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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Oct 29. 2022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먹은 찬밥

어머님은 미안하다 하셨지만

둘째 맞을 채비 차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날

어머님이 주신 찬밥

마음에 걸리셨는지 찬밥을 줘서 미안하다 하셨지만...


첫째의 돌잔치를 하고 2주 뒤 바로 둘째를 출산하게 됐다. 4월에 출산 예정이었는데 둘째가 생각보다 일찍 태어나면서 모든 가족이 초비상이 됐다.


일단, 내가 산후조리원에 가있는 동안 아직 낯가리던 첫째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막달을 맞아 어머님께서 미리 올라와계셨던지라 아이는 어머님을 곧잘 따랐지만 내가 없는 상황에서 어머님과 단둘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검진을 하러 간 산부인과에서 진통이 시작됐으니 오늘 입원해서 아이를 낳자고 한 순간, 다른 생각은 남편과 가족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째보다 짧은 진통 후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급작스러운 출산으로 출산 가방도 다 못 싼 마당에 둘째를 위한  집 정리는 안 된 상태였다. 2박 3일을 산부인과에 머물고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집에 아직 준비가 안 된 것들이 많은데... 저 핏덩이를 데리고 가도 되나' 신경이 쓰였다.


일단, 아기침대 시트와 이불을 다시 빨고 소독해야 하고,

아이가 잘 방을 당분간 침실로 할 거면 침실의 창틀과 먼지 청소를 싹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기를 목욕시키거나 엉덩이를 씻을 욕실을 깨끗하게 소독 청소를 해야 하고.

첫째가 입었던 배넷저고리나 아기 옷, 천손 수건들을 다시 빨고, 두어 차례 헹굼을 하고, 햇빛에 말려놔야 하고...


그리고 역류방지 쿠션이나 가습기는 모두 새로 사야 했다. 젖병과 젖꼭지도 다시 씻어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소독해둬야 했다. 머릿속엔 할 게 천지인데 이걸 어머니께 하나하나 설명하고 부탁드릴 생각을 하니 차라리 내가 하루 반나절이라도 집에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조리원에서 퇴소하기 이틀 전  집을 다녀오게 됐다. 어머님께 미리 말씀을 드리려 전화를 드리고 톡을 드렸더니 아이를 보느라 바쁘신지 연락이 안 되셨다.


"띡띡띡띡띡띡"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여니 집이 고요했다. 실에 아이가 자고 있었다. 평화를 깨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자다가 깨신 듯한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셨다. 


"웬일이 가?"


산후조리원에 있어야 할 며느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신 어머니는 아기가 집에 오기 전에 미리 이것저것 정리를 해두려고 왔다고 말씀드리니 안 그래도 혼자 뭘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걱정이셨다며 반겨하셨다. 첫째가 깨지 않게 침실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데 곧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근데 점심을 먹어야 할 거 아이가...." 


아직 첫째 아이가 죽을 먹을 때라 어머님은 혼자 아이를 보신 지난 2주간 대충대충 드신 눈치셨다. 남편이야 아들이라 퇴근길에 사서 오라고 하기도 하고, 반찬 몇 개 꺼내놓고 그냥 먹자고 편하게 하실 수 있으나 나는 보름 전 애 낳은 며느리였다. 어머님은 부담이 되셨는지 냉장고를 열고 뒤적거리셨다. 


그러시더니 이것저것 꺼내서 나를 부르셨다. 배가 고플 텐데 얼른 먹으라고. 

여러 반찬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밥이 차고 딱딱했다. 먹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빨리 먹고 다른 것도 좀 정리해두고 가야지. 애가 잘 때 하나라도 더 해놓고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식탁에서 서둘러 식사를 했다. 어머님은 거실에서 말린 빨랫감을 정리하고 계셨다. 아이는 아직 꿈나라였다. 


그릇이 얼마 안 돼 직접 설거지를 해두고 어머님과 둘째가 오기 전에 정리할 나머지 것들을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다시 혼자 집안을 오가며 몇 가지 준비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깨어난 아이와 잠시 놀아주다가 시간이 많이 돼서 다시 조리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머님, 


"고생했어. 찬밥을 줘서 미안해..."


하셨다. 그 순간에는 


"아, 아니에요. 뭘"


그러고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맞아. 그래도 애 낳은 지 보름도 안된 며느리인데 아직 산후조리 중이고, 아들 낳고 처음 만난 며느리인데 찬밥이라니. 솔직히 밥 씻어서 밥솥에 넣으면 15분도 안 걸리는데...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택시에서 연달아 들기 시작했다. 생각의 끝은 이 질문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딸이었어도 그랬을까...?"


답은 잘 모르겠다. 내가 마음이 여유가 있을 때는 '어떻게든 배가 고플까봐 빨리 챙겨주고 싶으셨나 보다...'

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라면 안 그랬을 거야'.라는 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머님도 뭔가 아이를 낳고 나서 조리 중인 며느리에게 찬밥을 준 것에 마음이 꽤나 부대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가는 길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신 것이시라. 


어머님도 그날 첫째를 보느라 힘드셨나 보다. 어머님도 귀찮으신 게 있으실 테니까. 나도 내 자식 밥 챙겨주는 게 가끔 귀찮듯이. 지금은 그런 마음이다. 그런데 그래도 같은 상황이 내게도 온다면 나는 그 귀찮음과 고됨을 참고 며느리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줄 것이다.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게 아니기에. 


나의 고됨보다 상대방의 고됨을 먼저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그렇다. 산후조리 중인 며느리가 차가운 밥을 먹을 급히 먹으며 머릿속으론 애 기저귀와 아기 침대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좀 짠하지 않은가... 물론 어머님은 그 후로 내게 수없이 더운밥을 주셨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산후조리). 어쩐지 그날 밥상은 잘 잊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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