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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Feb 29. 2024

5년을 함께 한 작가를 떠나보내다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제작비가 없어졌다. 그나마 내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낮 시간대 주요 프로그램이라 제작비가 있긴 했다.

회당 출연료 1만 원.

우리는 원고료를 줄 수 없어 5년을 함께 한 작가분들과 작별을 해야 했다. 다들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웃어야 인사를 해야하나. 울어야 하나. 남동생이 서울에만 살았어도 소개해주고 싶던 우리 작가가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마지막 원고만 남기고 사라졌다. 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내가 주말에 나갈 방송을 녹음하던 사이 가버린 것이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쓴 녹음 원고는 녹음 스튜디오 밖 복도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의 성격상 울고 짜는 게 싫어서 피한 것이리라....


그녀는 효녀였다. 여러 가지 형편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꽃 같은 시기를 가족들을 살피는 데만 쓰는 게 안쓰러워서 하루는 내가 조심스럽게 소개팅을 주선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부자오빠였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제가 지금 연애할 상황이 아니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핑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데이트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 프로그램의 원고를 쓰며 받는 돈은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에게 꼭 필요한 돈이었다.      


나 역시 눈물 나는 상황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 방식의 헤어짐은 너무 슬펐다.

나는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괜히 따지듯 물었다.

“(돌고래 소리)아니-작가님,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요”

전화를 받은 그녀가 말했다.

“아니, 뭐. 서로 인사하기도 힘들고, 분위기가 웃으면서 헤어질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냥. 왔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울었다. 그런데 그녀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애써 밝게 말했다.

“아니, PD님, 다시 만나면 되죠. 저 다시 안 만날 거예요? 저는 돈 벌어야 하거든요.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연락해주세요”

언제나 느낀 거지만 그녀는 나보다 어려도 어른이었다. 여러 말들이 머릿속을 지나쳤지만,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어쨌든 나는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내가 담당한 프로그램의 작가님들은 5년을 한 곳에서 일했지만, 위로금도 공로상도 없었다. 그리고 방송국 개편 시기도 아닌 시기에 내몰려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PD님이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저는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 연락해주시고요”

마지막까지 꿋꿋하고, 바지런한 그녀였다.      


그 후로 우리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의 MC, 고정출연자, 인턴, 프리랜서 PD들이 회사를 떠났다. 돈을 주지 않아도 되니 계속 진행하겠다던 MC도 있었고, 출연자도 있었다. 하지만 긴 병에 장사는 없다. 회사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에 섣불리 선의를 받을 수도 없었다.  커피와 주전부리를 먹으며 머리를 쥐어짜던 작가님들과 현란한 손놀림으로 보이는 라디오 동영상을 편집하던 인턴 친구들이 다 사라다.


황량한 사무실을 보며 나는 남은 사람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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