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저 사람들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법인택시는 내가 비켜줘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었다. 나한테만 관심이 있었다. 내 미래, 내 돈, 내 시간.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사람에 관심이 생겼다. 뭐랄까. 사람이 좋아졌다. 특히 어른들이.
회사에서 청소하시는 어머님만 봬도 괜히 말 한마디 더 건네고, 아버님들을 보면 뭔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분위기면 궁금한 거 하나씩 툭 던져본다. 그러다 보면 '요즘 트럼펫을 배운다', '우리 손자, 손녀는 몇 살이다'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갈 때가 있다. 특히 택시가 그렇다.
나는 택시를 타면 괜히 기사님께 이 말 저 말 건네본다. 그러면 택시 운전기사분들은 대체로 잘 받아준다. 말동무가 돼준다면야 언제든 반기는 분들이다. 특히 차를 타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데 대체로 클래식이나 기독교 채널 방송을 듣고 계신 분들이 차분하게 자기 말을 잘해주신다.
그래서 오늘도 잠시 택시 타고 근처를 가는데 말 한마디 건넸다. 기독교 라디오 채널의 음악을 듣고 계셨다.
"아유 기사님 근데 최근에 택시 기본요금이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관심분야로 말을 건네서일까. 기사님이 눈꺼풀이 순간 멈칫했다.
"아마 얼마 안 됐죠"
예상대로 차분한 목소리셨다.
"그런데 사납금은 더 올라서 힘들다고 하시던데..."
"그러면 일을 할 수가 없죠. 회사에 내는 돈을 올려버리면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저는 개인이라 잘은 몰라요. 근데 법인은 하루 12시간 일하고 얼마 받지도 못할 텐데..."
"그러니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자 이내 기사님이 말했다.
"법인회사도 회사 나름대로 200대 갖다 놓고 세워놓는 차가 많으니까... 회사를 운영하려면 돈을 받아야 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기사들도 돈이 안되면 버티겠어요. 차라리 택배 배송을 하지"
"200대요?"
"택시 차를 200대면 200대, 100대면 100대 갖다 놓고 회사도 운영을 하는데 요즘 기사가 계속 준다는 거죠."
...
"그럼 회사는 사납금 더 올리고, 기사분들은 더 힘드시겠네요"
"그렇죠. 그러다 보면 기사는 나가고 아예 회사는 폐업하고 그러는 거겠죠"
다시 적막이 흘렀다. 이번엔 내가 운을 뗐다.
"그러면 법인에 계시는 분들은 차를 살 돈이 없는 분들이 신 건가요?"
그러자 기사님, 이번엔 라디오볼륨을 줄이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개인택시를 하려면 차도 사야 하지만, 일단 자격도 돼야 돼요. 개인택시 운전하려면 일단 범죄 이력이 있으면 안 되고, 금치산자 이런 것도 경찰에서 다 보거든요.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야 돼요. 법인택시에서 일을 했거나 운전 관련 경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되고. 오랫동안 무사고여야 돼요.
그러고 나면 또 개인택시 T.O가 있거든요. 퇴직하는 분들이 자기 택시 번호를 팔거나 이제 택시 안 하는 분들이 팔거나 그러는데. 그게 또 정부에서 허가해 준 업체들이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경매처럼 팔아요"
"아, 무사고여야되고, 돈도 있어야 되고 쉽게 되는 건 아니네요"
"그렇죠. 돈이 그래도 1억 5천 정도는 있어야 돼요"
"1억 5천이요? 그렇게 많이 드는 줄 몰랐어요"
"근데 뭐 요즘 사업하는데 1억 5천은 다 들지 않겠어요?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 그 정도는 들죠"
"아..."
짧은 침묵이 또 이어졌다.
"그럼 법인택시하시는 분들은 자격이 안되시거나 아직 돈이 없으신 거라고 봐야 할까요?경력이 필요한 분들이시거나요"
나는 다시 여쭤봤다. 망설이시던 기사님이 답했다.
"그렇다고 봐야겠죠. 법인은 법인이 책임을 지잖아요. 법인은 기사 신상정보 이런 거는 자세히 안 볼 수도 있거든요. 돈이 없을 수도 있고요."
그러더니 뭔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말을 덧붙이셨다.
"12시간 운전해도 한 달에 200 좀 넘게 가져갈 거예요. 10시간 운전했다가는 200도 안될 수도 있고요. 하루 12시간 운전만 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렇죠. 일반인은 3~4시간 장거리 운전만 해도 힘든데요"
나도 공감했다. 나 역시 낯선 곳을 운전할 때는 긴장을 해서 그런지 30분도 안 돼서 목이 뻐근할 때가 많았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가자 차 안에 친숙한 공기가 흘렀다. 기사님이 웃으며 물었다.
"개인택시하시려고요? 왜 이렇게 자세하게 물으십니까? 하하"
나도 웃으며 솔직하게 답했다. 이럴 때는 솔직한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 사실 제가 라디오 방송 만드는 사람인데, 저희 방송을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께서 많이 들으시거든요. 근데 모르고 있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게 들으시는 분들 위해서 좋을 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하하"
그러자 기사님이 살짝 놀란 듯 반겨했다.
"그렇죠. 모르고 하면 듣는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장난하나 할 수도 있죠"
글로 옮기면 상당히 무서운 표현이었으나 기사님의 목소리가 워낙 차분해서 전혀 무섭지 않은,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그러자 기사님은 이참에 제대로 알려줘야 되겠다 싶었는지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시죠. 저기 택시 번호 보면 옆에 회사 이름이 적혀있죠. 작게"
"아, 네네 그렇네요"
무심코 지나쳤던 택시 번호판 상단에 회사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힘든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내가 웬만하면 법인택시는 비켜줘요"
담담하게 말하시지만 어찌해줄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났다.
"그러시군요..."
그렇게 대화가 오간 후 어느새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인사를 건넸다.
"어유 감사합니다. 자세히 잘 가르쳐주셔서. 이런 건 책에 없더라고요"
"책에는 뭐 대단한 것만 있죠"
기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답했다.
"아휴 말씀해 주신 내용도 대단한 거죠. 직접 들어야 배울 수 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내렸다.
다시 말하지만, 애 낳고 키워보니 가족의 생계를 지키고, 자식 키우는 분들은 어떤 직종에 계시든 다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시는 책임감 있는 분들. 그리고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 그래서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다음 방송에서는 줄도산하고 있는 택시업체에 대해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