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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31. 2021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는 이유

경상도 시어머니와 서울 며느리의 공동육아기록

어른들이 소란스러운가운데 아이들은 참 성실하게 커나갔다. 첫째는 15개월을 넘기면서 잘 걷고, 어떤 때는 뛰기도 했다. 원하는 물건이 있는데 손이 닿지 않으면 내 손을 끌고 가서 가리키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내가 천재를 낳았나 놀라며 감탄했다. 사실 개월 수에 따른 발달사항 중 하나인데 내 눈에는 다 특별해보였다. 생후 3개월 차가 된 둘째는 우는 소리가 우렁찼다. 남자 아기라서 그런지 뱃고래가 컸다. 또 방귀를 자주 뀌었다. 배 마사지를 해주면 그렇게 방귀를 뀌었다. 어느 때는 남편이 뀐 건가 싶을 정도로 소리도 크고 냄새도 꽤 났다. 그것도 나는 기특하고 예뻤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을 보면 얼마 되지 않는 한 줌 머리를 묶으면서 내가 애 둘을 연달아 낳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보통 아기가 100일을 넘기고, 돌을 맞을 때까지 엄마와 아기 머리카락이 함께 빠진다. 이제 앞머리를 내리면 어딘가 휑한 빈자리가 보였다. 그뿐 아니었다. 행여 아기에게 분유를 타 줄 때 젖병에 묻기라도 할까 봐 1년 넘게 화장품을 바르지 않았다. 기초제품인 스킨, 로션도 젖병을 조립하거나 아기를 안을 때 묻을까봐 아기를 재우고 나서야 발랐다. 눈가엔 주름이 많아지고, 얼굴은 어딘가 푸석해보였다. 아이들 못지않게 나도 많이 변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주부 습진도 걸려봤다. 쉴 새 없이 젖병을 씻고, 설거지를 하고, 똥이 묻은 천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손빨래를 하다 보니 손등에 작은 수포가 올라왔다. 불편하고 가려웠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은 아기 이유식을 다 만들고 나서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걸 알게 됐다. 몇 차례 피부가 벗겨지더니 이제 그 부분은 지문이 없다. 결혼 전 네일아트를 즐겨하던 내 하얗고 고았던 손은 행여 아이가 긁힐까 손톱을 몽땅 깎은 그냥 손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은 음식도 먹게 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나는 절대 남이 남긴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기가 먹다 떨어뜨린 밥알을 치우기 귀찮아서라도 주워 먹는다. 아기가 짜장면을 먹다가 얼굴이 양념으로 범벅이 되고, 컵에 담긴 물을 삼켰다 뱉었다를 하며 놀고 있어도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가씨 때의 나라면 아마 기겁을 했을 것이다.


이제 뱃살이 늘어져 조금만 먹어도 배가 나오고, 골반도 틀어져 바지를 입으면 허리 부분이 살짝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아이를 낳기 전의 나보다 더 좋다.


아기를 낳고 나서 비로소 나는 진심을 다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신혼 때 남편에게 해 준 음식은 끼니를 때우는 것 말고 다른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요리가 즐겁다. 뜨거운 불 앞에서 얼굴이 익을 때도 있지만 내 아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고단함이 싹 사라진다.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무턱대고 드러눕는 애들도 이제 남의 집 귀한 자식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안절부절못하는 부모를 보며 저만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한다. 예전에 나라면 '도대체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정말 민폐다 민폐'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 자식은 그럴 리 없을 것 같은 자신감 따위는 이제 없다. 부모의 수고로움만 보일 뿐.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남편과 다투지 않기 위해 참는다. 첫째를 낳고 나서 육아에 지쳐 아이 앞에서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 그 때 날카로운 언쟁을 하는 우리를 보며 아이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고개를 양쪽으로 심하게 흔들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기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왜그랬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과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잠을 설쳤다. 그렇다고 그 후에 전혀 다투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몇 마디 왔다 갔다 하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다행히 남편도 나도 뭐가 더 중요한 지 안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우리 아이가 불안하지 않은 것. 그게 제일이다.

아이를 낳고 보니 부모님이 이해가 되고, 이상하게 굴던 회사 선배가 떠올라도 '그러려니~'가 된다. 경험 많은 내가 참아주는 기분이랄까. 참는다는 것. 내게 어른이 된다는 건 참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일이다. 다만, 좋은 부모가 되고 싶고, 다른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다. 내 아이를 위해. 우리 아이가 자라 날 사회를 위해.

아프리카에서는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나면 돌덩이를 어깨 위에 들으라고 한단다. 나를 무겁게 하는 돌의 무게가 결국은 내가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때로 부모 노릇 하는 게 돌덩이를 든 것처럼  버겁지만 이 유혹 많은 세상에서 그나마 내가 사람 구실하며 살게 되는 이유. 내 아이가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애를 낳아봐야 철이 든다, 철이 든다' 하면서 어른들이 자식에게 자식을 낳으라고 부추기셨나보다. 해보니 그게 제일 나은 교육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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