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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어느 날, 무지개를 본 록커들 — 작은 거인

천 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19 작아도 거인이 될 수 있다는 것

by 꼬르륵

우리 부부가 알고 지내는 한 어머니가 또래보다 유난히 키가 작은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 사정을 다 알고 있던 내 남편이 그 녀석을 비행기를 태워주면서 "밥 많이 먹고 쑥쑥 커라. 키 많이 커야지~" 하고 놀아주는데 그 아이가 그러는 거였다. "아니야. 나는 지금 내가 좋아."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당황하면서도 감동했다. 엄마와 달리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 자존감이 물리적인 크기를 이긴다고 우리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 '작은 거인'이라는 그룹을 보면 그 아이가 떠오른다. 애초에 작은 거인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잖아. 그런데 작아도 거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그룹이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 아이처럼. 그룹명뿐만 아니라 무대 장악력, 노래 실력에서도 그걸 보여주기 때문에, 작은 거인은.


[작은 거인 - 일곱색깔무지개]

https://www.youtube.com/watch?v=SJ8fEWGXFbo


1979년 어느 날, 한국 록 음악에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작은 거인의 '일곱 색깔 무지개'.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자연을 소재로 한 록 음악, 그리고 김수철의 탁월한 기타 연주가 만들어낸 경쾌함까지. 보컬 김수철의 빳빳하고 쭉쭉 뻗어나가는 목소리는 그가 무대에서 입고 있는 단정한 카라 니트와 달리 묘한 삐딱함을 느끼게 해 나까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1979년, 변화의 전야

1979년은 유신체제의 막바지였다. 긴 억압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해. 그해 제1회 전국대학가요경연대회가 '젊은이의 가요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MBC 대학가요제와는 또 다른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무대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김수철을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 작은 거인이 이 무대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김수철이 솔로가 아닌 밴드 형태로 참가한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인상적이었다. 그의 뛰어난 기타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선택이었다.


비 갠 뒤의 상상력

"비가 갠 뒤 하늘에 나타나는 무지개의 신비로움을 표현하며, 그것이 하늘과 구름 나라를 잇는 다리인지 상상하며 해님에게 묻는다." 이런 가사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음악들이 도시적 감성이나 개인적 고민을 주로 다루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정서다.

자연을 보고 록을 만들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지금 들어도 신선하고 신기하다. 무지개를 보며 "저건 다리일까?" 하고 해님에게 묻는 상상력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비 속에서 꿈꾸는 무지개

이 곡의 진짜 매력은 단순한 동심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에 있다. 경쾌한 리듬과 김수철의 탁월한 기타 연주가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그려내지만, 그 이면에는 더 깊은 것이 있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지만 언젠가 떠오를 무지개를 떠올리며, 그때 느끼게 될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1979년이라는 시점에서 이 노래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긴 억압의 시간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무지개를 꿈꿨다. 비 갠 뒤 펼쳐질 맑은 하늘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순간을 상상했다. 발표된 지 4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며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이 노래는 여전히 위로가 된다.


작은 거인이 하늘에 그린 이 무지개는 단순한 가요제 수상곡이 아니다. 비 오는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의 노래이며, 언젠가 맞이할 자유로운 순간을 꿈꾸게 하는 시대의 응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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