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꼬르륵 Dec 06. 2018

방귀는 텄나요?

리얼 신혼 후기 1편

결혼 2년 차다. 이제 환상 같은 건 없다. 너무 급하다고 해서 샤워할 때 남편이 들어와 큰 일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 댁에 칫솔을 안 챙겨가서 하나를 같이 쓰기도 했다. 그런데 종종 TV 예능에 이제 갓 신혼을 보내는 어느 연예인이 '우리는 방귀를 언제 텄어요'라든지 '아직 우린 안 텄어요'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가소롭기까지(?) 하다.

 

결혼하기 전 나는 유난히 활달한 장 운동으로 밥만 먹으면 배에서 씩씩한 소화 소리(?)가 났다. 꼬르륵꼬르륵. 조용한 차 안에서 적당한 적막도 필요한 시기에 눈치 없이 내 배는 참 많이 꼬르륵꼬르륵 댔던 것이다. 처음에는 민망할까 봐 모른 척해주던 남편이 어느 날. "너처럼 이렇게 먹자마자 바로 소화되는 닝겐(?)은 처음이다. 대단하다. 진짜"라며 놀려대기 시작했고, 그 후 천꼬르륵이라는 별명까지 지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오히려 너무나 편하고 재밌기까지 했다. 천꼬르륵 그 별명이 이제 내 필명까지 됐다. 그리고 나는 이 필명이 개성이 있어서 참 좋다.

 

꼬르르륵 소리만큼 방귀도 트게 된 게 좀 웃기다. 방귀도 내가 먼저 텄다. 다행히 나는 방귀 냄새가 거의 없다. 그리고 소리가 뭐랄까. 고음이다. 짧은 뾰옹. 들으면 뭔가 픽 웃게 되는. 어느 날 남편과 밥을 먹고, TV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방귀가 뿅 나왔다. 그러고 나서 너무 민망해 나도 얼굴을 확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남편 얼굴을 빠르게 살폈다.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내가


'뭐야(알면서)~크크크' 라며 웃는 내내 남편은


'뭔데 이렇게 시간을 끌어?'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 방귀 뀌었어'라고 하자, 남편은 '뭐 별거라고'라고 하더니 그러고 끝이었다. 그 이후로도 내가 방귀 뀌고 혼자 키득거리며 웃을 때마다 남편은 '좋냐? 뭐 별 거라고'그러며 내가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것 마냥 넘어갔다. 처음엔 내가 방귀를 트는 순간 나의 여성적인 매력은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걱정했다. 하지만 지금도 순간순간 사랑해, 고마워라고 말하며 잠들기 전 항상 포옹도 하고 있다.


뭐 별 거라고.

이젠 남편이 입냄새가 나도, 화장실을 쓰고 나왔는데 냄새가 나도,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로 내 얼굴을 비벼되도 '뭐 별 거라고'다.  


살아보니 결혼은 상대방의 외향적 상태보다 내면 하고 사는 거다. 마음 씀씀이가 어떤 지가 사실 더 오래 두고 지켜봐야 할 조건. 방귀를 자주 뀌는지, 자면서 이를 가는 지보다 내가 아플 때 상대방이 어떻게 했는지,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가 더 오래 기억이 남는다.


리얼 신혼 후기 1편 결론.

방귀는 놀랄 축에도 안 끼는 뭐 별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