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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Sep 08. 2021

어머님, 제 점수를 매기지 말아 주세요

경상도 시어머니와 서울 며느리의 공동육아기록

장군이(둘째)를 시댁에 맡긴 후 나는 종종 남편 없이 시댁에서 다녀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둘째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어쩌면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사서 고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육아를 랜선으로 하든, 시댁에 직접 내려가서 하든 쉬운 건 없었다.


#시댁과 산후조리원 동기

언젠가 첫째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큰 마음먹고 모였을 때였다. 이른 복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시댁에 맡긴 한 동기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시누이가 바깥에서 신던 양말채로 아기 침대에 올라가는데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마침 시동생이 결혼을 하는데 축의금은 얼마나 해야 할까', '나는 50 생각했는데 남편은 100을 하잔다', '시댁에 애까지 맡겼는데 적게 하면 뭐라 할까 봐 눈치 보인다', '이유식을 만들어드려도 어머님은 끝까지 먹이질 않으신다', '우리 친정엄마는 고생한 나를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먹이시는데...'라는 류의 불만이었다. 시댁 욕을 하며 얼굴이 벌게진 그 친구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이해는 갔다. 뒤에서 욕하는 것 말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테니까. 그러자 다른 동기들은 그냥 50을 하라는 둥, 그래도 뒷말 듣기 싫으면 100만 원 하라는 둥 소란스러웠다. 결국 모두가 100만 원을 하는 것이 우주의 평화를 위해서도 또, 아이를 위해서도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를 무렵 눈이 빨개진 그 친구가 마침표를 찍 듯 말했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시댁에 애는 맡기지 마세요. 내 꼴나요. 을도 이런 을이 없다니까요."


이미 둘째를 임신해서 어머님의 도움을 받기로 한 나는 혼자 꿀꺽 침을 삼켰다.


#어머니, 아기 머리를 왼쪽으로 좀 돌려주세요.

어머니께 둘째를 맡기고, 내가 첫째를 서울에서 보는 동안 나의 랜선 육아는 시작됐다. 안 좋게 말하면 '참견 육아'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엄마라는 지위를 내세워 어머니께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어제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장군이 분유량과 변 상태는 어땠는지(본론) 확인했다. 그런데 영상통화로 장군이를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머리 방향!


장군이는 자꾸만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잤다. 그래서 오른쪽 뒤통수가 눌린 사두증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나는 이 부분이 신경 쓰여 짱구 배게, 엉덩이 수건 등을 이용해 늘 왼쪽으로 머리가 기울도록 했다. 그리고 어머님께도 사뭇 진지하게 부탁드렸었다. 장군이 머리를 꼭 왼쪽으로 돌려달라고. 하지만 내가 그런 말씀을 드릴 때마다 어머님은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며 너무 예민하게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은데... 그래도 잡아줄 수 있을 때 잡아 주는 게 좋은데...'


소심해진 나는 이 정도 말씀드렸으면 그만 하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이 둘째가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용 사진으로 의기양양하게 보내신 동영상에 또! 장군이 머리가 오른쪽으로 눕혀 있었다. 이번엔 아예 모빌도 오른쪽에 있었다. 결국 어머님께 다시 동영상을 공유하며 카톡을 보냈다.



소심한 '^^'도 함께.


어머님은 알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리고 전화가 오셨다.


 "느그 시어른이 내가 잠깐 부엌 간 사이에 아를 보면서 모빌을 오른쪽에 두고 놀았던기라. 에이고"


아버님을 핀잔하는 듯한 어머님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내 눈치를 보시는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결국 과열된 내 관심을 잠깐 환기하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혼자 보지 못해서 부탁을 드린 상황이잖아.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어. 어머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만하자'


사실 내 고민을 들은 제삼자가 '이제는 그만 말씀드리는 게 좋겠네요'라며 각성해 준 덕도 있었다. 그 후, 나는 둘째가 왼쪽으로 눕혀도 자꾸만 오른쪽으로 머리를 기울인다는 것을, 현실 육아는 역시 랜선 참견질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을 시댁에 내려가서야 알게 됐다. 다시 한번 부질없는 예민함과 어머님의 넓은 아량을 깨달으며 결국 입을 다물었다.


#200점짜리 며느리

어머님은 마당발이셨다. 인심도 좋으셔서 인근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셨다. 그래서 친척이나 지인들분들의 안부전화를 자주 받으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경쾌하게 말씀하셨다.


"아, 내가 요즘 손주 봐주고 있어서 잘 못나가요. 그래. 얼마나 예쁜지 아나. 그래, 그래. 작년에는 딸 낮고, 올해는 아들 낳고. 그래. 우리 며느리 대단하지. 가 못 낳은 딸도 낳아주고. 골고루 아들, 딸 낳아주고. 200점짜리 며느리라. 200점짜리!!! 하하하하하하"


며느리를 칭찬해주고 싶은 어머님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그런데 그 칭찬이 어딘가 서글픈 구석이 있었다. 유난스러운건지 나는 아들과 딸을 골고루 낳아서 200점짜리 며느리라고 점수가 매겨지는 사실이 불편했다. 솔직히 아기 성별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부터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리고 자녀를 낳는 것으로 사람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좀 비인격적이지 않은가! 사실 며느리가 점수 매겨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도 싫었다. 부대끼는 마음을 표현을 해봐야 하나, 웃어넘겨야 하나 그러는 사이에도 어머님의 200점짜리 칭찬은 전화가 올 때마다 계속됐다.


결국 나는 기회를 봐서 어머님께 가볍게 표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요. 어머니. 어느 대학 연구에서요. 아기 성별은 남편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고서를 냈대요. 좀 피곤하면 딸이고, 아니면 아들이라나요. 호호호. 그리고 요즘은 아들 낳고, 딸 낳는 걸로 며느리 칭찬 안 하더라고요.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정도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다. 다시 정신없이 애 둘을 보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다음날 남편이 주말을 맞아 내려올 때까지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대로 묻히려나. 어딘가 불편한 마음을 갖고 다시 서울로 나서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그러셨다.


"며늘아. 혹시나 내가 며늘이 마음 안 들게 하는 부분 있어도 옛날 사람이라 그러려니 이해해. 우리 같은 사람은 잘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니께. 아마 며늘이 부모님도 그럴끼라"


내 마음을 읽으셨나. 아니면 내 얼굴에 뭐라고 쓰여있나. 깜짝 놀랐다.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까. 나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들킨 듯 찔렸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어머님의 말씀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비록 그 방법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머님 나름대로 내 칭찬을 해주고 싶었던 마음을 느끼게 됐다.


'200점짜리 며느리라...'


다음에 또 이 칭찬을 들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어머님께 아들, 딸 낳은 거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제 점수를 매기시지 말아 달라고 해야 하나.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은 어머님을 이해해드리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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