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유모차를 잊어버렸다.

내 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by 꼬르륵

3일 전 아이의 유모차를 잊어버렸다. 당근 마켓에서 구매한 중고였지만 상당한 금액의 돈을 준 휴대용 유모차였다.

그 일 때문에 남편과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지만 남편은 곧 떠나간 버스를 어찌하랴 하며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화가 났다.


내가 유모차를 챙기는 걸 깜빡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주택의 2층에 살고 있는 나는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고 나면 먼저 아이를 집에 무사히 들인 뒤 유모차를 챙겼다. 휴대용 유모차라지만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고역이었고, 그럴 때마다 차라리 집 면적을 포기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좁은 아파트라도 갈 걸 싶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면적이 넓은 구빌라인 우리 집은 햇볕이 너무 잘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해사한 거실에 들어서면 다시 그 노동을 잊곤 했다.


그리고 요즘은 1층 출입문 안에 유모차를 종종 세워놔도 뭐라 하는 분이 없었다. 다른 주민들도 자전거를 세워두는 공간이었다. 비도 피할 수 있고 깨끗하게 보관도 잘 되는 터라 그곳에 접어서 세워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대체 내 뇌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집까지 가지고 올라오지 않아도 돼서 긴장이 풀린 걸까? 일단 집에 도착할 즈음 아기가 칭얼대면 나는 정신이 없어진다. 아이를 유모차에서 얼른 꺼내서 집안에 들어가 달래고 재우고 나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 사이 내가 펴놓는 유모차는 출입문 앞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곤 했다.


하루는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부산했다.


" 사람아, 밖에 비 오는 데 이걸 이렇게 놓으면 어쩌나"


남편이 경상도 사람이라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사투리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유모차가 비에 많이 젖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요새 내가 자꾸 깜빡하는 것 같다며 경상도 말로 '할매가?'라고까지 했다. 충격적이었다.


그 후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가 아이가 심하게 울고 보채서 혼이 쏙 빠진 날, 나는 또 유모차를 출입문 앞에 덩그러니 뒀다. 그리고 삼일 전엔 출입문은커녕 택시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내린 후, 내린 자리에 유모차를 그대로 두고 집에 들어왔다.


변명을 하자면 한 손엔 아이를, 다른 쪽 어깨엔 아기 어린이집 가방, 애착 인형, 기저귀 가방을 들쳐 매고 계단을 오르다 보니 진이 빠졌다. 일단 물부터 마시고 다시 내려가서 챙겨놔야지 했는데 아이를 보니 기저귀가 불록해서 축 쳐져 있었다. 소변을 많이 한 것이다. 기저귀를 갈다 보니 아이 몸이 끈적끈적한 게 느껴졌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씻기자하며 목욕을 시켰다. 그러는 사이 또 유모차의 존재를 잊었다.


'아우, 진짜 왜 이러니 나...'


아기가 자고 있어서 마음으로 이불 킥을 몇십 번이나 했다. 부쩍 깜빡하는 내 무능력에 자괴감마저 들무렵 갑자기 이러다 산후우울증이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달라진 나의 모습이 싫고, 내가 무능력한 것 같고.


'오, 안돼. 안돼. 그럴 순 없어!'


우울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덜렁대며 사는 게 낫다. 혹자는 덜렁대는 것 치고는 좀 심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면죄부를 주련다. 지나간 일로 나를 괴롭히며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다. 내가 나를 용서 안 해주면 누가 해주랴. 내가 나를 안 품으면 누가 품으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이다.


오늘 읽은 시의 한 문구가 생각난다.


"내일은 바람이 희망 쪽으로 불겠지"


그럴 거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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