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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May 03. 2022

무너져라, 무너져라, 장벽이여~

<Heroes> 데이빗 보위

#1

남자가 남자에게 설레다니. 뭐 그럴 수 있다. 동성끼리의 만남도 용인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실은 그 기분을 살짝 알고 있는데, 어느 뮤지션의 공연을 보고 난 후였다. 물론 그는 나를 눈곱만큼도 알지 못한다. 그는 영국 출신이고, 이미 6년 전에 우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강렬한 눈동자가 수록된 앨범 자켓을 볼 때면 심쿵해진다. 그는 대중음악의 피카소라 불렸던 데이빗 보위이다.   

   

2016년 새해가 열린 직후였다. 아침 뉴스에서 데이빗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오묘한 저음과 공기를 갈아 마시던 거친 금속음,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가 삶을 마친 것이다. 자신의 히트곡 <space oddity>, <starman>처럼 먼 우주의  행성으로 떠났다. 그날 종일 생전의 그의 음악을 떠올리면서 인생무상에 잠겼다.    

 

#2

80년대 보이조지라는 남자가 심란한 여장으로 <Karma Chameleon>을 노래하기 전, 이미 데이빗 보위는 진한 메이크업과 과감한 패션으로 난해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레이 가가의 할아버지쯤은 될 것이다. 세상은 그의 노래에 <글램록>이라는 카테고리를 부여했다. <글램록>은 대중이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난감한 글램록 대신 수려한 수트 차림의 데이빗 보위가 <Let,s dance>, <China Girl>, <Under Pressure>, <Modern Love> 등 히트곡을 쏟아내던 시절. 금발을 쓸어 넘기면서 울 듯 외치던 그는 남성 에너지의 절정이었다. 눈물이 일렁이듯 쏘아보던 푸른 눈동자는 깊었다. 게다가 그의 저음은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아득했다.

     

#3

데이빗 보위가 지구촌에 선물한 평화의 노래가 있다.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켰다고 평가를 받는 <Heroes>가 그 노래다. 스티비 원더가 베를린 장벽 앞에서 < l just called say I love you>을 노래했던 몇 해 뒤, 876월에 데이빗 보위는 독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앞에서 마법의 주술을 시작했다.    

 

데이빗 보위는 베를린 장벽 옆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사흘에 걸친 공연을 했었다. 당시 서독 젊은이들은 서베를린으로 모여들었다. 어둠이 깔리자 시작된 그의 공연은 장벽 넘어 공연을 몰래 듣던 동독 젊은이들 마음에 불을 질러버렸다. 둘째 날 공연부터는 동독 청년들이 베를린 장벽 아래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벽을 사이에 두고 동서독 청춘들이 그의 노래를 함께 렸다. 


공연 마지막 날, 동독의 청춘들은 경찰의 곤봉 세례를 뚫고 다시 장벽으로 모였다. 심지어 벽에 올라서서 멀리 울려 퍼지던 그의 음악즐겼. 그날 공연의 절정은 <Heroes>가 울려 퍼질 때였다. <Heroes>의 가사는 베를린 장벽에 갈라진 동서독의 남녀가 분단을 이기고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4

“I, I can remember , 난 기억해 / Standing, by the wall 우린 벽 앞에 서 있어서 / And the guns shot above our heads 그리고 수많은 총알이 우리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던 것도 / And we kissed, 서로 입 맞췄던 것도라는  데이빗 보위  노래고출력 앰프를 통해서  울리자 동서독 청춘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그 함성에 베를린 장벽이 흔들렸다.     


<Heroes>는 분단 극복과 평화를 향한 주문이었다. 이때의 그의 공연이 불쏘시개가 되어 동독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외침은 거세졌다. 마침내 2년 뒤 동서독 젊은이들은 함께 베를린 장벽을 부수고 함께 얼싸안게 된다. 베를린  넘어 통일독일이 탄생한 그 순간까지 <Heroes>의 주술은 계속되었.   

  

<Heroes>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여리고 성을 함성만으로 무너뜨린 <여호수아기>의 현대판 버전이랄까? 여호수아의 지시로 성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히브리 족은 칠일째 함성과 나팔 소리만으로 성을 함락시켜버린다. 동서독의 청춘들은 그날의 히브리들처럼 <Heroes> 외쳤고, 베를린 장벽은 여리고 성이 되어 버렸다. 

    

#5

비록 베를린 장벽은 사라졌지만, 세상에는 다른 장벽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팔레스티나 가자지구에 있는 8미터 높이의 장벽은 숨을 멎게 한다. 온몸의 기가 꽉 막힐 것 같다. 안에 갇힌 팔레스타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야훼께서 허락했단 말인가? 이스라엘은 조상의 외침을 잊은 모양이다.

    

장벽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에게도 거대한 벽이 있다. 비무장 지대 휴전선 철조망 말이다. 몇 해 전, 남의 대통령과 북의 지도자 동지가 함께 판문점에 조우하던 감동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트럼프라는 요상한 미국 대통령이 좀 더 마법을 부렸으면 좋았건만, 평화의 마은 하노이에서 싱겁게 끝나버렸다.  

    

장벽 우리 사회에도 있다.  종교와 지역, 세대, 젠더 등 숱한 갈등의 장벽이 서 있다. 뾰족한 해결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들에게 해결을 부탁할 수도  없다. 그들이 장벽인 까닭이다. 결국 <Heroes> 떼창의 몫은 우리에게 있다. 다들 목청을 다듬고 힘껏 노래해야 한다.     


데이빗 보위그가 우주선을 타고 다시 왔으면 한다. 그와 함께 장벽 앞에 <Heroes>를 노래한다면 가자지구의 담벼락도 휴전선 철조망도 우리 사회의 갈등도 무너질 것같다. "hey! Bowie 나를 심꿍케 하는 위대한 주술사여.... 수리수리 마하수리  어떻게 안 될까요?"


David Bowie - Heroes     

I, I wish you could swim, 난 네가 수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Like the dolphins, like dolphins can swim 마치 돌고래같이, 돌고래들이 자유롭게 수영을 하듯이 / Though nothing, 비록 아무것도,

nothing will keep us together 아무것도 우리를 함께하게 만들어 주진 않지만

We can beat them, for ever and ever 우린 이겨낼 수 있어, 평생, 영원히

Oh we can be Heroes,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just for one day 단 하루뿐 일지라도

………

I, I can remember , 난 기억해

Standing, by the wall 우린 벽 앞에 서 있어서

And the guns shot above our heads 그리고 수 많은 총알이 우리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난 것도, / And we kissed, 서로 입 맞췄던 것도 / as though nothing could fall 그 어떤 것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 And the shame was on the other side 부끄러움은 저 멀리 던져버렸어 / Oh we can beat them, for ever and ever 우린 이겨낼 수 있어, 평생, 영원히 / Then we could be Heroes, 그리고 우린 영웅이 되는 거지

just for one day 단 하루뿐 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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