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미안하다 하셨지만
"웬일이 가?"
산후조리원에 있어야 할 며느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신 어머니는 아기가 집에 오기 전에 미리 이것저것 정리를 해두려고 왔다고 말씀드리니 안 그래도 혼자 뭘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걱정이셨다며 반겨하셨다. 첫째가 깨지 않게 침실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데 곧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근데 점심을 먹어야 할 거 아이가...."
아직 첫째 아이가 죽을 먹을 때라 어머님은 혼자 아이를 보신 지난 2주간 대충대충 드신 눈치셨다. 남편이야 아들이라 퇴근길에 사서 오라고 하기도 하고, 반찬 몇 개 꺼내놓고 그냥 먹자고 편하게 하실 수 있으나 나는 보름 전 애 낳은 며느리였다. 어머님은 부담이 되셨는지 냉장고를 열고 뒤적거리셨다.
그러시더니 이것저것 꺼내서 나를 부르셨다. 배가 고플 텐데 얼른 먹으라고.
여러 반찬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밥이 차고 딱딱했다. 먹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빨리 먹고 다른 것도 좀 정리해두고 가야지. 애가 잘 때 하나라도 더 해놓고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식탁에서 서둘러 식사를 했다. 어머님은 거실에서 말린 빨랫감을 정리하고 계셨다. 아이는 아직 꿈나라였다.
그릇이 얼마 안 돼 직접 설거지를 해두고 어머님과 둘째가 오기 전에 정리할 나머지 것들을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다시 혼자 집안을 오가며 몇 가지 준비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깨어난 아이와 잠시 놀아주다가 시간이 많이 돼서 다시 조리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머님,
"고생했어. 찬밥을 줘서 미안해..."
하셨다. 그 순간에는
"아, 아니에요. 뭘"
그러고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맞아. 그래도 애 낳은 지 보름도 안된 며느리인데 아직 산후조리 중이고, 아들 낳고 처음 만난 며느리인데 찬밥이라니. 솔직히 밥 씻어서 밥솥에 넣으면 15분도 안 걸리는데...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택시에서 연달아 들기 시작했다. 생각의 끝은 이 질문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딸이었어도 그랬을까...?"
답은 잘 모르겠다. 내가 마음이 여유가 있을 때는 '어떻게든 배가 고플까봐 빨리 챙겨주고 싶으셨나 보다...'
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라면 안 그랬을 거야'.라는 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머님도 뭔가 아이를 낳고 나서 조리 중인 며느리에게 찬밥을 준 것에 마음이 꽤나 부대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가는 길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신 것이시라.
어머님도 그날 첫째를 보느라 힘드셨나 보다. 어머님도 귀찮으신 게 있으실 테니까. 나도 내 자식 밥 챙겨주는 게 가끔 귀찮듯이. 지금은 그런 마음이다. 그런데 그래도 같은 상황이 내게도 온다면 나는 그 귀찮음과 고됨을 참고 며느리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줄 것이다.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게 아니기에.
나의 고됨보다 상대방의 고됨을 먼저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그렇다. 산후조리 중인 며느리가 차가운 밥을 먹을 급히 먹으며 머릿속으론 애 기저귀와 아기 침대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좀 짠하지 않은가... 물론 어머님은 그 후로 내게 수없이 더운밥을 주셨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산후조리). 어쩐지 그날 밥상은 잘 잊히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