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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Oct 29. 2022

어머니 그 때 저 견제하신건가요?

자동차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신 어머니

아름답게 포장된 글은 저리 가라
날 것 그대로의 시어머니 며느리의 관계 고찰 글

(feat. 책내고 싶어서 쓰는 글)

어머니를 다시 뵈러 갔던 그날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나름 잘 보이기 위해 목 언저리에 하얀색 장식이 달릴 야리야리한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갔었지. 날씨는 적당히 맑았고, 내 마음도 신기하게 무겁진 않았다. 왜냐하면 앞서 남편이 아버님과 어머님이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나를 소개한 일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경험한 두 분의 첫인상은 ‘편안하고, 밝으시다’였다.

‘면접 보듯이 평가하거나 취조(?)할 분들은 아닌 것 같다’

나름 사전 정보를 갖고 가벼운 마음으로 간 자리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로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다같이 식사를 하는 장소에서 찾아왔다. 혹시나 예비 며느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나의 지방 방문을 염두하신 듯 시부모님은 멋스러운 고급 한정식집을 예약하셨다. 그 자리에서 멋스러운 식당 분위기에 걸맞은 적당히 교양 있는 대화가 오갔다. 아버님은 두 분의 삶을 이야기하시며 어머님께 애정 어린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나를 만나 시집와서 고생 많이 했지. 내가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그러자 미소를 띤 어머니가 다 그렇게 산다며 훈훈하게 화답하셨다. 여기까지였으면 ‘나이 드시면서 서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시는구나, 남자 친구가 이런 부모님 밑에 자랐구나’라고 내 마음속으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됐을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님의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아버님의 양복’ 이야기로 급 방향 전환이 됐다.
“근데 내가 시집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글쎄 이 사람이 첫 월급 탄 걸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양복을 산기라. 그때 월급이 몇십만 원이었는데 양복이 몇십만 원이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여쭤보기도 그렇고. 그런데 그 말을 하실 때 격양된 어머님의 표정과 말투는 선명하다. 혹자는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아버님 핀잔 줄 수도 있지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할 수 있으나 어머니는 진심 화를 내고 계셨다. 느긋하고 좀처럼 감정 표현을 쉽게 안 하는 충청도 여자인 나는 ‘어머님이 왜 갑자기 화가 나셨지?’ 하는 놀란 마음으로 어머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님, 갑자기 나에게 질문하셨다.
“생각해봐라, 너 같으면 남편이 말도 안 하고 몇십만 원짜리 양복을 사면 어떻겠나?”
급기야 나는 ‘왜 나한테 화를 내시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님은 갑자기 민망하신 듯 고개를 떨구시고, 옆에 있던 지금의 남편이
“엄마, 와그라노”
라며 사인을 보냈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는 듯 화난 기색이셨다.
별안간 남자 친구의 어머니께서 예비 시아버지가 될지도 모르는 아버님을 면박 주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내 심장은 벌렁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시는지, 나는 아직 이 집 며느리가 아닌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왜 하시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갔다. 하지만 현 남편인 남자 친구의 급브레이크로 해당 사건은 토크 노선에서 사라졌고, 다시 분위기는 안정되는 듯했으나 어머님이 아들의 여자 친구가 온다니 주변에서 이런저런 관심이 많았다 하시며 갑자기 남편에게


“니는 우리 둘이 싸우면 빠져”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님은 손으로 나를 가리키시면서 ‘애랑 나랑 싸우면 넌 빠져’라고 하던 그 장면은 아직도 지금 일처럼 선명하다.

그렇게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어찌어찌 식당을 나와 근처 공원으로 차를 타고 산책을 가던 중 두 번째 당황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

내 기억엔 당시 시부모님 차량이 스포티지였던 것 같다. 뒷좌석에 남편과 내가 타고 아버님께서 운전을 하시고, 조수석에 어머님이 앉으셨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시는 게 아닌가! 정말로 어머님은 조수석의 좌석을 뒤로 밀고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셨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지금이라면 그 당황스러움을 나중에라도 남편에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20대 후반 아가씨에 사회생활도 많이 안 했고, 사람 경험도 안 했고, 지금처럼 아줌마다운 배짱도 없었다.   

지금의 남편이 한마디 했던 것 같다.

“아이 엄마, 지금 발 올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러자 어머니는 껄껄 웃으시며

“우리 집은 이렇게 편하게 산다”

하셨다. 그리고 한동안 발을 계속 올린 채로 대화를 나누신 것 같다. 아버님은 어머님의 행동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아니, 못하신 걸까?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가부장적이었던 우리 집과 다르게 남편의 가족이 민주적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묘한 어딘가 모르는 불편한 감정이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들었는데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그것은 ‘존중받지 못했다는 불쾌함’이었다.

아무리 아랫사람이지만 아직 집안사람도 아니었는데 몇 번 안 본 상황에서 발을 올리시고 대화를 하신 게 솔직히 말하면 나를 존중하시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딱딱한 분위기를 자유롭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으셨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미 나를 집안의 며느리로 여기시고 허물없이 다 보여주려는 의도이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두어 번 본 이십 대 후반의 아들의 여자 친구 앞에서 굳이 그렇게 하셨어야 했나 솔직히 아쉽다.


예의는 꼭 윗사람을 대할 때만 필요한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장난과 유쾌함도 선을 넘으면 무시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 아들의 여자 친구, 딸의 남자 친구, 예비 며느리, 사위를 소개받을 때 어른들이 생각해봐 주셨으면 하는 것들이다.  

내가 이날의 경험을 시집가서 한창 애 낳고 키우고 있던 언니에게 말했더니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어머님께서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말을 들으신 것 같은데?”

어머님도 갑자기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려온다고 하지, 결혼할 것 같지. 나름 긴장하신 것 같다고. 언니는 그렇게 정리를 했다. 그러셨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예비 며느리 앞에서 ‘네가 아무리 내 아들을 뺏어가지만 나 이런 사람이야, 우리 집에선 내 말이 제일 세’ 이런 존재감을 은연중에 내게 보이고 싶으셨을지도.


이제는 제법 나도 애 둘을 낳고, 할 말을 하며 살기 시작한지라 언제 한번 이 이야기가 나오면 한번 여쭙고 싶다.
“어머니, 근데 그때 왜 그러셨어요? 솔직히 저 견제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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