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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Dec 12. 2018

아침은커녕 저녁도 차리기 싫다

리얼 신혼 후기 2탄

결혼 전에 연애할 때 지금의 남편에게 나는 그랬다.

"나는 말이지. 사람은 꼭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머리도 돌아가고. 속이 든든해야 큰 일을 하는 거지."

남편은 그 말 때문에 나를 썩 좋게 봤다고 한다. 설상가상 나는 결혼 준비에 돌입하면서 "아침에 된장찌개, 두부찌개 같은 찌개류랑 채소 위주로 먹으면 좋을 것 같네. 너도 밥 먹으면서 국은 잘 안 먹는다고 그랬었지? 아침은 꼭 그렇게 챙겨줄게"라며 책임지지 못할 말을 했던 것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밥을 둘러싼 갈등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부터 바로 시작됐다. 결혼 전에는 룸메이트의 숙면을 방해할까 부엌에서 요리를 못하는 게 그렇게 서럽더니 일 끝나고 집에 가서 뭘 해야한다는 게 어떤 날은 서러웠다. 하루 종일 회사 일하고 지끈거리는 다리보다 뭔가를 차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나를 무겁게 했다. 그러다보니 집에 오면 짜증이 났다. 남편은 청소도 내가 하자고 해야 하는데 밥까지 내가 왜 책임져야 하는지 이미 집으로 오는 길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재밌자고 '밥 줘, 밥 줘'라고 애교 섞인 장난을 해도 나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아니, 지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데 왜 지 밥을 나더라 달라고 해?,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고, 지 밥은 내가 챙겨줘야 하는 거야? 도대체 결혼의 목적이 뭐야? 나 가사도우미로 쓰려고 결혼한 거야? 내가 남자 뒷바라지만 하려고 결혼한 줄 알아?'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어떻게든 남편에게 숟가락 하나라도 얹게 하고, 설거지라도 시키려고 다. 그러자 밥 먹는 시간에 뭐 하나 속 편하게 되지 않았다. 틱틱거리며 신경전이 오가는 시간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자 나와 남편은 점점 서로가 안 부딪히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퇴근 후 요리를 하려고 하면 남편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지 말라고 되려 말렸다. 꾸역꾸역 요리를 한 내가 짜증과 함께 엄청난 설거지폭탄으로 본인에게 되갚을 것을 알기에 제발 쉬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뭘 시켜먹자고 제안하거나, 스팸 하나 구워서 김치랑 밥이랑 그렇게 세 개만 놓고 후딱 치워버리게 됐다. 결혼 전,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찌개 하나, 반찬 5개는 고사하고, 전기밥통에 밥만 제때 돼있어도 남편은 고맙단다.


이제 밥은 남편이 전기밥솥에 밥을 주로 하고, 나는 가정의 날 '수요일'에 일찍 퇴근해서 요리를 하거나 주말에 신메뉴에 도전해 요리해 준다. 그 외 아침은 거의 안 먹고, 먹더라도 그 전 날 저녁에 먹다 남은 걸 처리한다. 반찬은 친정 엄마, 시어머니가 보내 준 김치, 멸치반찬, 김, 장아찌, 가공식품으로 채운다.


오늘도 퇴근 후 집으로 가는데 배는 고프고, 밥하기는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집에 가는 방향에 있는 망원시장을 들렀는데 때마침 남편에게 톡이 왔다. 아마도 밥을 어떻게 할까 물으려고 내게 보낸 것 같았다.

"우리 떡볶이 시켜먹을까?"

이제는 떡볶이도 시켜먹는 메뉴가 됐다.(ㅎ) 잘 됐다 싶어 시장 안에 포장마차 분식집에서 각각 3000원어치 떡볶이와 순대를 샀다.  그리고 급하게 시장 본 사진 인증샷. 조금 후에 남편에게 온 답장.

"당신이 최고야!!"


ㅎㅎㅎ. 그래. 뭐 꼭 5첩 반상에 정성 어린 아침상만 최고인가. 서로 즐겁게 먹는 게 최고지. 시장만 봐도 최고, 마트에서 우유사서 아침에 한 잔 따라만 줘도 최고! 최고다! 참 결혼이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반응하던 것들을 "그럴 수도 있지"로 바꾸는 참 신기한 수업 같다. 특히 남자에게ㅜ. 그나저나 오늘 산 순대가 남아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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