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17 – 김현철, ‘봄이 와’
출근길, 터널을 빠져나왔는데 앞이 꽉 막혀 있었다. 바쁜 날이었다. 벌써 지각이다 싶어 조급해진 마음으로 핸들을 붙잡고 있었는데, 저 멀리 갓길에 멈춰 선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벚꽃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을 찍는 것 같았다. 어쩐지 머리가 듬성듬성한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그러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내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 그런 봄이 올 때마다, 꼭 라디오에서 들리는 노래가 있다. 김현철의 「봄이 와」다.
[김현철 - 봄이 와]
https://www.youtube.com/watch?v=ASfiPyq6at4
이 노래는 2002년, 김현철 6집에 실린 곡이다. 노래는 봄의 활기나 설렘보다는, 봄날의 느슨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서서히 졸음이 오고, 따뜻한 햇살 아래 어딘가 기대고 싶은 기분. ‘이럴 땐 그냥 자고 싶다’는 마음을 음악으로 옮기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노래다. 가사는 졸림과 무기력 사이를 유영한다. 하지만 그게 마냥 싫은 건 아니다. 기분 좋은 나른함, 게으름이 허락되는 하루. ‘봄이 와’는 그런 봄날의 공기를 아주 조용하게 표현한다. 애써 밝게 꾸미지도 않고, 무심한 듯 흘러가지만, 듣다 보면 괜히 미소 짓게 되는 곡이다.
김현철은 1989년 1집을 내며 데뷔했다. ‘춘천 가는 기차’나 ‘왜 그래’ 같은 곡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엔 꽤 파격적인 사운드였다. 그는 유난히 여러 장르를 뒤섞는 데 능했다. 팝, 재즈, R\&B, 보사노바 등 장르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스타일이지만, 그렇다고 튀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공부 많이 한 음악’. 프로듀서로서도 활동이 활발했다. 이소라, 이적, 성시경 등 다른 가수들의 음악에서도 그의 손길은 종종 느껴진다. 화려하진 않아도, 자기 속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음악가. 한 시대를 대표하진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이름. 김현철이다.
김현철의 「봄이 와」는 딱히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는 건 아니다.
이 노래는 매년 봄이 오면 떠오른다. 아주 자연스럽게. 봄바람처럼 지나가면서, 뒤늦게 ‘아, 이 노래 좋았지’ 하고 다시 듣게 되는 그런 곡이다. 벚꽃길을 걷다가, 혹은 커피를 마시다 졸음이 올 때, 괜히 ‘이 음악, 봄이네’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봄이 와」는 아무 일 없는 듯 옆에 있다. 김현철은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있고, 이 노래는 해마다 봄을 다르게 기억하게 만든다. 매해 조금씩 다른 얼굴로 찾아오는 계절처럼.
발표된 지 20년도 훌쩍 넘었지만, '봄이 와'는 여전히 매해 봄이 올 때마다 다시 듣게 되는 곡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 계절의 리듬과 기분을 담은 노래는 쉽게 낡지 않으니까. 그렇게 '봄이 와'는 매해 조금씩 다른 얼굴로 찾아오는 중이다. 그리고 김현철이라는 음악가 역시 변함없이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