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꼬르륵 Sep 23. 2021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시어머니

아들보다 나이 많은 며느리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며느리

요즘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대세다. 서로를 향한 기싸움과 모략, 그리도 불꽃 튀는 춤 대결은 육아에 지친 남편과 나에게 마라맛 재미를 느끼게 했다. 우연히 춤대결 프로그램을 보며 육아 스트레스를 날린 뒤 추석 연휴를 맞아 시댁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도 우린 그 화면만 나오면 한동안 멍 때리고 바라봤다. 트로트도 잘 듣지 않으시는 시부모님께는 생경한 광경이었다.

어머님의 표정은 "저게 머꼬?"였다.

남편은 첫째를, 나는 둘째를 아기띠에 맨 채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TV를 보고 있자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의 시선이 가 있는 화면을 바라보셨다.

리더 계급의 모니카가 노제에게 워스트 댄스 지목을 받고 살벌한 전포고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어머님.


"자 나이가 얼마나 됐나. 한 우리 꼬르륵이 정도 돼 보이는데"


화려한 춤과 카리스마에 반해 모니카 댄서의 나이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니 내가 저 정도로 보이는구나 싶었다.

'나보단 많으실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솔직히 내가 좀 노안이긴 했다.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런데 남편,

"엄마, 그게 뭔 소리고? 엄마는 말을 좀 줄여야 돼. 어디를 봐서 꼬르륵이 저 또래가?"

어머님께 급발진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남편의 사랑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 기분이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흑기사를 자처하고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잘은 모르겠는데 삼십 대 후반일 것 같아요. 저도 이제 삼십 대 후반이긴 하죠. 하하"

그랬다. 남편의 말에 당황한 어머님은  

"아, 지금 보니 우리 며느리보단 두세 살 많아 보이네"

라며 수습하려 하셨다. 그런데 어쩐지 소파에 앉은 어머님의 몸이 들썩들썩하셨다. 어쩔 줄 몰라하는 어머님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머리를 붙이니 나(나이)가 들어 보인다.  

남편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나는 웨딩사진을 좀 다르게 찍고 싶었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그래서 야외를 배경으로 찍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셀프 웨딩드레스를 사서 입고 한여름 녹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땀을 엄청 흘렸다. 두꺼운 메이크업을 한 우리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를 따라 나온 사진 업체 직원분께서 중단발인 내 머리 길이가 애매하다며 머리를 붙여보자고 하셨다. 이어 붙인 머리 때문에 목 뒤가 뜨끈했지만 사진을 위해 참았다.

그렇게 찍은 사진의 원본을 받은 순간 나는 보정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공유하진 않았다. 그런데 남편, 자랑스럽게 시댁 식구들에게 공유를 해버렸다.


"응? 벌써 보여드렸다고? 뭐라고 하셔?"


시부모님의 반응이 어땠을지 신경 쓰였다. 남편은 예쁘다고 하셨다 하고 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가족 카톡방에 웨딩사진을 공유한 후 어머님의 반응을 보고 말았다. 예쁘다는 반응과 함께

"그런데 꼬르륵이 머리를 붙이니까 나가 좀 들어 보인다."

는 톡이 있었다. 그 방엔 아버님과 남편, 도련님도 있었다. 기분이 안 좋았다. 사진 자체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나의 외모가 내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시댁 식구들에게 평가받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아직 보정도 안된 사진을 마음대로 공유했다며, 어머님이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하신 것도 솔직히 기분 안 좋다며 남편에게 뭐라 했다.


남편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예쁘다고, 엄마가 괜히 하는 말이라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요즘 두 살 연상이 무슨 나이 차이냐. 너무 모르시는 거 아니냐. 전에 집 대출 관련해서 통화하셨을 때 어머님은 나한테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네가 아들보다 나이가 많잖아...' 이러시더라. 나는 왜 갑자기 그 말하시지 했는데 끊고 보니까 '너도 이런 흠 있잖아.' 그런 느낌이시더라. 두 살 연상인 걸로 내가 왜 부족한 사람인 양 평가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조선시대냐?'고 그랬던 것 같다.


안 그래도 결혼 준비로 민감했던 나는 그날 남편에게 그 일로 한동안 까탈스럽게 굴었다. 그 뒤로 남편은 내가 남편보다 연상인 부분에 대해 시부모님께 단단히 주의를 시킨 듯싶었다. 앞으로 꼬르륵이한테 나이 말은 하지 마시라고.


그 뒤로 나는 시댁에 가도 내가 남편보다 두 살 인 건 잊고 살았다. 그만큼 나이와 관련한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내 나이보다 더 있게 봐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도 않고, 아가씨인 줄 알았다고 해도 그다지 좋지도 않다. 나름의 매력과 분위기가 좋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모니카 댄서를 보며 별 뜻 없이 한 어머님의 말도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남편과 어머님의 반응이 어쩐지 재밌기까지 했다.


#연장자부터

그렇게 스우파 사건이 있은 후 다음날 우리는 다 같이 해물탕을 먹었다. 내가 국자를 들어 아버님 그릇에 떠드리고, 직접 떠 드시겠다는 어머님도 탕을 덜으신 후, 남편에게 국자를 주자 남편이

"당신 먼저 해. 나이 순으로 해요. 하하하"

했다. 남편은 자기가 친 장난이 맘에 든 듯 헤헤 웃었다.

"나이?"

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밥상에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별 뜻 없이 되물었는데 남편의 표정이 어쩌지하며 서늘해졌다. 시부모님의 시선은 반찬에 있었지만 나는 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앞이마의 모든 신경이 나를 향해 계신 것을.

"흐흐. 그러지 뭐"

대수롭지 않게 나는 국자로 내 그릇에 탕을 덜었다. 순간 밥상에 긴장감이 풀렸다. 그리곤 다들 맛있게 해물탕을 먹었다.


아직 시부모님이 계신 곳은 보수적인 동네다. 그래서인지 시부모님은 내가 시집갈 때 며느리가 당신 아들보다 두 살 많다는 이야기를 굳이 주변에 안 하시는 듯싶었다. 그러면 어떠하랴. 나는 나다. 그런 것도 솔직히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제 나이 때문에 자체 검열(?)은 안 하셔도 된다고, 그리고 가끔은 남편보다 연장자 대우도 좀 해주시라고 언젠가 웃으며 말씀드리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희생에는 채찍이 필요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