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꼬르륵 Dec 05. 2021

어머님, 제가 엄마잖아요

워킹맘 다이어리

둘째가 감기에 걸렸다. 어린이집에서 감기에 걸린 누나에게 옮아 결국 감기에 걸렸다. 동생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첫째는 어린이집을 갔다가 오기만 하면 둘째에게 돌진했다.


"뽀뽀, 뽀뽀, 뽀뽀"


첫째는 둘째 얼굴 곳곳에 뽀뽀를 외치며 뽀뽀한다. 다른 가족들한테는 안 하는데 동생에게만 그런다. 그 모습이 예뻐 걱정이 되면서도 냉정하게 막질 못했다. 한바탕 뽀뽀 잔치를 끝낸 첫째가 다른 곳으로 가면 이제는 둘째가 첫째를 따라 기어간다. 엎치락뒤치락. 그렇게 서로 부대끼며 놀았는데 안 옮을 수가 없다.  


콧물이 흐르는 건 그나마 괜찮다.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니 걱정이 됐다. 해열제를 먹이며 지난 며칠은 혹시나 열이 더 오르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나 신경이 예민해있었다.


다행히 어제는 열은 오르지 않고 콧물 증세만 남았다. 어머님 방에서 잠든 둘째를 확인하고, 나도 잠을 자려는데 남편이 그랬다.


"내일 엄마 서울 이모 댁에 가신대. 그리고 지난번 우리 ㅓ우러논ㅍ냐두ㅡ"


그다음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뭐? 이모님 댁에 가신다고? 그럼 희망이도 데려가시는 거잖아."


"그렇지. 안 그래도 나도 내일 아침에라도 당신한테 말부터 하시라고 했어"


"...."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남편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직 정말 갈지 결정 못하신 것 같기도 하고... 내일 당신한테 말씀하실 거야"


안 그래도 서울생활이 답답하면 '희망아, 할미랑 구미 내려갈까?' 농담처럼 이야기하시던 어머니셨다. 그런데 아무리 농담이라도 난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선뜩했다.


'내가 엄마인데... 어머님 마음대로 데려가고 데려오고 할 수 있으신 건 아닌데... 왜 굳이 저런 농담을 하시지...'


하지만 그에 대해 따로 말씀을 드리진 못했다. 그런데 그래도 가 엄마인데 상의도 없이 내일 친척 집에 데려가신다? 솔직히 화가 났다. 그리고 희망이는 아직 콧물도 흘리고 컨디션도 좋지 않다.


그리고 아침.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전부터 느그 서울 이모가 한 번 오라고 그랬는데 오늘 시간이 괜찮다는기라. 그래서 고민중인데 내가 희망이 상태 봐서 알아서 할게"


"....."


이미 결론을 내셔서 말씀하시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일단 첫째 등원 준비, 출근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집을 나서서 어린이집에 갔다가 회사로 왔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은 '이 시간에 얘가 회사에서 왜 전화를 했지...' 하는 목소리셨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어머님, 아까는 제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요.... 저 근데 어머니 다음에는 친척집에 갈지 고민 중이실 때 미리 저한테 상의해주시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당장 갈 수도 있는데 아침에 말씀해주시면 사실 제 입장서는 통보....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전화기 너머 어머님의 당황하신 어머님은


"아, 안 그래도 희망이가 감기 걸리고 그래서 안 갈까 했었지. 갈 생각이었으면 당연히 너한테 말을 하지. 안 그렇겠나. 그리고 나도 희망이 몸이 우선이라."


"네. 어머님. 당연히 어머님께서는 그런 마음이신 거 알죠.

그런데... 그래도 다음에는 고민 중이실 때 상의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래. 혼자 속을 얼마나 섞었겠노. 다음에도 이렇게 할 말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라"


어머님은 이제 전화를 끊으려 하셨다.


"저... 어머님, 그러면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 어. 그래. 말해봐"


"어머님께서 종종 희망 이를 구미 데려간다... 할아버지가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할 때마다 사실 저는 마음이 철렁하거든요. 아버님, 어머님 손자지만 제가 엄마인데... 제 동의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 농담은 이제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어머님은 살짝 웃으시더니 그러시겠노라고. 나는 농담인데 힘들다면 안 하시겠노라고 하셨다. 살짝 기분이 상하신 듯도 했다.


언젠가 어머님이 그러셨다. 나는 너처럼 당돌하지 못해서 어른들에게 그렇게 의견을 표현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어머님은 또 그러셨다. 당신도 참고 살다가 어느 날 병원에서 속병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 할 말을 하고 살겠노라고 시아버님께 선포하고 그 이후로 그러고 사셨노라고.


누군가는 내게 그 시어머니 며느리 눈치 보랴 애 보랴 힘들겠다 할 수 있겠으나 나는 나답게 하려고 한다.


아이들의 엄마는 나다. 누구라도 내 자녀와 관련된 일은 엄마인 내 동의가 필요하다. 대상이 시부모님일지라도. 이건 물러날 수 없는 내 선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차를 시원하게 긁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