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이루어지는 소원들

by 꼬르륵

최수빈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미나는 다시 예전처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훨씬 더 행복했다. 그리고 채린이가 다니는 수학학원을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의 편의점 알바 덕분이었다.

"아... 왜 이렇게 시험이 자주 돌아오냐. 엄마가 이번에는 수학 점수 좀 높여보라는데 내 맘대로 되냐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5월 말, 학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채린이 터벅터벅 걸으며 애꿎은 가방끈을 잡아 끌며 말했다.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고, 두 사람은 벌써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그래도 너는 80점은 넘으니까 그러시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나한테 제발 반만 맞아보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문과야. 수학은 정말 모르겠어"

미나의 입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수학 교과서를 보며 벽을 느낄 때마다 미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아무래도 이과 머리는 아닌 것 같아. 일찍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진작에 수학학원을 보냈어야 하는데, 승진을 하든 회사를 옮기든 아빠 월급이 적어서 못했다는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나는 언제부터인가 성적에 관해서는 엄마에게 입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고 늦은 저녁이고 어떻게든 대타까지 뛰어가며 미나를 뒷바라지하려는 엄마를 보면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수학학원은 공기마저 답답했다. 에어컨이 켜져 있지만 밖의 무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칠판에 적힌 이차함수의 꼴 y=ax²+bx+c와 근의 공식 x=(-b±√(b²-4ac))/2a를 선생님은 꼭 외워야 한다면서 이것도 안 외우면 시험 망하는 거라고 차가운 얼굴로 말하고 또 말했다.

미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이상하게 자꾸만 수학공식이 아닌 엉뚱한 말들이 떠올랐다.

'에효, 저걸 언제 다 외우고 있나. 그나저나 이번 시험 성적도 잘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동안 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미나는 떠오르는 대로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그때 그 할머니가 준 노트였다. 오늘 아침 미나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만들어주며 수학학원은 좀 어떠냐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무거워지는 마음.

'나도 수학시험 100점 한번 맞아봤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 좋아서 기절할 듯.'

미나는 떠오르는 대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생하는 우리 아빠가 승진이 됐으면..."

조금씩 솔직해지는 고백... 불현듯 미나의 머릿속에 최수빈 무리의 말이 떠올랐다.

'손미나 생긴 거 진짜 밋밋하지 않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말들이 떠오르면서 미나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나도... 지금보다 좀 예뻐졌으면..."

미나는 계속해서 끄적였다.

"미나야~ 손미나!"

갑자기 누군가 미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채린이었다.

"뭐해, 수업 끝났으니까 가자니까."

"어어..."

미나는 혹시나 채린이 볼까봐 서둘러 책과 필기구를 가방에 쓸어담았다. 그리고 학원 교실을 나서는 채린을 따라 뛰어나갔다.



"미나야~ 학원 마치는 대로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으로 와~. 아빠가 네가 좋아하는 노노치킨 사 왔다"

며칠 후, 학원이 끝나갈 무렵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웬일이지? 물결 표시도 잘 쓰는 법 없는 아빠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학원이 마친 후, 채린과 함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갈까 했는데 미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이 됐다. 하지만 치킨의 유혹이란... 쉽지 않았다. 미나가 아빠에게 톡을 했다.

"아빠, 채린이도 같이 가도 돼?"

아빠에게 답이 왔다.

"00 엄마도 오케이 했어"

채린은 신나 했다. 어차피 집에 가도 혼자 있을 것 같은데 잘됐다며.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자 에어컨 실외기들이 윙윙거리며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서자 벌써 치킨 냄새가 새 나오는 듯했다.

'디디딕따띡띳'

문을 열자, 모처럼 엄마 아빠가 동시에 미나를 반겼다.

"어서 와라, 딸~"

아빠가 채린에게도 다정하게 인사했다.

"이야 채린아 못 본 사이에 키가 더 컸구나. 어서 들어와라"

"네~ 감사합니다."

엄마는 치킨이 있는데도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엄마표 제육볶음이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미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거실 천장의 선풍기가 천천히 돌아가며 매운 냄새를 섞어 놓고 있었다.

채린이가 싹싹하게 숟가락을 옮기는 동안 미나가 가방을 방에 가져다 두며 물었다.

"아빠, 오늘 무슨 날이야? 엄마 아빠 생일도 아니잖아"

"....ㅎㅎㅎ 아니지"

아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모두 자리에 앉고 나면 이야기하자"

미나는 엄마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요리를 하는 엄마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기가 돌았다.

"자~ 이제 모두 먹자"

붉은 제육볶음이 하얀 접시에 담겨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타났다. 알싸한 향에 미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밖에서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지만, 집 안은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다.

"자~ 아빠가 아주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 아빠가 드디어 승진을 했다. 이제 아빠 차장이다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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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들풀 같으나 은근히 강한 사람, 연년생 남매를 키우며 대화를 배우는 사람, 라디오와 음악으로 기쁨과 위로를 주고 싶은 사람 입니다. 건강하고 무해한 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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