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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10. 2021

며늘아, 아를 내가 데려가면 어떻겠노?

경상도 시어머니와 서울 며느리의 공동육아기록

아마도 내가 네 살도 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하루가 있다. 두 살 위 언니, 한 살 아래 남동생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던 나는 엄마에게 버거웠나 보다. 과수원과 인삼업을 하셨던 부모님은 농번기에 나를 큰 이모와 작은 이모 집에 보냈다.


작은 이모집에서 몇 달을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기억 속의 나는 작은 이모를 엄마라 부르고, 엄마를 아줌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곤 엄마에게 아줌마 누구냐고,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막 울었다. 엄마는 나를 달래며 버스에 태우려고 했지만 나는 이모에게 달려들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뛰어서 버스 사이로 도망갔다. 그 뒤에 어떻게 버스를 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떠보니 나는 낯선 방 이불 위에 누워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 앞에 낮에 봤던 아줌마가 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빠다 아빠~"

어딘가 눈빛이 강렬한 아저씨의 미소 그리고 생경한 아줌마의 상냥한 목소리.  나는 그 모든 것이 불안해 울음을 터트렸다. 낯섦. 당황스러움. 그날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생생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난 지 50일 갓 지난 어느 날, 첫째와 둘째가 잠자는 시간이 딱 겹친 로또 같은 시간에 어머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며늘아, 나이 든 너거 시아버지가 혼자 저렇게 지내는 것도 그렇고, 애 둘 본다고 어른 둘이 하루 종일 집에만 붙어있는 것도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여. 구미에서는 저녁에 너거 시아버지가 퇴근하고 들어와서 좀 봐줄 수도 있고 그래서..."


어머님의 말씀이신즉 둘째, 즉 희망이를 어머니가 시댁으로 데려가면 어떻겠냐는 것. 그러면 아버님 끼니도 챙겨 줄 수 있고, 아버님도 육아를 도울 테니 수월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여기선 첫째도 사람 데리고 놀라캐서 아가(아기가) 낮잠 잘 때 쉰다고 쉬어도 잘 쉬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서울은 답답하시다는 거였다.


사실 돌잡이 아기와 생후 2개월 아기를 한꺼번에 보는 건 정말 힘들긴 했다. 둘째는 2시간마다 배가 고프다고 울었다. 그리고 무려 30분 동안 아주 천천히 먹었다. 그렇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누이면 한 시간이 훌쩍 갔다. 둘째만 보살펴도 밤중에 잘 수 있는 시간은 4~5시간.


그런데 하루에 두 번 낮잠을 자는 첫째는 밤 12시가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고, 몸으로 놀아주길 원했다. 또 자라는 시기에 맞게 이유식도 먹여야 했고, 똥, 오줌 기저귀도 발진이 나지 않게 자주 갈아줘야 했고, 이틀에 한 번은 동네 놀이터라도 데리고 나가야 했다. 그렇게 두 아이에게 몸을 내주며 어머니와 나의 얼굴은 어딘가 멍하고 허옇게 뜬 얼굴이 되고 있었다.


마음이 덜컥했다. 답답하신 어머님 심정은 나도 마음이 답답하고 충분히 이해가 갔다. 혼자 계신 아버님이 걱정되시는 마음도. 그리고 아버님께도 죄송했다. 하지만 차마, 선뜻 괜찮겠다는 말이 입에서 안 떨어졌다. 머뭇거리다 그렇게 되면 애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는 나에게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근데 그건 지금 상황에 네 욕심이라"

"....?"

당황스러워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물으셨다.

"내가 아 보는 게 믿음이 안 가드나?"

"...."

그건 아니었다. 어머님은 너무도 희생적이셨고, 매사 세심하게 노력하셨다. 그리고 어머니 말씀대로

아무렴 어머님 손자, 손녀인데 안 예쁠 수가 없고, 안 귀할 수가 없으리라. 나는 그것도 방법일 수 있겠으나, 남편과도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일단 마무리했다.


퇴근 후 어머님의 제안을 들은 남편의 태도는 완강했다. 100일도 안된 아기를 엄마가 없는 곳에 데려가는 것은 무리라는 것, 아직 내가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혼자 11kg이 넘는 첫째를 안고 돌보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내가 부정맥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을 받긴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의 생각보다 잘 지내고 계실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자는 그렇다고. 남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나 확고한 태도에 어머니는 그러면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고 한 발 물러서셨다.


어머님과 첫째가 건너 방에서 자고, 거실에는 둘째가 잠을 자는 새벽. 남편과 나는 어둠 속에서 마주 앉아 고민했다.

남편은 힘이 들더라도 자기가 새벽 2시까지는 희망이를 돌봐야겠다고, 그래야 나나 어머니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더 쉬고 다음날 덜 힘들게 애를 볼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에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은 잠이 들면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질 못했다. 그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기를 보낸다? 애가 어려서 기억을 못 한다고 해서 정말 괜찮을까? 말을 못 해도 다 느끼지 않을까? 

차라리 사람을 쓸까. 하지만 도우미가 아침 8시나 9시부터 출근한들 어차피 한 아기는 전날 잠을 설친 내 몫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 아기는 잘 볼 지 마음이 안 놓였다. 더구나 남편의 평균 퇴근시간은 저녁 8시 반. 대부분의 도우미는 저녁 6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도우미가 퇴근하고 두 아이가 동시에 울기라도 하면 정말 전쟁통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잠만 설친 채 그날도 새벽 3~4시까지는 내가, 그 후 7시까지는 어머니께서 둘째를 먹이고 재우며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종종 아기가 잘 때 몸을 누이며 낮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어머님과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어머님은 유난히 거실이 아닌 방에 더 오래 계셨다.


결국 나는 어머님과 솔직하게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피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까.


좀처럼 속을 잘 안 내비치던 소심한 며느리가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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