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긍정'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나는 반딧불 - 황가람

by 꼬르륵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나는 반딧불 – 황가람)


우리는 늘 불안하다. 전세 대출금 이자는 치솟고, 은행 앱에서 울리는 마통 상환 알림은 가슴을 조여온다. 회사에서는 조직개편 소식이 들리고, 아이의 교육비는 나날이 부담스러워진다. 불안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긍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긍정적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분이 있다. 몇 년 전 라디오 다큐를 제작하면서 만난 암밍아웃 유튜버 조윤주 씨. 이제는 고인이 된 그녀는 스물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았다. 21번의 항암, 그리고 완치를 6개월 앞두고 재발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암환자 뽀삐' 채널을 통해서였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투병 중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저 평범한 청춘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아프다고 삶은 멈추지 않아요. 인생은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저 '정말 긍정적인 분이구나' 하고 넘겼다. 지금 우리가 겪는 불안이나 고민이 그녀의 상황에 비하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공개하는 데 8년이 걸렸어요. 8년이 지난 이후에야 제가 암이라는 것을 진짜 마주했거든요. 그제야 '나는 진짜 암환자구나'를 인정할 수 있었어요."


그때 알았다. 그녀의 긍정은 현실 도피가 아니었다. 자신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한 후에야 시작된 진정한 긍정이었다는 것을.


불현듯 지난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뚜렷한 결과 없이 불안한 고시생으로 살던 어느 날, 현직 기자인 아버지를 둔 동기의 모 언론사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아무래도 출발선이 다른 것 같은 경쟁자들만 유독 눈에 띄던 그 시절, 의기소침해진 내 이야기를 들은 대학 동문 선배가 들려준 말이 있다.


"사람들은 긍정적이라는 것을 마냥 상황을 좋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한자로 '긍정'은 '옳다고 여길 긍'과 '정할 정'이야. 있는 그대로, 정하여져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어쩌면 네 말처럼 너와 그 친구들은 출발선이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게 어떨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아파트에서 전세 걱정 없이 살고, 또 누군가는 해외 유학을 다녀와 스펙을 쌓는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나름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 선배의 말씀처럼, 나는 내 출발선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내가 가진 것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는 이제 서른을 훌쩍 넘겼고, 혹은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한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윤주 씨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먼저 인정하는 것부터. 지금 이 순간이 힘들다는 것, 불안하다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빛나는 별이길 바랐다. 하지만 때로는 벌레 같은 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반딧불이처럼,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낼 수 있으니까.


회피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더 선명한 빛으로 앞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긍정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글에 등장한 노래)

-나는 반딧불(황가람)

https://www.youtube.com/watch?v=9XFGRri2i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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