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꼬르륵 Aug 03. 2021

너만 즐거우면 엄마는 아파도 상관없다는 거니

초연년생 엄마의 하소연

첫째 아이는 이제 생후 519일, 둘째는 140일. 생일이 불과 13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2년 전 내 모습이 마치 5년 전인 듯싶다. 너무도 달라진 인생. 너무도 달라진 일상. 회사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던 그때가 얼마나 황금 같은 시간이었는지, 내가 커피를 마실 때 울거나 안아달라고 하는 존재가 옆에 없다는 게 얼마나 큰 휴식인지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보니 달라진 체력과 시댁과 친정을 자주 드나들며 도움을 받는 상황, 그리고 그에 따른 잦은 이동, 자의식이 강해진 첫째의 떼, 다가오는 복직 등 이런 과정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얼굴에 표정이 사라진다. 심지어 남편은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있다.


이렇게 열거하니 좀 더 상황이 숨 막히게 다가오지만 사실 그럭저럭 어른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해나가자 하고 있었는데 오늘 기어코 짜증 내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


다가오는 복직을 위해 장롱면허를 탈피하고자 친정엄마에게 운전을 배우려고 둘째를 시댁에 맡기고 친정에 온 지 이틀째. 그런데 아빠가 안 보여서인지 첫째가 떼를 너무 썼다. 우유를 먹거나 밥을 먹는 순간, 잠을 자는 순간 빼고 계속 떼를 썼다. 계속해서 그게 아니라는 듯한 머리 짓과 칭얼거림으로 나를 바라보고, 위험한 마당 계단에 혼자 걸어 나가고 , 기저귀도 싫다 하고, 땡볕에 마당 한가운데를 발가벗고 돌아다니고...


그러다 아이는 소파에 있던 아기띠를 질질 끌며 가져와 내게 아기띠를 하고 안으라는 듯한 칭얼거림을 계속했다. 안쓰럽기도 해서 아기띠에 아이를 앉힌 채 집안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는데(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있으면 싫어한다ㅜ) 이것도 오래 하니 허리도 아프고 발목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제 엄마도 힘들어서 안 될 것 같아. 내리자~"

어르고 달래서 내리는 데 역시나 아이는 울고 불고 바닥에 발을 내리치고 구르며 난리였다. 급기야 나는

"너는 엄마가 아프든지 말든지 너만 즐거우면 된다는 거야! 대체 왜왜!"

라며 소리쳤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놀라 순간 멈칫하다가 이제는 더 서럽게 울며 내게 안겼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밀려오는 죄책감과 힘듦. 하필 이 시기에 대학원 학기를 마무리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 그런 것들이 복받쳐 오르면서 나까지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내가 내 감정을 추스르고, 아이도 어르고 그렇게 지냈는데 일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


"너는 뭐 애 하나 보는 거 같고 그러니"

...


삼 남매를 가부장적인 아빠 옆에서 거의 독박 육아를 한 엄마 앞에서, (심지어 연년생인 남동생과 내 생일은 단 10일 차)

뭘 더 이야기할 수도 없고, 신기하게 그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해서 나는 그만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냥 '에효...' 할 뿐.


좋은 엄마... 되고 싶은데 아이에게 짜증 낸 것.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짜증 낸 것들이 참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 현실을 벗어나고픈.

 

초연년생 엄마의 오늘은 그랬다.


(첫째와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다가 그려 본 우리 첫째. 엄마가 사랑한다는 거. 그건 정말 진심.)

작가의 이전글 남편이 속옷도 못 입고 젖병을 씻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