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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05. 2021

시어머니와 양파

경상도 시어머니와 서울 며느리의 공동육아기록

어머니와 한 집에 살게 됐다.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는 중에 둘째를 갖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구미에 계신 부모님께 매달렸다. 둘 다 지방에서 올라와 양가 부모님이 지방에 계시고, 비빌 언덕이 없었던 아들 내외는 조금은 죄송스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어머니에게 며느리의 만삭 시점에 맞춰 올라와 주실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마음속의 여러 가지 우려와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찌하랴. 남의 손보다는 가족의 손에 내 자식을 맡겨야 마음이 놓이는 것을. 산후도우미와 베이비시터도 써봤지만 이 사람은 아이를 너무 자주 흔드는 것 같고, 저 사람은 작은 변은 굳이 씻기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석연찮았다.


그렇게 어머니와 한 집에 기거하며 지낸 지 2주 차가 되어갈 무렵, 나는 만삭의 몸이 되어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지난 몇 달간 해보지 못한 동네 마실도 다니면서 '아,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고,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13개월 차 첫째와 정을 붙이고 아침에는 마실을 다녀오시며 주변 지리를 익히셨다.


남편이 퇴근 후 돌아오면 어머니는 오늘은 어디를 다녀왔는데 시장 물건이 구미 선산의 물건보다 비싸더라. 그거는 내가 주말에 내려갈 때 사 와야겠다. 그런데 요 앞 홈플러스는 수입과일은 더 싱싱하더라. 하시며 새롭게 얻은 생활정보를 공유하셨고, 남편과 나는 갑자기 서울로 올라와 어머니가 답답하진 않으신 지, 첫째가 어머니와 얼마나 잘 놀았는 지를 이야기하며 어머니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는 늘 의욕적이셨고, 활기차셨고, 긍정적이셨다.


그런데 아이가 콧물감기에 걸렸다. 아침에 저만치 이불 위를 굴러다니던 아이가 '끄끄' 소리를 내며 내 얼굴에 얼굴을 비비는데 벌써 목소리가 잠긴 게 심상찮았다. '어떻게 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물처럼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훔쳐대는 아이를 보며 애를 태우다 결국 택시를 불러 소아과를 갔다.


배가 부른 며느리, 손녀가 행여나 뒤로 져쳐질까 옆으로 업은 시어머니. 바리바리 싼 기저귀 가방을 메고, 약국도 갔다가 집에는 생각보다 짧은 거리라 걸어왔다. 사람들이 종종 쳐다보던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 꽤나 인상적인 그림이었지 싶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좀 유난스러운 아빠는 얼마나 답답할까, 가깝다. 내가 어릴 때 저렇게 코가 자주 막혀봐서 얼마나 힘든 지 다며 한차례 소동을 부렸고, 이미 병원과 먹기 싫은 물약을 아이에게 먹이며 씨름을 한 어머니와 나는 좀 지쳐있었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 리 없는 남편은 자기만큼 걱정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는지 아니면 말 그래도 속상해서인지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고 보면 다른 아빠들보다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참 잘하는 남편이다.


그러고, 밤 열두 시가 다 될 때까지 수동 콧물흡입기를 들이댔다가 자동 콧물흡입기를 사서 또 들이댔다가 잠이 들었다가도 코가 막혀 뒤척이고, 잠이 들었다가도 숨을 못 쉬고, 아이는 결국 울기 시작했다. '코를 풀어!' 하고 휴지를 대면 확 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삭인 나는 정말 만사가 힘들어 누워버렸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기어이 어떻게 엄마가 이 상황에 잠이 오냐는 말을 했고, 나는 또 당신은 나의 신체상태에 대해 무지하다며 엄마는 힘들면 안 되냐고 말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는데 건너편 방에서 어머니가 나오시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갔고, 아가 잠을 못 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어머니.


"양파를 까서 머리맡에 두고 자면 괜찮다던데..."


"엄마, 그거 확실한기가?"


이미 너무 예민해진 남편이었다. 그러더니 또 내게는 어머니가 말하신 민간요법을 검색해서 보여주며 여보 이거 보라며 했다. 밉상이었다.


어쨌든 효과를 봤다는 엄마들의 댓글을 보고 여러 말없이 베란다에서 양파를 가져와  부엌 싱크대에서 껍질을 까기 시작하는데  벌써 코가 찌릿하면서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양파 향이 더 잘 퍼지도록 깐 양파를 적당히 썰어서 뜨거운 물에 담가 아이의 머리 언저리에 두니 칭얼대던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정말 할렐루야였다.


그 후, 나도 어머니도 유난이었던 남편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다음날, 어머니는 나는 아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아들이 "엄마, 그거 확실한기가?"라고 물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는 말을 하셨고, 나는 어떻게 엄마가 이 상황에서 잠이 오냐 했던 남편의 말과 기어이 사과를 받아 낸 지난한 대화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고, 아이는 하루 종일 양파와 물약을 달고 놀다가 자다가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새벽에 걱정이 돼 거들어도 달가운 소리를 듣지 못한 어머니가 안쓰럽고 '어머니가 양파 이야기를 안 해줬다면 그 새벽을 꼴딱 새웠을 텐데...' 역시 집안에 어른이 계시면 다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새벽에 비빌 언덕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였다.


'비빌 언덕...'


막막하고 답답할 때 또 대안이 없을 때 어떻게든 방법이 나오겠지라며 달려가는 곳.


어머니는 낯선 서울에 올라와 아들 내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찐 가족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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