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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Feb 29. 2024

계속 순해도 될까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회사차량으로 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 사람 내보내라고 해서 내보냈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운전대를 잡은 배차실 소속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는 이제 4차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했다. 현재의 예산을 가지고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300여 명의 직원 중에 180명만 남기라는 게 서울시의회 입장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면 6개월이지 왜 5개월만 연장된 거예요?”


그가 물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2년 전 회사를 지원하는 예산을 끊기로 결의하고, 지원 내용이 담긴 조례안을 폐지했다. 광고수익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2023.12.31. 일, 5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추가 지원을 받게 됐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인원 감축. 그러나 인원 감축 후, 방송국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은 없었다. 나머지 180명도 2024년 5월 31일이 되면 떠나야 했다.


“그게 의장 임기가 6월까지라서 번복될까 봐 5월 31일까지만 연장됐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답했다.


“뭐라고요? 와 진짜. 나는 왜 또 5개월인가 했더니. 그런 거예요?!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진짜 개**들이네”


그는 이어 말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야. 일할만큼 일하고, 애들도 자리 잡았다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진짜 개**들”


그는 대학교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퇴사하고, 아버지와 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사업이 여의치 않아 이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고. 지금 모는 차로 광주까지 가서 취재하는 걸 도와줬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그게 또 재밌더라면서. 그가 말하는 취재는 라디오 PD들이 만들었던 ‘가슴에 담아 온 작은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 역시 사립유치원 비리 제보를 받고 왕복 4시간 거리를 당일 취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몸은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며 일했던 그때가 그리웠다.


어느새 어둑해진 도로 위 차량의 불빛들이 룸미러 안에서 번쩍거렸다. 번쩍거릴 때마다 보이는 그의 얼굴은 착잡했다. 그의 얼굴보다 더 어두운 어깨 뒤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적막을 깨고 그가 말했다.

“그런데 내가 보니까 여기 사람들이 뭐랄까. 좀 순해. 이 정도 되면 나설 만도 한데 다들 조용하잖아”

“...”

씁쓸했다. 그 후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출장에서 복귀해 사무실에 들어설 때까지 그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여기 사람들이 뭐랄까. 좀 순해’


눈앞에서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데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 맞다. 우리는 무력하게 있었다. 우리는 숨죽이며 지냈다.

‘설마 진짜 이대로 방송국을 없애겠어. 괜히 투쟁하다가 서울시가 주려던 돈도 못 받지’

그러며 투쟁하자는 목소리도 잠재웠다. 그러던 우리는 이제  

‘괜히 나섰다가 구조 조정 될라. 입 다물고 있어야지. 설마 나는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방송사로서 균형감각이 부족했다는 것. 그리고 안일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받아 마땅하다. 방송국은 매섭게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직원은 300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천 명이 넘는다. 우리는 서울시민이 아닌가?

당장 우리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먹고살라는 것인가?

30년을 서울시민과 함께 한 조직을 신뢰를 회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천 명에 달하는 서울시민의 생계가 이토록 가볍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것일까?

솔직히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 또 한 명의 선배가 미안하다며 목이 멘 채 회사를 떠났다.


나는 두렵다. 누군가 이미 늦었다고 할 때라도 ‘악’ 소리라도 한번 외쳐볼 걸,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마이크에 대고 호소라도 해볼걸. 그런 후회를 하며 허망하게 회사가 닫혔다는 기사를 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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