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21- 마그마, 해야
변신하는 노래들이 있다. 처음에는 얌전하고 수줍고 고요하다가 갑자기 돌진하는 치타가 되는 노래. 나는 마그마의 '해야'가 그런 것 같다. 보컬 조하문의 노래실력도 노래 실력이지만 연주 실력도 정말 놀랍다. 쉴 새 없이 달리는 기타연주와 드럼연주가 한 번의 삐끗도 없이 보컬의 노래를 탄탄하게 받쳐주며 마침내 서사를 완성해준다. 결승선에 다다르듯이. 지금 봐도 외모면 외모, 노래면 노래 눈에 띄는 보컬 조하문과 얼마나 매진한 건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밴드의 연주실력은 지금 시대에 나와도 마그마의 스타성이 대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그마 - 해야]
https://www.youtube.com/watch?v=UCBHUcdYCWo
청취자의 신청곡으로 이 곡을 처음 틀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평소처럼 신청곡을 받아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해야 떠라, 해야 떠라"라는 첫 구절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순간 뭔가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이게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곡이라고? 도대체 누가 이런 음악을 만들었을까? 그 순간부터 곡에 집중하게 되었다. 조용한 시작에서 점점 격렬해지는 전개, 마치 잠들어 있던 거인이 깨어나는 듯한 그 역동적인 변화는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이었다.
마그마는 서울대 문영식, 연세대 김광현, 그리고 연세대 조하문이 결성한 3인조 연합 그룹이었다. 대학교 간 연합이라는 것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그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해야"로 은상을 수상하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상을 떠나서 이 곡 자체가 이미 충분한 임팩트였다.
특히 보컬을 맡은 조하문은 대한민국의 목사 겸 가수로, 오산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198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빼놓고는 "해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이 끝나고 최규하 과도정부를 거쳐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그 혼란스러운 해. 5월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외침이 총성에 묻혔고, 전국은 계엄령 아래 숨죽이며 살아가야 했다. 대학생들에게는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창구조차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해야 떠라, 해야 떠라"라는 외침은 단순한 희망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적인 어둠을 뚫고 나오려는 간절한 염원이었고, 억압된 현실에 맞서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해야"는 박두진 시인의 1949년 작 시 "해"를 개사하여 탄생한 곡이다. 원래 시의 강렬한 의지와 희망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품인데,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 개사 과정에서 시인의 허락 없이 사용되어 논란이 있었으나, 이후 정식으로 사과하고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젊은 음악인들의 열정과 실수, 그리고 성숙함이 모두 담긴 에피소드다.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강렬함이 더욱 와닿는다. 해에게 떠오르라고 간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로 시작해, 그 해가 모든 어둠을 먹고 맑은 얼굴로 솟아오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그리고 눈물 같은 골짜기의 서러운 달밤을 거부하며, 아무도 없는 외로운 뜰의 달밤조차 싫다고 토로한다.
이 가사에서 느껴지는 건 단순한 희망이 아니다. 절망적인 현실에 맞서는 의지, 어둠을 뚫고 나오려는 간절함, 그리고 외로움과 서러움을 딛고 일어서려는 강인한 정신력이 담겨있다.
마그마의 음악적 완성도는 놀라웠다.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감성, 절제된 편곡 속에서도 폭발하는 에너지,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이 담긴 보컬. 조하문의 깊이 있는 목소리는 가사의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고, 문영식과 김광현의 연주는 그 목소리를 완벽하게 뒷받침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해야"라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독창적인 음악성과 진지한 메시지는 당시 대학가요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대학생들의 음악'이 아닌,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담은 진정한 예술작품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마그마는 1981년 1집 앨범 [마그마]를 발매한 후 해체되었다.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해야"는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해처럼, 절망을 이겨내는 희망의 노래로 기억되는 이 곡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들어보면 어떨까. 여전히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꿈틀거리게 만드는 그 힘이 살아있을 것이다. 2025년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떠올라야 할 해가 있지 않을까. 각자의 어둠을 뚫고 솟아올라야 할 그 간절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