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세번째. 정태춘-시인의 마을
어릴 적 나는 시를 썼다.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시를 쓰는 과제가 있어서 시를 썼다가 시를 계속 써보라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종종 일기에 시를 써서 내곤 했다. 일기는 못해도 대여섯 줄을 꽉 채워서 써야 하는데 시는 몇 자 띄엄띄엄 적어서 내도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와 함께 과분한 감탄과 과찬을 남겨주시곤 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된 후, 우연히 초등학교를 찾은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예전에 네가 일기에 썼던 시가 너무 좋아서 친구한테도 보내줬다며 계속 시를 쓰라 하셨다. 그때 그분이 좋았다던 내 시 내용이 대충이랬다.
"달"
우리 집 마당에는 달이 하나 더 있다.
엄마가 마당에 두고 온 세숫대야
거기서 나를 수줍게 보고 있다.
없어졌다. 또 있고,
없어졌다. 또 있고,
자꾸 나타난다.
아마도 저 달은 나를 참 좋아하나 보다.
선생님이 내 시가 그렇게 좋았다니 신기했다. 그래서 몇 년 만에 다시 시를 쓰려고 했지만 시는 써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더는 어릴 때처럼 자연을 보며 감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책상에 앉아 영어 문법을 외우며 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아주 큰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잠깐 슬펐던 것 같다.
그런데 왠지 이 분은 아직도 그런 슬픔을 느끼지 않고 살 것 같다. 바로 자연의 친구, 사색의 시인, 정태춘 씨다. 그리고 천 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세 번째 곡은 바로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364vSFgjS4
정태춘 씨는 1970년대부터 활동해 온 한국의 포크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깊은 목소리와 서정적인 가사는 한국 포크 음악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며, '시인의 마을'은 그중에서도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인의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노래한 곡으로,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감성을 전해준다. 또, 역사적 의미도 크다. '시인의 마을'이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심의 끝에 상당 부분 개작되어 데뷔 음반에 수록된 것을 계기로 정태춘 씨는 대한민국의 가요 사전심의 제도에 대한 반대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90년 《아, 대한민국》, 1993년 《92년 장마, 종로에서》 등 비합법 음반을 내면서 사전심의 폐지 운동을 전개하여 1996년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이라는 성과를 얻어냈으며, 함께 활동하는 아내 박은옥 씨와 함께 민족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 결과를 얻기까지 묵묵히 걸어간 이 분의 굳은 심지도 한결같은 '자연'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마을, 가사를 보면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고요한 자연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를 노래한 '시인의 마을', 어릴 적 내가 마당에서 본 고요한 달이 떠오르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