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시간도 행복이 된다면

검은 행복 - 윤미래

by 꼬르륵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위로해주네

So you gotta be strong

you gotta hold on and love yourself

세상에 미울 때, 음악이 날 일으켜주네

(검은 행복, 윤미래)


나는 윤미래씨의 노래가 진심이 느껴져서 좋다. 혼혈인으로 어린시절부터 피부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타적인 시선과 차별을 받았던 그녀는 가수가 된 후로도 흑인 아버지의 존재를 밝혀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드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음악만이 자신의 슬픔을 위로했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고. 그리고 이 노래에 그녀의 아버지 목소리가 등장한다. 아버지와 함께 웃는 그녀의 목소리는 비로소 자유를 찾은 어린 소녀같다.


얼마 전 카페 청소를 하며 들었던 이 노래의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위로해주네'라는 가사가 유독 마음 깊이 와닿는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겪고 있기에. 음악은 때로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마치 인생의 스승처럼.


책도 음악만큼이나 요즘 나를 위로하고 있다. 얼마 전 집을 청소하다가 책장 속 꽂혀있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발견했다.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던 2000년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했다.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당시 경제적 위기로 눈물 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달구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 그 흥행 바람에 덩달아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났다.


어언 24년이 지나 다시 읽은 책의 내용은 다시 봐도 흥미로웠다. 평범하게 일해서 받은 돈으로는 절대 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 지금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좋은 대학 나와서 탄탄한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최고로 여겼던 그때는 이 책이 얼마나 파격적이었을까. 그런데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 책 속에서 쌩뚱맞게도 이 말에 시선이 갔다.


"그건 학교에서나 가르치는 방식이지. 하지만 삶이 가르치는 방식은 다르단다. 삶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삶은 얘기해주지 않는다. 우리를 내두른다고 해야 옳지, 그렇게 내두를때마다 삶은 말하지. 정신차려. 네게 가르칠 것이 있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中 발췌, 로버트 기요시키 저)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달라고 찾아온 주인공 마이크에게 적은 시급으로 일을 진탕 하게 한 후, 부자 아빠가 한 말이다. 미성년 노동법 위반이라며 잔뜩 화가 난 마이크에게 부자 아빠는 저렇게 말한다.


삶은 자기처럼 모두를 내두른다고. 그럴 때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와 싸우고, 어떤 사람을 뭔가를 배워서 앞으로 나간다고. 그러면서 그나마 주던 돈도 앞으로 주지 않겠다고 한다. 머리를 쓰라면서.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주인공 마이크가 무보수로 일하던 중 가게에서 버리는 만화책들을 발견했고, 이 만화책을 수거해 집 빈 방에 만화책 대여점을 여는 내용으로 끝난다. 비록 동네 말썽쟁이들이 소란을 피워 만화방은 접게 되었지만 부자 아빠는 마이크를 칭찬한다. 보수에 연연하기보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아냈다며. 그리고 부자아빠는 말한다.


“이걸 말로 가르친다면 네가 귀 기울이지 않을 게 뻔하지”


돌이켜보면 나 역시 삶을 책상이 아닌 곳에서 배웠다. 중학교 시절 머리가 희끗한 교감 선생님이 계단을 오르는 여학생의 엉덩이를 슬쩍 치는 것을 보며 좋은 어른은 겉으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며,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복수가 차 신음하던 옆자리 아저씨를 보며 삶은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일상의 행복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라는 것도.

어제도 나는 생각지못하게 삶이 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즘 나는 무인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앞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카페 청소를 하고, 기계 고장에 대응하고, 손님들의 민원을 처리하면서 비로소 자영업자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모처럼 아무 사건 없이 조용한 카페에 홀로 앉아 나의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문을 확 여시면서 내게 물었다.

"여기 녹차라떼 있어요?"

내가 점주인 걸 아시는 건가. 의아함 반, 당황스러움 반을 느끼며 대답했다.

"아, 여기는 녹차라떼는 없고, 달달한 음료를 원하시면 다른 종류의 음료도 많습니다"

그러자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의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그럼 뭐 하나 가져와 봐요"

그제서야 나는 그 분이 이곳이 사람이 없는 무인카페인 것을 모르고 그러신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 여기는 무인카페라서 기계 화면 메뉴를 보시고, 클릭하시면 직접 결제하시고 음료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

그러자 아주머니는 당황스러운 듯 카페 내부를 이곳저곳 두리번거리시더니

"예~알겠습니다"

하며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런데 그 말투에 뭔가 무언의 메시지가 있었다.

'불친절하네'


처음에는 불쾌했다. 하지만 곧 후회가 밀려왔다. '뭐 하나 가져와 보라'는 그 아주머니의 말에 감정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 주문처리를 하고 결제를 해드렸으면 어땠을까. 나는 나의 감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에게 가장 좋은 결말을 만들지 못했다. 소득도 발생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잠재적 단골 고객도 잃었다. 내가 일어나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그 아주머니도 기분이 더 좋았을 것이다.

양귀자 소설, ‘모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나 역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깨닫지 못하는 ’우이독경의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2년 차 PD로서의 삶과 이제 막 시작한 자영업자로서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청취율과 화제성이 내 성과였다.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 신인 가수에게 기회를 주는 권한이 PD에게 있었다. 마치 정의의 사도인냥, 갑인냥 살 때도 있었지만 사실 나도 그저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윤미래의 '검은 행복'이 유독 더 공감이 된다. 그녀가 차별과 편견이 시간을 거쳐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낸 것처럼, 나도 이 위기를 새로운 시작으로 , 행복으로 만들고 싶다.

때로는 나도 나뿐만 아니라 나의 동료들을 월급이 없는 삶을 살게 한 현실에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의 감정을 추스르고, 내게 소중한 것들, 지키고 싶을 것들을 생각하며 결과적으로 가장 나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봐야지. 아마도 그때가 되면, 이 시간은 내 인생의 또 다른 '검은 행복'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글에 등장하는 노래

검은 행복 - 윤미래

https://www.youtube.com/watch?v=1DK-MPh7v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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