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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Feb 02. 2022

착한 라면 드실래요?

#1

승소면(僧笑麵)이란 말이 있다. 스님이 국수를 먹는 날이 되면 저절로 미소 짓는다는 뜻이다. 젊은 스님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수를 앞에 놓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비록 수행일망정, 오신채 빠진 채소 위주의 심심한 공양에서 먹는 기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과 밥이 아닌 면요리 음식은 절집의 행복한 별식이다.    

 

 인스턴트와 단맛은 어린 맛이다. 쓴맛과 신맛, 깊은 맛까지 알게 되면 윤기가 흐르는 생선회나 육즙을 잔뜩 품고 있는 고기 요리를 찾게 된다. 물론 나 역시나 이런 음식들을 만나면 먹는 기쁨을 만끽한다. 하지만 이런 고급진 음식에 못지않게 미감에 행복을 주는 나만의 승소면이 있다. 국민 간식이요, 분식인 라면이다.   

  

 라면은 1963년 제3공화국과 함께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 그런데 라면의 기원은 다소 생뚱맞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중국군 배낭에서 찾아낸 튀긴 면발을 보고 고개를 갸웃둥 했단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이 튀긴 면발을 연구, 발전시켜 분말 가루(스프)가 담긴 혁신적인 면 음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처럼 라면은 생과 사가 교차 되는 전쟁에 보급되었던 전투식량이었다.     


#2

 라면에 대한 내 최초의 장면은 아버지께서 급히 라면을 먹던 모습이다. 장사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식사를 못한 아버지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라면을 흡입하는 것으로 한 끼를 뚝딱 해결했다. 그때 부엌에는 입이 터진 라면 봉지가 있었다. 노란색 봉지 표면의 정중앙에는 삼양라면이라고 적혀있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점심으로 스테이크와 라면 가운데서 메뉴를 정하라면 별 고민 없이 라면을 택할 것이다. 라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스테이크보다 라면을 더 사랑하는 내게 고민이 생겼다. 얼마 전 병원을 찾았다. 자주 목이 잠기면서 발음이 선명하지 않고 탁해지는 것이었다. 말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내게 이러한 발은 문제였.  담당 의사가 내 코와 입 안을 향하여 빛을 비추며 한동안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역류성 식도염입니다. 카페인과 밀가루 음식을 끊으세요.”라고.


처방전을 고 약국으로 갔다. 약을 건네주던 약사도 커피와 밀가루 음식은 먹지 마세요라고 강조하듯 말한. 커피를 끊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닌데, 밀가루 멀리하라니. 라면 밀가루 음식이 아니던가? 그들이 킹크랩이나 민어회, 스테이크를 먹지 마세요.”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수업 중에 라면을 예찬하곤 했다. 한 끼를 해결하는데 라면만큼 값싼 것이 있냐고. ‘가난은 나라임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궁핍 해결의 몫은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의미다. 우리나라가 세계인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가난한 시절. 풀빵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힘겹던 시절. 라면을 먹고 하루를 견뎌낸 이들이 한 둘이었으랴. 나는 학생들에게 라면을 개발한 사람은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3

 누구나 라면에 관련된 소소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내 고등학교 시절, 하숙집에서 선배와 함께 먹었던 컵라면은 신세계였다. 이토록 맛있다니 추운 겨울이 행복했다 . 한겨울, 해안 초소에서 새벽 경계 근무를 마칠 때면, 바닷바람에 시달렸던 몸은 쪼그라져 있다. 초소 내무반으로 언 몸을 끌고 들어가면, 언제나 따끈한 라면에 기다리고 있었다. 동트는 여명을 보면서 훌훌 불면서 먹던 그 라면 국물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결혼 후, 라면은 긴장과 일탈이었다. 늦은 밤 또 라면이냐며 타박하는 아내의 감시를 피해 먹었던 라면은 남자의 자존심이었다. 여름 섬진강을 바라보면서 가족과 먹었던 라면은 휴가의 꽃이었고, 고스톱을 치면서 벗들과 나누었던 새벽 라면은 우정이었다. 어깨가 무너질 만큼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때, 벗이 말없이 끓여 준 어묵 든 라면은 위로이자 치료제였다.      

#4

  나의 첫 해외여행은 일본이었다. 내게 일본은 스시가 아닌 ~의 나라였다. 여행 일정 가운데서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을 먹느냐 여부였다. 드디어 오사카 차디찬 밤하늘 밑에서 본토의 맛 ~을 영접했다. 그러나 ~라면이 아니었다. 꼬불꼬불한 면발도 아니었고, 고기가 고명처럼 얹혀있는 것도 낯설었다. 그때 행복항복이 한 획 차이로 뜻이 달라진다던 어느 작가가 말이 떠올랐다. ~멘과 라면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라면 먹고 가실래요?”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가 상우에게 던지는 말이다. 여기서의 라면은 유혹의 메타포이.  하긴 라면은 편안한 관계끼리 먹을 수는 음식이다. 어렵거나 불편한 사람 앞에서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면치기는 할 수 없는 법니까.  오늘날은 라면으로 배고픈을 달래던 시절은 아니다. 대신 라면은 유쾌와 일탈의 별미가 되었. 그 종류와 맛도 엄청 다양하다. 청춘들은 뜨거운 불()과 매울 신()으로 무장한 라면을 선호한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신단다. 감당하기 어려운 세대이다.     

#5

 식도염 치료와 라면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할 시점이 되었다. ‘~무 자르듯, 라면과의 결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제부터는 라면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계절이 그 순리에 따라 변하듯, 내 몸도 변화의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소망한다. 쌀 또는 메밀로 된 라면의 재림을 말이다. 건강에도 좋은 라면 드세요.”라는 광고도 기다려본다. 나트륨과 MSG로 비난을 받는 라면. 하지만 어려운 시절 라면을 먹으면서 삶을 가꾸어낸 이들은 알고 있다. 우리들과 애환을 함께했던 국민 승소면 '착한 라면'의 의미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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