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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05. 2021

어머니와 산후조리

경상도 시어머니와 서울 며느리의 공동육아기록

"라떼(?)는 어머니가 아를 낳고 오니까 이불을 덮어주고 일주일 동안 집 밖에 나가도 못하는 하는 거야. 그때는 그게

답답하더라고. 근데 장롱 사이가 바람이 부는데 참 시원하더라. 그래서 내가 발목을 내놓고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발목이 그렇게 시려요. 내가 잔소리하는 거 같아도 옛날 어른들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너무 잔소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애들) 예방 접종시킨다고 다니다가

몸이 힘들어가 그러니까 내가 속상해서 그래요"


지난 이틀, 높은 산을 등산하고 내려온 것처럼, 누구랑 세게 몸싸움을 한 것처럼 온몸이 다 쑤셨다. 첫째를 낳고 이주가 지났을 때는 이 정도로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서글프게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조리를 잘 못해서인지 다시 조리가 필요한 지경이 됐다.


어머니는 아직 회복도 덜 된 사람을 애들 접종시킨다고 오전이고 오후고 데리고 병원을 다닌다고 남편에게 뭐라 하고 남편은 가 괜찮다고 하길래 답답해하는 거 같아서 나간 건데 미안하다며 멋쩍어하고, 나는 나대로 몸이 힘든데 나 때문에 분위기가 심상찮아 멋쩍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안 되겠노라고. 내가 뭐라 하면 잔소리한다고 할까 봐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며느리가 알아서 조리를 못하는 것 같노라며 이제는 내가 뭐라 하겠노라며 선전포고(?)를 하셨다. 그러시며 배가 안 고파도 밥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거실 매트에 내려앉으면 일어날 때 아프니까 소파에 앉아야 하고 다리를 접고 앉으면 몸이 휘어지니 다리를 피고 기대서 편하게 앉아야 한다고 하셨다.

또, 분유를 먹일 때 허리가 아프니 양쪽으로 번갈아 먹이라고도 하셨다. 줄곧 나를 보시면 참고 계셨던 말씀이신 듯싶었다.


생후 20일 된 둘째 아이를 분유 맘마를 먹이고 재운 뒤 거실에서 어머니와 놀고 있는 첫째에게 다가가 내가 옆으로 몸을 누일라치면 어머니는 손 쌀같이 베개를 갔다 주시며 누우라 하셨고, 부엌 쪽으로 향하면 언제 나를 보셨는지 국을 덥혀뒀으니 먹으라, 식탁 위에 뭐를 해뒀고,

냉장고에는 뭐가 있다. 네 몸만 생각해라, 보이는 데로 챙겨 먹으라 거듭 말씀하셨다.


처음에 남편은 '엄마, 너무 그 카지마, 이 사람 스트레스받아요' 했었는데 내가 앓는 걸 봐서 인지 이제는 '그래, 어쨌든지 지금은 당신 몸조리가 우선이다'며 어머니 말씀을 거들었다.


사람에 따라 어떤 며느리는 싫어할 수도 있겠으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어머님의 유난이 썩 좋았다.

그렇게 누군가 나의 몸 상태에 공감하고, 챙겨준다는 것이 괜히 엄살 부려도 될 것 같은 우쭐함을 느끼게 했다고나 할까. 사실 남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첫아이를 낳고 얼마 안가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진료를 기다리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보, 나 커피 좀 사 올게. 당신은 과일주스 사줄까"

과일주스는 차다. 아이를 낳은 산모는 찬 음료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아니, 나는 찬 음료는 지금 먹으면 안 좋아. 따뜻한 차를 팔면 마실게"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넘겼다. 그 후로도 한두 번 더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역시 며칠 뒤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다시 남편이

"여보 나 커피 좀 마셔야겠어. 당신은 과일 주스 사줄까?" 하는 것이다.

짧게 '아니, 나는 따뜻한 거'

라고 답한 후 '참나...' 하며 서운한 감정이 스쳐 지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의 머릿속엔 '아내는 임신 중이니까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있는데 '아내는 산후조리 중이니까 찬 음료는 마시면 안 된다'는 정보가 추가되지 않는 것이다!

신혼 초라면 사랑을 운운하며 어떻게 그런 걸 기억을 못 하느냐 볼멘소리를 했겠지만 이제는 나 역시도 남편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 보지 않은 이상 자꾸 잊고 배려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넘어갔다. 사실 논쟁이 피곤하기도 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경험해 보신 어머니가 지금 여자의 몸 상태가 어떤 지,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내가 귀찮아서 굳이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소상히도 브리핑을 해주시니 괜히 울컥도 하고, 여러 가지로 배려사항이 추가돼 편해졌다.


출산휴가 10일 중 8일을 전략적으로 나의 산후조리원 퇴소일에 맞춘 남편은 둘째 아이 밤중 수유를 어머니는 생후 13개월 첫째 아이를, 그리고 나는 낮 동안 둘째 아이를 주로 전담한 산후 3주 차가 지나고 있다.


어머님 말씀대로 괜히 해주고도 속상하지 않게 나의 손목과 발목의 시림도 회음부 수술 부위의 통증도 골반과 허리의 불편함도 완전히 가시길 바란다. 나도 어머님처럼 그래서 어머님이 그때 그러셨구나 하는 시간이 올까. 옛날 어른들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내 아들의 며느리에게 잔소리할 기회가 있으려나. 나는 며느리가 싫어할까 봐 못 할 것 같다. 어떤 관심은 욕을 먹을지도 모르지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어머님이 진심이시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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