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신호 Jun 01. 2022

그대에게 장미를 드립니다.

<Rose Garden> , 린 앤더슨

#1

모든 표정은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오늘 옆자리에 있는 선배의 얼굴이 딱 그랬다. 정년을 향한 속도만큼이나 표정과 말이 사라지던 선배였다. 이럴 때는 후배가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세상살이의 지혜.

    

, 주말에 좋은 일 있었나 봐요?”

좋은 일? ~ 없어. 자네는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가? 난 어제 아내와 대학교 장미정원에 다녀왔지

   

 좋은 일이 없었다던 말과 달리 선배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수십 장의 장미들이 찍혀있었다. 그 속에는 선배 내외가 다정하게 팔짱을 하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코로나 삼 년 만에 개장한 탓에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말도 덧붙인다. 월요일이면 피곤을 입에 달고 다녔던 선배 얼굴이 오늘은 붉은 장미처럼 화사했다. 자연으로부터 치료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장미 사진을 보면서, 5월이 계절의 여왕임을 실감한다. 매화에서 시작된 봄꽃 향연이 끝날때, 여름의 전령사 장미가 피어난다. 아파트 담벼락과 공원에 핀 장미가 바람에 흐늘거리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장미는 차가운 도시를 꾸며주는 붉은 립스틱이다. 그 선홍빛 꽃잎을 마주면 가슴이 환해진다. 아직까지는 청춘의 감성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2

 장미정원에 가게 되면, 린 앤더슨<Rose Garden>이란 올드팝이 흥얼거려진다. 이 노래는 중학생 시절, 사촌이 집에 깜박 놓고 간 카세트 테프에서 처음 들었다. 그 테프 앞면에는 추억의 팝송이라고 적혀있었다. 비록 추억이란 단어가 생소한 중학생이었지만, 노래의 멜로디에 끌려서  숱하게 반복해서 들었다. 오죽하면 어린 막내 동생이 영어로 <Rose Garden>의 앞부분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을까? 부모님은 팝송을 따라 부르는 막내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미의 찬가 <Rose Garden>1971년에 린 앤더슨이 부른 컨츄리 곡이다. 미국인들의 컨츄리 음악 사랑은 우리의 트로트 사랑과 닮았. 린 앤더슨이 황금빛 머리카락를 날리며 장미정원을 찬양할 때, 미국은 베트남전에 지쳐있었다. 미국 역사상 첫 패배가 점점 분명해지는 우울한 시대였다. 이 노래는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을 위로하는 음악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밝은 태양과 장미의 향기. 넘실거리는 린 앤더슨의 금 머리 상상하면서 <Rose Garden>을 듣다 보면 우울증도 완치될 것이다. 장미 정원을 밝은 에너지로 노래했던 그녀는, 떨어지는 붉은 장미꽃처럼 이미 딴 세상으로 날아갔다.     


 <Rose Garden> 흥겨운 멜로디와  노 아쉬움이 가득하다. “뭐라고 했죠? 나는 당신에게 장미 정원을 약속한 것은 아니에요로 시작되는 가사에는 사랑의 어긋남과 미안함을 담고 있다. 노랫말처럼 장미의 계절 5월이면 미안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에 대한 숙연과 애틋함에 추억마저 아파 온다.     


#3

 20095월이었다.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진, 반 녀석들에게 일요일 아침 9시까지 전남대 후문으집합을 명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전남대, 광주교대, 조선대까지 걷다고 예었다. 이 도보 행진의 종착점은 장미꽃이 만발한 조선대 장미정원이었다. 일종의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신종 체벌이었다.

   

 그날, 전남대 후문에는 시험을 망친 열댓 명 정도의 녀석들이 밝은 모습으로 서성대고 있었다. 그중 한 녀석은 우리 반도 아닌데 그냥 와있었고, 또 어떤 녀석은 성적이 올랐음에도 따라왔다고 했다. 모두가 신종 체벌을 즐기려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한 녀석이 우리에게 경악스러운 소식을 전하기까지는 말이다.

   

선생님,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다는데요.”

무슨 말이야?”라고 내가 묻자,

선생님, 지금 막 속보가 올라와요. 투신 자살했다는데요?”     


 시간과 공간이 멈. 새의 날개짓도, 달리던 차량도 그 자리에 섰다. 그 무렵 검찰에게 모욕스런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었다. 아 그렇구나.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구나. 길 건너편 시민들 역시나 땅을 보면서 정지했다. 세상의 어두운 감정들이 일제히 먹장구름으로 밀려든 느낌이었다. 하늘에 눈을 묶어둔 채 걸기로 했다. 말없이 빠르게 걸었다. 녀석들도 침묵하며 종종걸음이다.

 

#4

 힘겹게 조선대 장미정원에 도착했다. 만발한 붉은 꽃잎들이 빛을 잃었다. 그곳에 있는 이들도 장미꽃 사이를 무겁게 거닐 뿐이다. 웃음과 향기가 사라진 장미정원이었다. 녀석들과 힘없이 헤어졌고 집으로 가는 데 화가 났다. 그를 모욕하고 조롱하던 세상 인심 기꺼이 동네북이 되었던 그의 선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 좋다며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운명이다란 유서를 남기고 장미의 계절에 몸을 던졌다.

    

 그 후, 13년이 흘렀다. 장미가 흐드러질 때면,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봉화마을에서 열린다. 추모 소식 그날의 아픈 기억을 소환시킨다. 이제 그에게 장미 한 송이를 드리고 싶다. 잊을 수 없다’라는 꽃말을 품은 핑크빛 언포케더블라는 장미를 말이다. "그대, 장미꽃이 고운 계절입니다. 부디 천상의  장미정원에서 행복하소서"


    < Rose Garden> - Lynn Anderson      

I beg your pardon,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

뭐라고 했죠? 난 당신에게 장미 정원을 약속한 적이 없어요

Along with the sunshine, there's got to be a little rain sometimes

햇빛과 함께 때때로 비가 내리기 마련이예요    

When you take you got to give so live and let live or let go

받았을 때는 줄 줄도 알아야 해요 그러니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살거나 잊어버리세요    

I beg your pardon, I never promised you a rose garden

뭐라고 했죠? 난 당신에게 장미정원을 약속한 적이 없어요

                      (중략)

Well if sweet talking you could make it come true

달콤한 말을 원한다면 그렇게 될 거예요    

I would give you the world right now on a silver platter

당장이라도 세상을 은쟁반에 담아서 드리죠  

But what would it matter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무너져라, 무너져라, 장벽이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