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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Jan 02. 2019

지울 수 없는 생존자의 문자

tbs FM, 라디오 다큐멘터리‘가슴에 담아 온 작은 목소리’ 취재기

https://www.podty.me/episode/10910983

(tbs가슴에 담아 온 작은 목소리 '월세 5만원이 생사를 갈랐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를 만난 건 화재 사건이 있고, 3주가 지났을 때였다. 이미 국토부가 사건 발생 하루 후, 화재 생존자들에게 임대주택을 지원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지원책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화재 당시 상황과 취약한 고시원 주거환경을 다루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화재 생존자인 그와 인터뷰를 마쳤을 때, 다큐멘터리의 방향은 모두 수정됐다.      


약속 시각이 되자 그는 불이 났던 국일고시원 인근의 다른 고시원 입구에서 추리링에 살짝 큰 실내화를 신고 나타났다. 인사를 건네고, 명함을 건네자 그는 나를 화재 현장으로 바로 데려갔다. 터벅터벅. 발걸음에 힘이 없고, 지쳐 보였다.      


“제가 저기 보이는 창문 방에 살았거든요. 아직도 영안실에는 돌아가신 분들 시체가 있다고,,,”     


(국일고시원 앞 시민들이 두고 간 꽃다발. 내가 갔을 때는 사진 속 국일고시원 앞 테이블과 그 위 꽃다발만 남아있었다. 사진=연합뉴스)


창문 안쪽으로 까맣게 그을린 내부가 보였다. 계단은 파이어라인 테이프로 막아놨었다. 그 앞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작은 꽃다발 몇 개가 놓여 있었다. 7명의 사망자 넋을 기리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그에게 인터뷰를 위해 조용한 곳으로 이동자고 제안하자 그는 갈 곳이 고시원밖에 없다고 했다. 좁은 고시원 방안에서 나란히 앉아 취재할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솔직히 살짝 겁이 났다. ‘그래도 고시원 주거환경 수준을 알려면 가봐야지’ 그렇게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마주한 그의 고시원 방은 두 사람도 앉을 공간이 없었다. 결국,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이 있는 고시원 공용 주방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짧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요? 저 사실 한겨레 신문 000기자님이 소개해서 하는 건데 이름은 익명으로 해 주면 안 될까요?   

 

그는 얼마 전 취재를 다녀간 한겨레 신문 기자가 지금 머무는 고시원비를 내도록 도와줬고, 나와의 인터뷰도 사실 그 기자가 연결해줘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그런 기자가 있는 줄 몰랐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름은 그의 부탁대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그 날 상황 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날, 비 오는 날 밤이었어요. 12시 자정쯤 잤을 거예요. 세시 좀 넘어 화장실 갔다 올 때만 해도 아무 일 없었어요. 새벽 다섯 시 좀 못 되어서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 소리에 잠을 깼어요. 시야가, 가시거리가 1㎝도 안 돼요. 밖에 나오는 계단으로, 비상구 옆의 가스 배관 타고 내려왔어요. 2, 3층 미처 못 내려온 분들은 연기에 질식사, 다 고인 되시고 3층의 몇 명만 내려오다가 떨어지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일분일초가 다급한 상황. 그는 자다가 일어나, 연기와 불길을 피해, 황급히 빠져나오느라, 외투 한 벌 챙길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지원해 준 구호 물품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우리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부자리 싹 타버렸어요 하물며 생필품까지 싹 타 버린 거예요. 전소됐어요. 구호품이라고 해서 치약 하나 양말 두 개 팬티 판 장 러닝 두 장, 라면 두 봉지, 통조림 하나 이렇게 구호품 갖다 준 거예요. 나 지금 이 슬리퍼(슬리퍼) 맞지도 않는 거 동에서 준거 신고 다니는 거예요. 맨날 입고 신고 하던 거 하나도 못 갖고 나와 속옷은 고사하고      


-국토부가 국일 고시원 화재 피해자에게 임대주택을 지원한다고 하던데 여러 가지로 도와주는 상황이 아닌가요?      


나의 물음에 그가 한숨을 쉬었다.      


엔에치에서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 살아라? 전기밥통이며 냉장고며 한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살려면 생활 도구는 있어야 할 텐데…. 그거 사려면 중고품이라도 3백만 원 이상 있어야 해요. 그리고 6개월짜리인데 거길 들어가려고 어떻게 그 돈을 써요(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종로구청이 피해 생존자들의 주거 대책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아 피해자들 가운데 다수가 임대주택에 입주할 기회도 놓쳤다고. 국토부가 참사 이후 피해 생존자에게 최장 20년 동안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는데, 종로구청에서 피해 생존자들에게 ‘6개월 한시 거주’를 할 수 있는 다른 제도를 설명한 탓에 피해자 대부분이 임대주택을 포기했다는 얘기). 우리는 십 년 정도를 종로 부근 고시원에서 지낸 사람들이에요 여기를 벗어나면 노숙자로 전락할 처지에요. 여기 사람들하고 어울려 지냈는데….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요….          


임대주택의 지리적 조건도 걸림돌이라고 했다. 고시원 거주자 대다수가 40~60대 일용직 근로자인데 종로·서울역 부근 '인력 시장'에 나가기 위해 새벽 4~5시경 집을 나선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임대주택은 서울 외곽이나 변두리에 집중돼 매일 교통비가 드는 데다, 일터에 늦어 일감을 구하지 못한다고 했다. 더욱이 그는 화재 후 후유증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멍때리고 있는 거예요. 무지무지 아팠어요. 한 시간 자고 20분 동안 또 졸리고…. 구토하고……. 누가 뭐라 그러면 화부터 나요! 다들 잊으려고 노력하죠…. 다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인데….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시원에 살게 된 사정도 털어놨다. 아내와 이혼 후, 고시원에 들어왔고, 최근에는 병까지 얻어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라면과 밥, 고시원에서 이 두 가지만 먹으며 세 끼를 해결하다 보면 건강이 나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쳇바퀴 굴리듯 계속됐던 고시원 생활과 건강 악화, 거기다 이번 고시원 화재까지, 그의 얼굴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산 삶을 방증하듯 힘없는 눈빛과 핏기없는 피부, 윤기 없는 수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국익고시원 화재 피해자를 대상으로 정부의 지원정책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국일고시원 같이 위험한 고시원이 얼마나 있을까? 다른 나라의 최저소득계층의 주거환경도 이렇게 열악한 것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을 찾았다.      



                 (화재 후, 국일고시원 내부. 창문이 있어 월세 5만원이 더 비싼 방이다. 사진=오마이뉴스)


-우리나라에 고시원이 얼마나 있나요?      


우리나라에 고시원은 전국적으로 만이천 개 정도 있습니다. 그중에 80% 이상이 수도권, 절반 이상이 서울에 있어요. 교통 좋은 곳에 가장 많이 있고, 서울시 관악구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시원도 있어요. 관악구는 고시원의 고향입니다. 고시원 입주자 백 명 중 오십 명이 이십 대 청년, 중장년층 노년층 20% 정도에요. 국일 고시원이 있는 종로 일대에만 고시원이 100여 개가 있어요.      


-이번 국일 고시원 화재의 경우, 월세 5만 원을 더 내서 창가에 사는 사람들은 살고, 안쪽에 계신 분들은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다른 고시원들도 마찬가지인가요?      


대부분 마찬가지예요. 특히 1평도 안 되는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은 한 방에서 불이 나면 옆방으로 불이 붙기 쉽습니다. 바퀴벌레가 나오고, 남녀 화장실 구분 안 되어 있는 고시원도 있어요.      


-그 정도면 이번 국일고시원처럼 스프링클러가 설치가 안 된 고시원이 많겠네요?      


스프링클러 설치를 법으로 정한 건 2009년 7월 8일부터예요. 그 이전에 생긴 건물은 스프링클러 설치 안 된 거죠. 소급적용이 안 되고요. 그래서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된 거죠. 2009년 8월 이전에 생긴 고시원이 삼천사백 개 정도인데. 소방관련법 있되, 지켜지지 않는 거죠.      


그러면서 최은영 소장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최근 국제 포럼에서 해외 전문가가 우리나라의 보증금 규모를 듣고 ‘휴즈(huge)~’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그녀는 보증금이 말도 안 되게 뛰어올라도 우리나라는 국가가 주거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런 사람들을 버리고 갔던 것 같아요. 여전히 그렇게 열악한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게 잘 안 보이는 거죠. 미국의 경우, 주거비를 지원하면, 실제로 그들이 지원받은 주거비로 적합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다 확인하고, 관리해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거지는 제재를 받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거비만 주고, 나머지는 챙기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주거정책, 취약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까지 마무리하고, 방송일에 맞춰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방송에 내보내지 않길 바라는 부분이 있으신 걸까? 전화를 받자 그가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지난번 인터뷰하신 거 출연료가 있나요?"      


'아,'     


안 그래도 출연료가 있어서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다고. 그에게 본인 명의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문자로 남기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6만 원. 취재에 협조를 구하고자, 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출연자에게 주기 위해 책정해 둔 금액이었다. 마침 청구를 하려던 참 이었는데 그가 당장 몇만 원이 급해서 전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 않던 슬리퍼도 떠올랐다. 내 통장 계좌를 확인해보니 적금과 카드, 각종 요금 외 최소 용돈을 빼고 나면 5만 원 정도는 보낼 수 있었다. 10만 원도 아니고 5만 원이라는 액수를 보고 괜히 기분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그래도, 한 푼이라도 보태면 살 물건이 있으실 거란 생각에 그의 계좌에 돈을 이체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정말 약소하지만, 저도 작은 기부금을 선생님 계좌로 보내드렸습니다. 출연료도 다음 주 방송 이후에 별도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따뜻한 밤 보내세요”     


그러자 한 시간쯤 지나 문자가 왔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문자를 받고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짧은 문장이지만 무덤덤했던 그의 성향상 최대의 표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그의 문자는 문자보관함이 넘쳐 다른 메시지를 삭제할 때도 계속 지우지 않고 있다.      


5만 원과 출연료 6만 원을 다 쓰고 난 다음 그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아직도 그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을까? 고시원을 전전하며 알음알음 돈을 얻는 거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최근 화재 현장에서 추모제가 있었다는 뉴스를 봤다. 추모제에 참여한 이들은 빈곤과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희생자들이 영면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살아남은 그가 떠올랐다. 살아남은 그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니,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오늘도 종로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위해 부디 올 겨울이 덜 추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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