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찬 바람에 별 하나가 사라졌다. 그저 그런 겨울을 보내던 아침이었다. 뉴스 화면에 ‘틱낫한 스님 열반’이라는 자막이 떴다. 앵커는 스님이 평생을 평화운동가로 살았다고 소개했다. 서재 한쪽에 걸려있는 스님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타이(틱낫한 스님의 애칭)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몇 해 전, 오랜 망명을 끝내고 조국 베트남에 안착했는데, 이제는 깊은 생멸 속으로 사라졌다. 세상에서는 스님을 두고 달라이라마, 숭산, 마하 고하난다와 함께 4대 생불(生佛)이라 불렸다. 민망한 분별심일지라도 중생들은 이런 허망한 짓을 좋아한다.
2003년 초봄에 틱낫한 스님을 멀리서 뵌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너무나 한심한 내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그해 스님께서 광주를 방문하여 법회에 참석하고 대중들과 함께 그 유명한 걷기 명상도 한다고 했다. 그 무렵 달라이라마의 방한이 무산되어 아쉬웠던 터라 법회를 더욱 기다렸다.『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스님의 대표 저서를 읽으면서 말이다.
드디어 고대했던 법회 날이 되었다. 그날은 3월 27일 목요일이었다. 장소는 염주 실내체육관이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른 시간에 법회 장소에 갔다. 체육관에는 스님의 높은 명성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모였다. 법회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고요한 자비송이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틱낫한 스님과 플럼빌리지 스님들이 연기처럼 입장했다.
법회는 여법하게 진행되었다. 어느 신도대표가 마음수행과 먹거리에 대하여 스님께 질문할 무렵, 내 몸에 한기(寒氣)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날은 종일토록 꽃샘바람이 매섭게 불었는데, 옷이 너무 얇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에체온이 뚝하니 떨어진 것이었다. 차츰 냉기가 몸 전체로 퍼졌고 이빨을부딪치며 몸이 떨렸다. 둘러보니 다른 참석자들은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얼음같은 마구니가 오장육부를 파고들었다. 결국 스님의 법문을 뒤로한 채, 부들부들 떨면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혼절 직전인 육신을 달래면서 급히 따뜻한 국밥집으로 달렸다.따끈한 순대국밥이목을 타고 내 몸으로 들어가 마구니를 격퇴하기 시작했다. 포만감에 몸이 나른해지자 뒤늦게 낭패감이 엄습했다. 손꼽아 기다렸던 스님의 법회도중에 도망치듯 나오다니, 이건 분명 마구니의 시샘이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빨리 왔네? 법회 끝났어?”라며 의아해한다. 춥고 배고파서 중간에 나왔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날 저녁 자정 뉴스에서는 틱낫한 스님의 광주 법회를 보도하고 있었다. 자료화면에는 스님과 참석자들이 찬 바람에서도 밤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런 법회를 놓치다니 나는 참 박복한 중생이라 싶었다. 스님의 입적 뉴스에, 그날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 번 쓴 웃음이나온다.
서재에서 틱낫한 스님의 책을 골라본다. 제법 여러 권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스님께 기운을 얻고자 했었던 삶의 증거들이다. 불광출판사에서 나온『틱낫한 기도의 힘』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책의 표지에는 세월의 먼지가 앉아있다. “훅~‘ 입바람을 불었다.
책장을 넘겨보았다.“낮이 안녕하기를 그리고 밤이 안녕하기를 낮과 밤 그 사이도 행복하기를”이란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스님은 진흙 속의 연꽃이었다. 평화의 일꾼, 틱낫한 스님의 삶은 베트남 전쟁과 함께한다. 스님은 부패한 월남 정권에 맞서, 소신공양 등으로 혼란한 조국에서 반전운동을 했지만, 결국 남,북 월남 모두를 거부한 채 망명길에 올랐다. 프랑스 플럼빌리지에 자리를 잡은 스님은 중생을 위한 평화의 길로 걸어갔다.
틱낫한 스님의 염원이 나와있다. “이 업장들을 끝내려는 우리의 염원이 모두에게서 두루 이루어지기를…” 둘째 쪽에 있는 글이다. 업장(業障)은 카르마라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 원죄의 개념과 유사한데 에덴동산의 첫 인간들이 저지른 행위가 바로 업장인 것이다. 카르마 즉 업장의 실타래는 삶을 통하여 풀어내야 하는 중생들의 운명이다.
스님은 업장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으로 <마음챙김>을 제시한다. 이 방법이면 업장에서 벗어나 평화의 바다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마음 챙김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현존케 합니다.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이라는 한곳으로 모으는 것이죠.” 지금 여기에 머무는 의식이 <마음챙김>이며 기도의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마음챙김>은 우리들의 탁한 마음을 평화로 만드는 알라딘의 마술램프다.
한때 기도를 명상보다 낮은 경지라 여겼다. 『틱낫한 기도의 힘』은 이러한 분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기도와 명상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가령 기도가 진리와의 대화라면, 명상은 진리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다. 어쩌면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기도와 명상에 이르는 비밀번호은 호흡이며 아이디는 마음챙김이다.『틱낫한 기도의 힘』은 기도에 대한 자비의 지침서였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은 고요히 걷는 수행법이다. 이때 침묵과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 미소와 함께 땅에 닿는 발바닥을 의식하면서 걷다 보면, 파도치던 마음이 잔잔해지면서 차츰 현존이 자리 잡는다. 기도란 고요의 에너지이며 진리와의 소통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을 떠올려 본다. 어디 삶을 바꾸는 기회가 자주 오겠는가?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법이니, 언젠간 틱낫한 스님의 영혼이 머무는 플럼 빌리지를 들려보고 싶다.비록 스님은 육신을 벗었지만, 그곳에는 스님의 영혼이 머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플럼 빌리지에 도착하면서 타이의 영혼과 더불어 천천히 길을 걸을 것이다. ‘땡...땡...땡..’ 울리는 맑은 종소리를 마음으로 모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