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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Nov 14. 2024

내 속을 태우는 구려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네 번째, 김추자-커피 한 잔 

만약 이분이 지금 시대의 오디션프로그램에 참여했더라면 어땠을까? 단연 1등이 아니었을까. 1등을 넘어서 그 오디션프로그램의 의미는 이 사람을 발굴해낸 것이라는 평론까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분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상상을 한다. 진흙 속에 묻혀있던 쏘울 충만 소녀가 오디션프로그램에 나왔다가 노래 하나로 대한민국 대중매체를 떠들썩하게 하는 장면.                
내가 상상하는 분은 바로 김추자 씨다. 얼마 전, 이분의 '커피 한잔'과 '거짓말이야'를 선곡해 스튜디오에서 듣는데 진짜 약을 하고 노래를 부르나 오해를 살 수 있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나 파격적인 창법과 표현력. 그 시대에 이런 창법과 노래를 하다니. 지금 들어도 어떻게 이렇게 노래를 부르나 싶은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네 번째 곡은 그런 

김추자의 ‘커피 한 잔’이다.


https://youtu.be/WvmDneW0lJA


김추자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강렬한 보컬과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한국 대중음악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 시절,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신중현의 선택을 받아 그의 곡을 유일하게 많이 소화해낸 가수인데, 1969년 데뷔 이후 신중현과 함께 사이키델릭 록과 소울 음악을 녹여낸 ‘님은 먼 곳에’, ‘커피 한 잔’ 같은 히트곡들을 만들어냈다.


김추자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지만, 그중 유명한 건 간첩설이다. 1971년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그녀가 무대에서 손짓하는 걸 보고 북한과의 교신이 아니냐는 황당한 소문이 돌았고, 결국 중앙정보부에 조사까지 받게 되었다. 김추자는 나중에 이 소문이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다 1971년 여름, 김추자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는데, 방송계의 구태와 적폐가 더는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그러자 가수협회에서 1년 방송활동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전에도 KBS에서 촬영 무단불참을 이유로 출연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김추자는 전국을 돌며 공연하고 있었는데,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한 번 지방공연을 가면 하루 이상 걸렸다. 김추자는 자신만 징계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했으나, 업계에서는 이를 버릇없는 행동이라며 강하게 제재했다.


사실 김추자도 억울한 점이 많았다. 당시 연예인은 사회적으로도 낮은 대우를 받았고, 특히 신인 가수들은 출연료 수입이 적어 오프라인 무대에서 수익을 보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당함을 지적하자, 가수협회는 징계를 3개월 만에 풀어줬고 그녀는 12월 컴백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


김추자가 겪은 가장 큰 사고는 역시 1971년 12월 5일, 매니저였던 소윤석이 고백을 거절당하자 소주병으로 김추자의 얼굴을 가격한 사건이다. 김추자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수술을 받았고, 이후 총 여섯 번의 성형수술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도 사고 4일 뒤, 붕대를 감고 서울시민회관 무대에 올라 예정된 컴백쇼를 마쳤다고 한다. 이후 ‘무인도’(1974) 같은 곡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하지만 1975년에는 가요계 정화운동과 대마초 사건이 터졌고, 신중현의 사무실에서 몇 번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문제 되면서 결국 그녀도 연예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3년 후인 1978년 리사이틀을 열며 재기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1981년 동아대 정치학과 교수였던 박경수와 결혼하면서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다. 참고로 박경수는 유학 중이라 김추자가 누군지 몰랐다고 한다.


비록 연예계를 떠났지만, 김추자의 음악은 여전히 후배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커피 한 잔’은 신중현 작곡가가 만든 곡으로 그의 음악적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신중현은 그 시절 한국 음악계에 사이키델릭 록과 소울 같은 서구적 음악을 들여오며 큰 변화를 주었다. 이 곡은 단순한 사랑 노래를 넘어 그 시대의 정서를 잘 반영한 곡으로 평가된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왠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노래 속 그는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그대’는 결국 오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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