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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Nov 19. 2021

시어머니의 차를 시원하게 긁다

경상도 시어머니와 서울 며느리의 공동육아기록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운전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되니 운전도 엄마 노릇 중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장롱면허를 탈출하고자 지방만 내려가면 시부모님과 친정 엄마의 차를 몰고 다녔고 제법 운전실력이 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운전을 꽤 잘하는 줄 알았다.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회사로 출근을 하는 서울 운전도 해볼 만했다. 그런데 방심은 금물이랬다. 특히나 운전은 그런 것 같다.


둘째를 돌보시느라 외출을 거의 안 하시는  어머님은 흔쾌히 나에게 차를 대여(?)해주셨고, 며칠 전 나는 그 차를 시원하게 긁어드렸다. ㅜ


때는 2차 백신 접종을 맞고 백신 휴가를 쓴 날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니  오랜만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어머님이 올라오셔서 집에서 둘째를 보고 계시긴 했지만 둘째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님도 쉬고 계실 텐데 괜히 깨시게 하지 말고 좀 있다 가자'


나는 차를 돌려 근처에 갈만한 카페를 찾아 배회했다. 그런데 카페가 있어도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어린이집 근처를 세 바퀴쯤 돌고 나니 결국 주차할 곳이 어린이집 지하 주차장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곳은 들어가는 차와 나오는 차가 마주치면 한쪽이 뒤로 빼야만 하는 통로가 좁은 주차장이었다. 아직 초보인 나에게는 기피대상이다.


하지만 오로지 혼자 카페를 가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그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도와 맞물린 주차장의 입구로 차의 앞부분을 밀어 넣은 순간부터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무리수인데.'


그 순간 사이드미러가 통로 벽면에 부딪혀 순식간에 잡혀버렸고, 접힌 쪽 뒷 광경을 볼 수 없었던 나는 당황해서 액셀을 밟았다.


"찌지직"


불길한 소리와 함께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어? 어쩌려고 저래?'


하는 표정으로 과연 내가 차를 어떻게 할지 쳐다보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났다. 결국 그대로 후진을 해서 주차장에 들어가지 않고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내내

어머님께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다. 내가 아는 어머님 성정상 크게 뭐라고 하시진 않겠지만 당황하실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여니 어머님께서 거실에 놀고 있는 둘째 앞에 앉아 과일을 드시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응. 고생했다. 과일 무(먹어)"

"네. 어머니"

어쩐지 평소보다 더 공손한 자세로 어머님 앞에 앉으며 나는 매도 일찍 맞는 게 낫겠다 싶어 바로 입을 뗐다.

"어머님, 저 근데 제가 첫째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커피 좀 잠깐 마시고 싶어서 주차장에 차를 데다가..."

"긁었나?"

아직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어머님께서 훅 들어오셨다.

"네? 네..."

"는 괜찮나?"

"하하하하하. 괜찮아요. 긁으면서 배우는 거지. 이왕 긁은 거 더 긁어. 조금만 긁고 문짝 갈라면 아깝잖아. 너만 안 다치면 되지. 차 긁은 게 대수냐. 하하하하하"

어머님이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러시면서 어머님은 주차 브레이크를 올리지 않아 내리막길에 주차한 차가 어머님 뒤로 따라내려 온 사건(천만다행으로 맞은편 벽에 세워있던 고무 타이어를 받고 멈췄다고 한다). 새벽 운전 중 졸음에 잠깐 눈을 감고 떠보니 앞에 트럭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식겁하셨던 사건, 시부모님 모시고 병원 갔을 때 주차 못해서 진땀 뺐던 사건 등

여러 일화를 들려주셨다. 그러시면서 운전은 이래저래 배우는 거지만 꼭 주차 브레이크는 하라는 것과 졸음운전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주차가 너무 어려우면 차라리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도 하셨다.


나는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안도하며 '네네'했고, 지금 이 글을 적는 지난 두 달 동안 그 후론 차를 긁거나 사고가 있진 않았다. 어딜 가더라도 주차 브레이크는 꼭 하고, 운전하면서 졸본 적은 없다.


운전만 배운 게 아니다. 살면서 실수를 안 할 수 없는데 실수한 걸로 집안에서도 물고 뜯기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가족끼리 다독이기라도 해야 이 힘든 세상 살아나가지' 하며 행여 나도 누가 실수하면 '그대만 안다치면 되지. 차가 대니까'라고 해야지 하며 생각했다.

그런 게 족이지. 그래야 살아나가지. 워킹맘으로 정신없는 요즘 그마나 가족끼리 다독이며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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