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호랑나비

『생의 수레바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by 박신호

그녀의 두 자녀가 관 앞에 섰다. 그들이 하얀 상자를 열자 안에 있던 호랑나비가 훨훨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하객들도 제마다 받아 든 삼각 봉투를 열었다. 봉투마다 나비들이 나와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호스피스의 어머니, 죽음학의 대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렇게 나비가 되었다. 2008년 8월 24일이었다.


그 해 겨울, 강진에 있는 남녘교회로 향했다. 3박 4일 동안 생애 첫 단식 장소였다. 언제나 막연하게 단식을 동경했었다. 풍요와 충돌하는 의도적인 허기. 몸속의 독소 배출과 맑아진 뇌와 피, 청정한 세포가 가져다주는 내적인 충만. 이러한 단식의 효능에 대한 풍문은 사막에서 만나는 푸른 오아시스처럼 유혹적이었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남녘교회의 첫인상은 교회도 단식을 하나 싶을 만큼 소박한 건물이었다. 게다가 ‘남녘’이라는 명칭도 예사롭지 않았다. 작지만 예쁜 거울이 교회 입구에 걸려 있었다. 그 거울은 자신의 영혼을 비춰보라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거울 속의 바라보니 얼굴이 무척 까칠했다. 일부 목사님과 먼저 도착했던 마리아가 빙그레 웃으며 맞아주었고 낯선 어린 학생도 내게 꾸벅 인사했다. 함께 단식에 참여할 전우들이다. 그나저나 저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꼬맹이가 단식을......!!


첫 끼니가 조용히 지나갔다. 밖에는 정월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번 단식에는 프로그램이 없다. 무작정 아홉 끼니를 섭생하지 않는 것만이 목표이다. 단식 전 준비, 요가와 같은 워밍업도 없다. 그냥 굶기로 했다. 그것도 가급적 침묵 속에서. 마리아와 어린 학생은 침묵을 깨고 공기놀이에 빠져 있었다. 목사님도 컴퓨터 앞에서 작업 중이다. 주보를 만드신 보다. 나는 심히 적적했다. 허기보다는 는 무료함이 더 문제였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어슬렁대며 동네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곤 다시 교회에 돌아와서 일부님 서재에 있는 몇 권의 책을 뒤적였는데,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단식 중에는 이런 제목에 끌리기 마련이다. 책 제목은 『생의 수레바퀴』였다. 작가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작가의 긴 이름이 머릿속으로 쏙 하니 들어왔다.

“우리가 지구에서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다.”


책 앞부분에 수록된 내용이다. 저자 엘리자베스는 우리의 삶은 배우기 위해서 존재하며, 지상에서의 삶은 오로지 영혼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고도 했다. 견뎌내는 삶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팔자 좋은 삶도 결국은 성장을 위한 여정일 뿐이라고... 책의 흡입력은 대단해서 서서히 그녀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생의 수레바퀴』는 저자의 자서전이다. 스위스에서 세 쌍둥이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2차 대전 직후 폐허가 된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봉사를 한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의사가 된다. 그녀는 중환자들의 죽음을 가까이 보면서 죽음학이란 신세계로 들어갔다. 엘리자베스는 임사체험자과의 인터뷰, 대중과의 워크숍 등으로 죽음학의 영역을 넓혀간다. 마침내 그녀는 죽음과 영혼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죽음이 결핍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고통이 없는 이상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 임을 강조한다. 책에는 사후에 우리가 신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너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어떤 봉사를 했는가?” 이런 물음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망연자실해진다. 신서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틀림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것만 같다.


엘리자베스는 중년의 이혼과 노년에 연이어 닥친 화재와 뇌졸중이란 불행을 겪는다. 하지만 그녀는 불행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삶을 보여주었다. 그 어떤 불행도 그녀의 사랑의 실천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죽음과 영의 신비를 과학과 사랑의 차원으로 상승시킨 영혼의 실천가였다. 엘리자베스는 고통이란 영혼의 성장을 위한 학습 과정임을 삶으로 증명했다.



『생의 수레바퀴』의 키워드를 정리해 본다. 오직 사랑만이 전부이다. 우연이란 없다.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장이다. 과제를 다 배우고 나면 고통은 사라진다. 모든 문장마다 되새김이 필요하다. 또 채널링, 영계의 통신, 요정의 증거 등 신비한 현상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체험은 흥미로웠다. 책을 읽어보니 예수의 부활도 물질적으로 가능했을 것 같았다. 의심 많은 제자 토마스에게 나타난 예수께서 그에게 자신의 상처를 만져보라 했다는 유명한 성서의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3박 4일 동안, 단식과 『생의 수레바퀴』읽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단식 둘째 날 저녁에는 천일염을 녹인 물을 무려 일곱 컵이나 마셨다. 그 결과는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후 화장실을 여러 차례 간 것에 대하여 굳이 말하지 않겠다. 아무 몸의 비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함께 단식하고 있는 전우들도 버림과 비움을 거듭하고 있었다. 비울 것이 없던 어린 학생은 딱했다. 우리는 어린 전우에게 우유라도 마시기를 부탁했다. 마침내 꼬맹이 전우가 흔쾌히 우유 마시자 어른들은 행복했다.


모른 사람이 본다면 아동학대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을 어린 학생도 우유 단식을 잘 견디고 있었다. 이러니 어린 관창에 덕에 백제결사대를 이겨낸 신라군처럼 우리 또한 단식에게 패할 수 없었다. 드디어 단식 마지막 날. 비워진 몸에 비례해서 영혼을 채워준 『생의 수레바퀴』를 완독 했다. 몸은 가벼워졌고 영혼은 충만해졌다. 일부님께 감사드리고 단식 동지들과도 작별했다. 교회를 나올 때 입구에 걸려있는 거울을 다시 바라보았다. 분명 아홉 끼를 굶었건만 얼굴빛은 오히려 번질번질했다.


단식을 마치고 귀가를 했는데, 주홍빛 소변이 나왔다. 몸에서 이런 색이 나오다니 단식의 효과가 분명했다. 회복식도 없이 그저 밥을 천천히 먹었는데도 별 탈이 없었다. 성공적인 단식이었다. (단식에 대해서는 후일에 다시 써야겠다) 주홍빛 소변이 나온 다음 날, 주문했던 책이 도착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마지막 작품 『인생수업』이다. 이렇게 한 마리 호랑나비로 날아간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