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도망가는 둘째
나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첫째 아이는 길을 가던 아저씨가 다시 뒤돌아볼 정도로 말을 잘한다. 만 네 살인 아이가 “나는 이거 포기할래”, “그러니까 미리미리 해뒀어야지”라며 또박또박 말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 중 몇 분은 “허허, 너 참 말 잘한다” 하며 웃곤 한다.
반면 둘째 아이는 또래의 아이에 비해 말이 느리다. 말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기도 하고, 아직 표현하는 언어의 양도 많지 않다. 그런데 어쩌다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런 단어는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네?’ 놀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두 아이가 다툼을 할 때 나는 마냥 어리숙할 줄 만 알았던 둘째의 숨겨진 면모를 보곤 한다.
며칠 전에는 장난감 차를 가지고 놀던 누나가 방심한 사이 둘째가 누나의 차를 가져갔다. 그러자 뒤쫓아간 누나가 외쳤다.
“그건 내 거잖아!”
그러자 평소 같으면 도망만 다니던 둘째가 외쳤다.
“아니야~”
그러자 첫 째가 말했다.
“뭘 아니야!”
그러자 다시 둘째가 더 크게 외쳤다.
“아니야!”
그러자 첫째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화났어! 너랑 안 놀아!”
그러자 둘째, 잠시 망설이더니
“에(씩 웃으며)?”
하고 약 올리듯 외치며 기저귀 바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첫째는 결국 약이 올라 울먹이기 시작했다.
“너 누나 것 막 가져가지 말라고 했지”
누나는 울 것 같은데 둘째는 지지 않았다.
“언제~”
싸울 때 할 말은 다 하는 둘째 아이를 보고 있자니 황당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둘째는 평상시에 주로 손짓과 칭얼거리는 방식으로만 소통하기 때문이다.
황당한 일은 어제도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하고, 아이들과 좋은 시간도 보낼 겸 근방에 어린이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안에 들어서자 실내 공기가 꽤 더웠다. 추운 날씨에 목도리에 내복까지 껴입은 아이들이 더울 것 같아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옷 벗자, 여기 덥다”
그러자 첫째는 알겠다며 스스로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런데 둘째는 뭔가 싫은 내색이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답답해 보였다. 나는 결국 내가 벗겨야겠다는 생각에 둘째 아이의 잠바의 지퍼를 잡고 내리려고 했다. 그때 둘째가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도와줘요!”
그러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린이도서관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 쪽을 향했고, 나는 민망함에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둘째 아이를 안고 잠시 바깥에 나갔다. 그때까지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우리 쪽을 살펴보는 눈빛들에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러나 내 품에 아이는 마냥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집에 가서 남편에게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남편은 박장대소를 했다. 내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오해하며 바라봤을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표현을 둘째가 했다는 것. 그게 우리는 정말 기뻤다.
사실 우리는 말이 느린 둘째를 보며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만 3살이 되는 시점, 표현이 다양해지고 있는 둘째를 보며 한시름 덜고 있다.
어제는 자연에 관심이 많은 첫째가 상어와 고래를 보여달라고 해서 유튜브 영상 중 바닷속 상어와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을 찾아 보여주었다.
그러자 둘째가 다가와 보더니 울적하게 말했다.
“무서워”
그러자 첫째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ㅇㅇ야. 너는 상어 만날 일도 없어. 안 만나고 싶으면 안 만나도 돼~"
그 말을 듣고 나는 박장대소를 하는데 둘째는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는 만큼 다양해지는 아이들의 말이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