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중순 나는 육아휴직을 냈다. 임신하고 휴직을 하기까지 나는 사무실에서 엄청난 유난(?)을 떨었다. 두 차례나 쓰러진 것이다. 임신성 빈혈이었다.
내가 구급차에 올라탈 때 당시 나와 프로그램을 함께 하셨던 나의 사수, 부장님의 당황스러운 얼굴이 생각난다. 나에 대한 걱정스러움 반, 행여 불똥이 튈까 걱정스러움 반. 내가 그렇게 실려가고 나서 실제로 사무실에는 부장님이 임신 초기인 나에게 프로그램을 다 맡기고 일주일 동안 휴가를 가셨다. 안 그래도 꼬르륵이 지난주 내내 야근하더라. 임신 초기인 여직원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는 아주 합리적인(?) 뒷말이 돌았다. 그 후로 나의 사수셨던 부장님은 내가 산부인과를 가거나 휴가를 내는 부분에 대해 기꺼이 잘 다녀오라고 하시며 모두 들으라는 듯이 부장님의 자애로움을 뽐내셨다(?). 그렇게 한 아이도 유난스럽게 낳았는데 휴직 중에 둘째까지 갖았다고 하니 모두 놀랐다. 그렇게 고생해서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둘째냐고, 몸은 괜찮냐고,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나도 해보고 알았다. 다만 빡세다. 그리고 어느새 그 빡센 생활에 복직이라는 전환점이 다가왔다. 막상 복직을 앞두니 새삼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복직 후 어린이집 생활을 해야 하는 첫째를 데리고 어린이집 현관에서 헤어지는 연습을 할 때마다 정말 맴찢이다. 투명한 현관문을 앞에 두고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문을 두드리는 아이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건 정말 쉽지가 않다. 시댁에 맡겨 놓은 둘째를 어느 시점부터 데려와야 할 지도 고민이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한동안 어머님도 같이 계셔야 할 것 같다. 복직을 코앞에 두고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모두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내가 그런 엄마가 됐다.
이럴 때 스치듯 본 광고.
"도망가자~♪"
여기어때의 '도망가자 엄마도 휴가가 필요하니까' 편. 광고 속 아이들이 놀던 공에 머리를 맞은 엄마의 눈앞에 젊을 적 배낭여행 사진이 붙어있다. 그리고 사진 속의 젊은 그녀가 그녀에게 손짓한다. 여행 가자고. 피식. 정말 핵 공감이 돼서 웃었다. 그러고 문득 나에게도 저런 시기가 있었는데 하며 나의 유럽 연수 사진을 찾아봤다. 참 싱그러웠다. 곧 다가올 엄청난 체력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체코 프라하 근처 체스키크롬로프의 여느 광장에서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분명 사진 속의 있는 사람은 나인데 무심코 나에게 말했다.
(신비스럽고 싶어서 먼 구도의 사진 첨부.ㅎㅎ)
'좋겠다. 넌'
좋겠다. 혼자 커피 마실 수 있어서. 좋겠다. 네 몸 하나만 건사하면 돼서. 좋겠다. 화장을 신경 써서 할 수 있어서. 좋겠다. 좋겠다. 예쁘네.
그렇게 슥슥 사진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첫째 아이의 출생사진까지 왔다. 한 장 한 장 사진과 동영상을 넘겨봤다. 처음 태어나고 가슴에 올린 채 찍은 사진. 조리원에서 젖병을 빨던 모습, 처음 웃던 날, 처음 뒤집은 날, 처음 서던 날, 거울에 자기 얼굴 보고 웃는 장면, 베란다 앞에서 옹알이하는 장면, 나 따라오겠다고 기다가 신발장으로 꼬꾸라지기 전 사진. 내가 '크크크'하면 '까르르' 웃던 장면, 온몸에 빨갛게 뒤범벅이 되어서 딸기를 먹는 사진. 사과를 다 씹고 뱉는 사진, 처음 짜장면 먹고 얼굴이 짜장면 양념으로 범벅이 된 사진. 처음 놀이터에 간 사진.
그렇게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서운했다. 아기가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았다. 뭔가 뭉클하면서도 아쉬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그런 시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 둘째도 이렇게 크고 있는데 나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보고 있구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좀 전엔 복직하면서 아이들 말고 내 몸뚱이 하나만 걱정하고 싶었는데 고새 아이들이 좀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어린이집과 복직 또 엊그제는 아기가 한 시간을 울다 잤다. 어린이집에서 한 분리 연습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지켜보던 남편이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여보. 나는 당신이 지금 복직을 하는 게 맞나 싶다. 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첫째는 18개월 차다. 그리고 나는 둘째를 포함 2년 내리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지만 1년 6개월을 채우고 복직하기로 했다. 나는 남편에게 그럼 내가 6개월 후 아기를 어린이집을 보내면 그때는 애가 안 힘들어하겠냐고 물었다.
"아니, 그래도 적응기간을 오래 가질 수 있잖아..."
사실 나도 아이가 울다 잠드는 걸 보며 알 수 없는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런데 남편이 내 복직이 이른 것 같다는 말을 하자 원인모를 감정이 남편에게 향했다. 나는 다른 애들은 3개월 차에도 간다. 당신도 처음에는 힘들면 그렇게 하자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 하나 몇 달 후에 하나 어차피 힘들다. 정 마음이 쓰이면 당신이 좀 육아휴직을 쓰던 지 해라 했다. 그러자 남편. 이직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자기가 육아휴직을 쓰느냐 했다.
그러면 나는? 나도 좀 사회생활하고 싶다. 재작년 임신부터 출산까지, 또 애 보면서 임신하고 출산까지. 끝이 안 보이는 체력장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도 말이 통하는 어른들이랑 '님'자 호칭 들어가면서 대화하고 싶다. 하루 종일 애랑 있는 것보다 그렇게 애를 보는 게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지내봤으면 당신은 절대 복직 미루란 말 못 했을 거라며 마지막엔 나는 남편에게 서운하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남편은 나도 당신 힘든 거 안다. 어떤 심정인지도 알겠다며 다독였다. 그런데 그래도 애가 힘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내가 희생해야 된다는 말이 이렇게 쉬울 수 있어?"
급기야 나는 빼악했다.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꼭 희생이 아니라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도 자기 계발하는 시간이 생기지 않겠느냐 했다. 어머님과 장군이도 함께 올라와도 될 거라고. 정말 궁금했다. 과연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다고 둘째와 어머님이 집에 계시는데 내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자기 계발은 고사하고, 어머님도 둘째 볼 때 내가 나가는 게 편하실 거라고 그랬다. 그러자 남편은 안 그러실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휴. 어쨌든 내가 복직을 안하겠다고 그러면 모를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말은 그렇게 다부지게 해 놓고 뒤돌아 누워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내가 6개월만 더 참으면 애들이 덜 힘들까? 어차피 애는 어린이집에 가야 되는데 내가 나가서 돈을 벌고 어머님도 돈을 더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고민의 끈이라도 끊어버리고 싶어서. 하지만 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결국 엄마가 결단을 해야 하는 건지, 나의 부재는 왜 죄책감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지 끝나지 않는 의문에 결국 눈물까지 흘렀다. 그렇게 베개를 적시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생각은 여전하다.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자. 그러지 않아도 엄마들은 결국 자식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는 말에 채찍질 하지 마시라. 가는 말도 자기 의지로 뛰어야 덜 힘들다. 엄마의 희생엔 채찍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