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꼬르륵 Sep 02. 2020

첫째 낳고 두어달, 둘째를 임신했다.

남편, 이 XXX아!

# 에피소드 1

육아휴직 중이다. 육아 겸 코로나 대피 겸 정말 방콕 라이프다. 답답함과 우울함, 무기력증이 느껴질 때마다 라디오를 듣고, 전화영어를 하고, 남편 퇴근 후 40분 운동을 하고, 그렇게 일상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정말 가슴이 꽉 막힌 듯 힘들었을 즈음 시골에 있는 친정집에 내려갔다. 첫째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모습을 본 엄마가 하는 말.

"아이고, 첫째 아가 엄지손가락 빨면 남동생 본다는데 우리 OO이 남동생 보겠네~"

순간 나는 기겁하며 말했다.

"엄마, 나 둘째 못 나아. 몸이 안 돼"

임신 중 회사에서 두 차례 쓰러진 나는 둘째 임신은 커녕 첫째 아이를 보는 것도 힘에 부쳤다.

"으응~. 그냥 옛날 어른들 말이 그래"

그랬다. 그런데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으악.


# 에피소드 2

2시간 반마다 울던 아기가 100일을 넘어가면서부터 밤에는 5~6시간을 내리 자기 시작하고, 이제 나와 남편을 보며 웃기도 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150일을 넘기자 뒤집기도 하고, 되집기도 하면서 아이에게 개인기가 생겼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고 있던 어느 날 밤. 꿈을 꿨다.


넓은 들판을 걷는 나. 그리고 주변은 풀과 나무로 초록초록. 그런데 뒤통수가 세-했다. 돌아보니 엄청나게 크고 높은 나무가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건물 높이로 치면 63 빌딩 정도? 나무에 나뭇잎이 무성하게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야~, 장관이네'

감탄하며 눈을 떴다. 워낙 선명한 꿈이라 다음날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 왈,

"내용만 들으면 완전 태몽인데 ㅎㅎㅎ"

그렇게 웃어넘기며 출근을 했더랬다. 그런데 임신 시점이 바로 꿈을 꾼 새벽 전 밤이었다는 사실.


# 에피소드 3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너 어떻게 한 거냐고. 나도 복직해서 내 이름으로 사회활동도 하고, 인정도 받고 싶은데 이게 뭐냐고. 회사에는 1년 쉰다고 이야기했는데 뭐라고 말하냐고. 네가 이번에 육아 휴직하라고. 뭐?! 너는 왜 안 돼!!!!!


나는 이성을 잃었다. 임테기의 선명한 빨간 두 줄을 보는 순간 당황스러움에 말을 잃었다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다고 자신했던 남편은 우는 나를 달래랴, 나를 따라 우는 아이를 달래랴 정신이 없었다.

그냥 나가. 이 방에서 그냥 나가. 남편에게 통보 후,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2시간 후, 남편이 들어왔다.


"여보, 우리 OO이, 어렵게 가졌잖아. 그런데 조심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갖게 된 건... 주신 거야. 우리 이러지 말고 방법을 찾아보자. 방법을"


# 에피소드 4

인생은 내 뜻대로 안 된다. 알 수 없는 흐름에 나를 내놓아야 할 때도 있는 듯하다.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는 '차라리 잘됐다. 한방에 해치우고(?) 6개월만 더 쉬고 복직하자. 하나 키우는 것보다는 둘은 있는 게 나중에 더 좋다고 다들 그러시잖아. 그리고 낳을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아야지' 라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 최소 1~2년은 주중에 함께 계시며 도와주시기로 했다.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랜 버티기가 시작될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둘째의 태명은 희망이다. 희망. 희망을 갖는다. 아이가 주는 기쁨이 분명 있다. 수고로이 고생한 것에는 분명 보상이 있었더랬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그리고 연년생 엄마의 육아 라이프를 여기다 끄적이면서 스트뢰스 좀 풀어야지. 가끔 남편 욕, 어머님과 답답한 점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지(-_-ㅋ) 아이가 깼다. 오늘은 이만.

작가의 이전글 아침은커녕 저녁도 차리기 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