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9 -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특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샌드페블즈의 감성적인 캠퍼스 밴드 사운드. 당시로서는 드물게 솔직하면서도 풋풋한 사랑 고백, 그리고 청춘다운 목소리가 만들어낸 깊은 울림까지. 이 노래는 단순한 대학가요를 넘어 한 시대의 청춘 감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천 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아홉 번째. 오늘은 샌드페블즈가 남긴 70년대 청춘의 절절한 고백, '나 어떡해'다.
[샌드페블즈 - 나 어떡해]
https://www.youtube.com/watch?v=8yRvIisFu7A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소속의 동아리이자 캠퍼스 밴드 그룹 샌드페블즈. 1970년에 창립되어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밴드 활동은 2학년 한 해 동안만 할 수 있고, 3학년이 되면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밴드 활동을 멈추고 장비 등을 후배에게 물려주는 시스템. 어찌 보면 참 순수했던 시절이다. 지금 같으면 인기를 얻은 밴드가 학업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다는 게 상상이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드페블즈는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나 어떡해'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곡의 화자는 갑자기 떠나버린다는 연인에게 '나 어떡해'라며 간절히 호소한다. 혼자 남겨질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내가 이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것은 묘한 신선함이었다. 요즘처럼 "괜찮다"며 쿨한 척하지도, "이해해"라며 성숙한 척하지도 않는다. 그냥 솔직하게 "안 돼, 가지 말아"라고 말한다. 이런 직설적 호소가 오히려 2024년에는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간절한 호소,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마음. 카톡 읽씹으로도 마음이 아픈 지금과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사랑의 떨림과 상처는 정확히 같다.
이 곡에서 특히 마음에 닿는 부분이 있다. 누구 몰래 다짐했던 비밀이 있었는지 묻는 대목이다. 연인끼리만 나눴던 소소한 약속들, 미래에 대한 은밀한 꿈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요즘도 연인들은 비밀스러운 다짐을 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리는 커플 사진, 단톡방에서 빠져나가 둘만의 채팅방을 만들기, 서로만 아는 특별한 장소 정하기. 도구는 달라졌지만 연인들만의 비밀스러운 약속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똑같다.
'나 어떡해'의 진짜 매력은 그들의 풋풋한 목소리에 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더 진솔한 그 목소리가 청춘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요즘 음악에서는 찾기 힘든 이런 날것의 진정성이 오히려 신선하다. 프로듀싱이나 사운드 메이킹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감정만으로 승부하는 음악. MZ세대인 나에게는 이런 음악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음성 보정 앱으로 누구나 완벽한 목소리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해진 목소리들 사이에서 샌드페블즈의 투박하고 진솔한 음성은 오히려 더 돋보인다.
이 곡을 신청하는 청취자들은 주로 50대 이상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20대 청취자들도 종종 이 노래를 신청한다는 점이다. 어떤 대학생은 이런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틀어주신 노래인데, 요즘 제 심정과 너무 비슷해서 신청합니다."47년 전 대학생의 마음과 지금 대학생의 마음이 이렇게 닮아있다니. 사랑 앞에서 느끼는 간절함과 두려움은 정말 시대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MBC 대학가요제는 1977년부터 1996년까지 20년간 지속되며 수많은 명곡을 배출했다.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그 첫 번째 대상곡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대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들은 기성 가수들의 곡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완성도보다는 진정성, 세련됨보다는 솔직함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런 특징들이 지금 들어도 여전히 마음을 움직인다.
1977년의 대학생이 느꼈던 "나 어떡해"라는 절절함이 2024년의 우리 마음에도 그대로 닿는다. 스마트폰으로 연락하던 편지로 마음을 전하던, 사랑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간절함은 변하지 않는다.
라디오 부스에서 이 곡을 틀어주며 문득 생각한다. 47년 전 그 대학생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사랑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이별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렇게 솔직하게 노래로 남겨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