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꼬르륵 Aug 27. 2021

내가 그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

임신 우울증과 아기의자

작년  12월, 봄이 오면 끝날 거라던 코로나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는 9개월차 아기와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보냈다. 더욱이 나는 임신 7개월차였다. 부른 배 위에 똥을 싼 아기를 얹고 엉덩이를 씻기고, 안아달라고 보채는 아기를 안고 집 안을 계속 걸어 다녔다. 임신한 엄마가 힘들면 안 되고, 잘 먹어야 된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아기는 수시로 떼를 썼고, 나는 허기가 져도 지쳐서 잘 챙겨 먹질 못했다.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임신 7개월차 증상. 손발저림이 시작됐다.)


너무 답답하면 집 앞에 나가 골목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렸다. 그때 첫째가 유모차를 한창 거부할 때여서 아기띠를 매야만 외출이 가능했다. 부른 배 위에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앉힌 상태로 걸어 다니면 얼마 안 가 다리가 저려왔다. 길어봐야 30분이었다. 그래도 아기는 바깥 구경이 신나서 웃었다.


그런데 그즈음 집 근처 골목 어귀에 카페가 새로 생겼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닌데 왜 여기에 카페를 열었을까 싶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카페 안 테이블에 사람이 앉을 수 없었다. 어쩌다 그 카페 앞을 지날 때면 '아이고, 사장님 힘드시겠다.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했다. 투명한 가게 문으로 얼마 안 되는 가게 테이블 의자들이 모두 올려져 있는 게 보였다.


(카페 내 테이블 이용 금지 시절)

그날도 베란다 창문에 붙어서 하염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아기를 또 매고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카페 앞을 지나는데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규제가 좀 풀린 것이다. 다행히 가게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마스크를 안 쓴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도 되겠다 싶었다.


"딸랑"


가게 문 종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직원 세 분이 일제히 문 쪽을 바라봤다. 나의 등장이 꽤나 반가우셨나 보다. 살짝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메뉴를 훑었다. 커피 종류는 많지 않은데 베이커리 종류가 꽤 됐다. 아마도 그래서 직원이 세 명인 듯 싶었다. 임신 중이니 따뜻한 차를 주문하고 가게 인테리어와 진열된 빵을 구경했다. 아기는 주문대 직원 분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헤헤 웃었다. 직원분도 손을 흔드며 아기를 보고 웃었다.


'둘 다 낯선 사람 오랜만에 보나 보네'


나도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점점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아기띠를 풀고 아기를 테이블 위에 앉히니 행여나 아기가 떨어질까 불안했다. 앉아있는 아기의 양 쪽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앉아있자 직원분께서 직접 차를 테이블로 가지고 오셨다. 그런데 차를 가지고 오셔도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없고, 테이블 위에 앉히고 다리를 잡은 채 뜨거운 차를 마실 수도 없고. 결국 나는 다시 아기를 맸다. 직원분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차를 들고 계시다가 내가 아기띠를 다 매자 차를 내 손에 건네주셨다. 내가 괜찮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나서자 여직원분도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들어간 지 10분도 안되서 그 카페를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이 상황에 내가 카페에서 차라니...'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 후, 아기는 또 베란다 창문에 붙어서 하염없이 바깥을 쳐다봤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아기띠를 매고 바깥에 나갔다.


단 5분만이라도 아기도 앉고, 나도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밤 아기가 자주 깨서인지 어깨까지 무거웠다. 어깨도 무겁고, 배도 무겁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그 카페가 보였다. 빨간 포인세티아 화분으로 카페 장식을 새로 하셨다. 나는 아기에게 포인세티아를 보여줄 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저께 나를 봤던 직원분께서 나를 보며 인사했다.


(겨울을 맞은 카페의 포인세티아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안녕하세요"


역시나 가게 안에 아무도 없었다. 예의상 음료는 하나 사야 될 것 같아서 메뉴를 훑었다. 그런데 베이커리 진열대 옆에 낯선 물건이 눈에 띄었다. 예쁜 분홍색 아기의자였다.


'아기의자다! 저것만 있으면 나도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신이 났다. 서둘러 주문을 하고 아기의자를 테이블 곁에 가지고 왔다. 아기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빨대 하나를 손에 쥐어줬더니 오물오물 씹으며 잘 놀았다. 잠시 후 주문한 차가 나왔고, 아기가 노는 걸 보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노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감탄의 숨. 영화 쇼생크탈출을 보면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몰래 교도소 방송시설에 들어가 노래를 튼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노래를 들으며 흡족한 표정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랄까. 자유. 시간으로 치면 단 15분이었지만 지친 나를 다독일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가게 안에 빨간 포인세티아 화분을 보며 흘러나오는 음악에 내 생각의 흐름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차를 다 마셨다. 아기는 슬슬 지루한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만족스럽게 아기를 의자에서 빼서 다시 매고, 테이크아웃 컵을 반납하자 마스크 너머 직원분의 눈이 나를 보고 웃었다.


그때 알았다. 아기 의자는 이틀 전 나 때문에 생긴 거라는 것을.


뭔가 띠용 하는 감정과 함께 나도 웃으며 인사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 후로 잔잔하게 퍼지는 감동. 착각인 걸까. 글쎄 좀처럼 인적이 드문 가게에 이틀 전만해도 아기의자는 없었다. 그리고 직감이라는 게 있다.


손님에 대한 작은 배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큰 격려이자 응원이었다. 9개월 된 아기를 맨 7개월차 임산부에게 잠시 숨 돌릴 틈을 주셨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나의 상황을 헤아려주셨다는 것.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눈물까지 찔끔했다.


그리고 나는 그 카페의 단골이 됐다. 이제 우리 딸은 가게 안을 걸어 다니며 종종 다른 손님들에게 손까지 흔든다. 그리고 입소문을 타서인지 카페에 사람들이 꾸준히 드나들기 시작했다.


사실 커피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마음을 녹여주는 곳은 다시 찾아가기 마련이다. 사람이든 장소든. 그래서 나는 인적이 드문 그 골목의 카페를 좋아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머님, 제 아를 맡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