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느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다만 걸을 뿐

느리게 걷자 - 장기하

by 꼬르륵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우후후)

죽을만큼 뛰다가는(우후후)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우후후)

고양이 한마리도 못보고 지나치겠네

(장기하와 얼굴들-느리게 걷자)


도대체 느리다는 것은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말일까.


나는 어릴 때 말이 느렸다. 우리 엄마의 표현으로는 '니가 좀 뻐끔뻐끔했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어른들은 말이 느린 아이들이 때가 되면 다 알아서 말을 하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이 느린 편인지도 모르고 자랐다.


작년 3월, 우리 아들 역시 말이 느리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때서야 나는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말을 할 때마다 목구멍에서 느껴지던 막힘, 다른 아이들보다 문장을 만드는 데 더 오래 걸렸던 시간들. 이제 말을 하려는데 상대는 사라진 자리에서 느끼던 당황스러움, 상대는 모든 감정을 다 뱉었는데 나는 뱉지 못한 억울함 때문에 이불 속에서 잠들지 못했던 밤 들이 되살아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들의 상황에 과몰입되었다. 행여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답답할까 봐.


서둘러 언어센터를 알아보고, 선생님을 따져보고, 아들이 뱉는 어휘량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같은 개월 수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말뿐 아니라 키는 작은 게 아닌지, 몸무게는 덜 나가는 게 아닌지 안달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적게 먹는 아들을 보며 늘 걱정하고, 숟가락을 들고 따라다녔다. 어느 날은 그날 하루의 행복도가 아들이 먹는 밥의 양에 비례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안달하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아들은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늘 해맑았다. 오히려 자신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초집중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기는 듯했다. '엄마는 도대체 뭐가 문제지?' 라는 표정의 아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그래,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노력은 계속 하고 있다. 꾸준히 아들과 언어 놀이를 하러 다니고, 늘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해준다. 하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아이를 '느리다'는 표현 하나로 평가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느리다'라는 말이 다소 폭력적으로 들린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기준으로 느리다고 하는 걸까?


지금도 SNS와 인터넷 기사에는 누가 집을 샀다더라, 건물을 샀다더라, 몇 살에 명문 학교를 갔다더라, 조기 졸업을 했다더라, 차익을 얼마나 남겼다더라, 몇 세에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이런저런 조건이라더라 등 저마다의 성과와 속도를 뽐내는 소식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보며 우리는 조급해진다.

나이가 이런데 결혼도 못 한 내가 한심하고, 집 하나 정도는 장만하고 싶은데 아직 그럴 여력은 안 되고, 다른 아이들은 발레도 보내고 피아노 학원도 보내고 영어학원도 보낸다는데 우리 아이도 빨리 보내야 할 것 같고. 물론 그런 성과를 내면서 얻는 성취감을 무시할 순 없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데 현실을 무시하고 무작정 '안빈낙도'의 삶을 사는 건 현실도피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무탈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이래야 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너무 늦는다'라는 말들에 정말 그럴까 하고. 계절이 변화하는 '때'는 느끼지 못하면서 세상이 만든 '때'에 얽매여 사는 삶. 어쩐지 멋이 없다고 할까.


지난밤, 아이가 잠들기 전 내게 책을 읽어달라며 동화책을 들고 왔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였다. 방심한 토끼를 제치고 거북이가 마침내 추월해 결승선에 도착하는 대목에서 예전의 나라면 '그러니까 자만해서는 안 된다', '남들보다 잘났다고 우쭐하지 말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거북이가 탁월한 ‘마인드 컨트롤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어지는 토끼를 보며 어차피 질 거라며 자포자기하지도, 내내 불평하며 걷지도 않았다. 아이와 함께 읽은 동화 속 거북이는 길가의 꽃도 보고, 응원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워하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야기 속 거북이는 아마도 자기가 느리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 같다. 그냥 걸을 뿐. 어쩌면 우리가 거북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이 평정심이 아닐까.


세상이 만든 '때'에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길을 걸어가는 여유. 내 아들이 그랬듯,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서 진정한 교훈은 어쩌면 자만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꾸준히 나아가는 거북이의 마음가짐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무수한 사건과 상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바다 같은 인생에 인위적인 선을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노래했던 장기하의 말처럼, 우리의 걸음이 느려도 괜찮다. 그 속도로 우리는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놓친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으니까. 불안한 시기일수록 필요한 것은 거북이의 평정심이다. 그 평정심으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행복한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글에 등장하는 노래)

느리게 걷자- 장기하

https://www.youtube.com/watch?v=T50dVmyc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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