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적 없이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16 - 꾸러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by 꼬르륵

"목적 없이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김창완이 들려주는 존재의 가벼움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16 - 꾸러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겨우 몇십만 년 전, 겨우 몇백만 년 전." 이 '겨우'라는 표현이 참 웃기다. 우리 인생 80년도 버거워하는 인간들에게 몇백만 년이 '겨우'라니. 김창완의 시간 감각은 정말 다르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 꾸러기가 부른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지? 공룡 이야기? 아이들 동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김창완표 시간여행

이 노래는 김창완이 우리를 데리고 가는 특별한 시간여행이다. 목적지는 인간이 없던 시절. 그런데 이 여행이 그냥 재미로 끝나지 않는다.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그럼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어른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 "그런 거 알아서 뭐해"라고 하겠지만, 김창완은 다르다. 진짜 궁금한 거다.

땅속에서 나오는 화석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지구. 바다가 육지였고 육지가 바다였다니. 생각해보면 지구도 참 바쁘게 살았구나 싶다. 우리처럼 "아, 오늘도 힘드네" 하면서.


공룡들의 여유로운 일상

그런데 이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공룡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뭔가 심심할 것 같지만, 밤하늘에는 별이 떠 있고 자연의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은 스피커에서 나오지만, 그때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바로 BGM이었다. 24시간 무료 스트리밍이었던 셈이다. 광고도 없고.

그래서 김창완은 말한다.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 것 같다. 월요일 아침마다 "아, 또 한 주가 시작이네" 하는 스트레스도 없고, 카톡 확인할 일도 없고.


사는 게 아니라 노는 거였다고?

이 노래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부분이다. 원시의 존재들은 우리처럼 목적을 위해 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그저 놀고 즐겼을 뿐이며, 자신들 이전에 누가 살았는지 돌아보지도 않았다는 것.

잠깐, 이거 너무 부럽지 않나? 우리는 매일 "나는 왜 살지? 내 인생의 목표는 뭐지?"라고 고민하며 산다. 심지어 "라이프 코칭"이라는 게 있을 정도로. 그런데 공룡들은 그런 고민 없이 그냥 살았다니.

이는 중국 작가 위화가 ‘인생’에서 한 말과 비슷하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산다." 아무리 운명이 기구해도 결국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면,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김창완의 순수한 호기심

이런 엉뚱한 상상을 노래로 만드는 김창완이 참 신기하다. 보통 가수들이 사랑 노래나 이별 노래를 부를 때, 이 사람은 "몇백만 년 전에는 뭐가 살았을까?"를 고민한다.

그런데 이게 바로 김창완의 매력이다. 나이가 들어도 아이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도 "그거 재밌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산울림의 다른 노래들도 그렇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 자연과 교감하려는 마음. 이런 게 있어서 김창완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우리도 가끔은 공룡처럼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해본다. 우리도 가끔은 공룡처럼 살면 어떨까? 별거 아닌 일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면서. 물론 공룡처럼 살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할 일도 많고 걱정도 많다. 하지만 가끔은 김창완의 노래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도시의 소음에 지쳤을 때, 자연의 음악을 들어보자. 밤하늘의 별도 보고. 그러면 마음의 숨구멍이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 김창완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처럼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자연의 친구, 사색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