통독을 병행하는 수도원의 단식으로 내 영혼에 환한 빛이 들어오기를 소망한다. 하여 다시는 소화제를 찾는 따위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으련다. 삶에 필요한 만큼의 군살 없는 근력으로 보내는 하루를 꿈꾼다. 이제 환갑도 지났으니 다시 한 살, 첫걸음이다. 두렵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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