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23-신중현과 엽전들, 미인
1974년의 미인, 2024년의 미인
문득 궁금해진다. 신중현이 노래한 "한 번 보고 또 보고 싶은" 그때의 미인과 지금의 미인은 같을까, 다를까?
1974년의 미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긴 생머리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수줍게 고개를 숙이던 그런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미니스커트를 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던 모습이었을까.
지금의 미인은 어떨까. SNS에서 완벽하게 보정된 셀카를 올리는 미인일까, 아니면 여전히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 뒤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미인일까.
하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확신하게 된다. 미인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순간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5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은 한국 록의 전설이 남긴 중독성 넘치는 걸작,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신중현과 엽전들 - 미인]
https://www.youtube.com/watch?v=Uiql2XJKrqE
변하지 않는 마음을 담은 음악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가사의 단순함이 오히려 강렬하다. 복잡한 수사도, 화려한 비유도 없다. 그냥 솔직하다.
미인을 보는 마음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요즘 곡들보다 더 솔직하고 매력적이다. 이게 바로 진정성의 힘이 아닐까.
자신만의 색깔을 만든 아티스트, 신중현
신중현이라는 인물을 알아갈수록 경외감이 든다. 1970년대는 외국 것을 우대하고 우리 것을 깎아내리는 풍조가 심했던 시절이다. 양복은 멋있고 한복은 촌스럽고, 팝송은 세련되고 우리 민요는 구식이라고 여기던 그 때 말이다.
하지만 신중현은 달랐다. 서양 록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에 국악과 민요의 요소를 결합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시도였다. 검열과 제약이 심했던 시절에 이런 자유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기적이다.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혼자 해내면서 한국 록의 기초를 다진 진짜 레전드. 하지만 그가 진짜 대단한 건 남의 것을 따라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엽전들"이라는 이름에 담긴 철학
'엽전들'이라는 밴드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 나서 소름이 돋았다.
그 시대에 신중현은 우리 전통 화폐인 "엽전"을 밴드 이름으로 걸고 나왔다. 이게 단순한 네이밍이 아니라 문화적 선안이었던 거다. "우리 것도 충분히 멋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지금 들어도 쿨할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 맥락을 생각하면 정말 용감하고 철학적인 선택이었다. 상업적 논리를 따라 외국 밴드 이름을 흉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우리 정체성을 당당하게 내세운 거다.
개성이 만든 중독성
이 곡의 가장 큰 매력은 중독성이다. 한 번 들으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맴돈다. "미인아 미인아" 하는 부분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단순한 반복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방송을 하면서 가끔 이 곡을 틀어준다. 반응이 재미있다. 기성세대는 "아, 이 노래!" 하면서 추억에 잠기고, 젊은 세대는 "이게 언제 나온 곡이에요?" 하면서 놀란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리메이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음악의 힘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지금도 필요한 그 정신
지금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것도 결국 이런 정신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우리 걸 바탕으로 하되 세계와 소통하는 음악. 신중현이 이미 50년 전에 시작한 일이었다.
어쩌면 진정성이라는 게 이런 것 같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색깔을 지키는 것, 외국 것을 무조건 따라 하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 복잡하게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 신중현이 50년 전에 보여준 그 정신이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상업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유행을 쫓지 않고, 그냥 나다운 소리를 내는 것.
음악의 색깔이라는 것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이 곡이 지금도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50년 전 기타 리프에 담아낸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색깔 말이다. 결국 음악은 나의 색깔을 찾는 일이다. 신중현이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