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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10. 2023

오늘, 나를 살게 하는 한마디

잘생긴 아들의 "아바(아빠)!"

우리 둘째는 29개월 차 아들이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자기 평생에 잘 생긴 아들이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이 정도로 잘생길 줄 몰랐단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팔불출 아빠려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사실 나도 우리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 녀석 참 시원하게 생겼네’ 라며 흐뭇할 때가 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 눈에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며 염려스러운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언어, ‘말’이었다.

우리 아들이 태어날 때는 한창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아들은 돌이 됐을 즈음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1년 반을 하루 중 5시간, 길게는 8시간을 마스크를 쓴 선생님을 보며 자랐다. 그러니까 말을 할 때 사람의 입 모양이 어떤지 보질 못한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사람의 입 모양과 표정을 보지 못해 언어 발달이 우려스럽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정말 그래서일까. 둘째는 유독 말이 느렸다. 돌이 한참 지나서 ‘엄마’를 했다. 보통은 돌을 전후해서 ‘엄마’, ‘아빠’를 하고, 20개월 즈음이 되면 ‘조아, 시러, 저거’ 등을 표현한다.

그리고 29개월 즈음이 되면 ‘아빠, 어디가?’, ‘안아 줘’, ‘먹고 싶어’ 등 두 음절을 이어 표현한다고 한다. 그런데 29개월 차 우리 아들은 아직 ‘엄마’, ‘가’, ‘자자’, ‘가자’ 등 한 음절의 표현만 했다. 그리고 몇 번을 말해도 도통 '아빠'를 하지 않고, 남편을 '엄마'라고 했다.


결국 남편은

"그래. 내가 네 엄마다 엄마"

그러며 아들의 볼에 뽀뽀 폭격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쯤 아빠를 할까. 우린 염려했다.


그런데 말이 느린 이유를 코로나 때문이라고만 보기엔 또 무리가 있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한 살 차이 첫째나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은 말을 곧잘 하기 때문이다.

내가 둘째의 언어 발달 상황을 본격적으로 염려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어느 날, 어린이집 하원길에 두 아이를 맞는데 뒤 편에 둘째보다 7~8개월 동생인 한 아이가 나에게
“안녕"
하며 손짓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함께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희망이는 아직 ‘안녕’을 저렇게 못하는데...‘하며 새삼 놀랐던 적이 있다.

또, 하루는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는데 나처럼 21년생 아들이 있는 동료가 아들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제는 글쎄 그 녀석이 핸드폰 사진을 손가락으로 슥슥 넘기면서 ’ 재미없어 ‘라고 하더라니까요 “

그분의 아들은 우리 아들보다 5개월 늦게 태어났다. 그 말을 들으며 아직 세 음절 이상의 단어를 발음하지 못하는 우리 아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한번 상담을 받아봐야겠다.‘ 

그렇게 나는 아들을 데리고 언어발달센터를 찾게 됐다. 그리고 검사 후, 일주일 뒤 전화 상담과 보고서 형식으로 결과를 듣게 됐다.

”00 이의 경우, 지금 개월 수 기준 1년 정도 언어 발달이 늦은 것으로 분석이 됩니다. 주 1회 언어 치료를 권고해 드립니다 “

”.... “


또, 상담가님은 자폐나 다른 부분으로는 염려가 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주로 장난감을 오래 쳐다보며 분석하며 놀다 보니 기질도 언어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온갖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일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다고 일을 안 하면 어린이집에는 아예 안 보낼 건가?’

‘사실 상담 끝나면 치료 권고는 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잖아? 다들 그런다던데’
‘일단 오늘부터 아들이랑 하루에 하나씩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기를 해봐야겠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상담 결과가 나의 구체적인 행동의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둘째와 정확하게 발음하는 단어를 늘여가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아빠’, 엊그제는 ‘눈, 코, 입’ 놀이를 했다.
그리고 어젯밤, 둘째가 이불 위에서 구르기를 하며 뭐가 맘에 들지 않는지 평소처럼 ‘엄마, 엄마, 엄마’만 부르며 떼를 쓰다가 반응이 없자


 "엄마, 엄마, 아바! 아바!!!!!"

를 동시에 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전보다 더 정확해진 둘째의 발음에 기뻐

”오, 이제 00이 아빠 잘하네~“

떼쓰는 아들의 엉덩이를 두들겨주었다. 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떼만 썼지만.

한 차례 소동 후, 아들을 씻겨주고 옷을 입히는데 거실 조명에 반사된 아들의 얼굴 어귀의 솜털이 반짝 빛났다.


아직 하얀 아들의 솜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느려도 괜찮아. 사실 느리고 빠르고의 기준도 어른들이 정한 거야.'


작고, 여린, 그리고 조금 천천히 말을 배우고 있는 내 아들

나는 앞으로 아들의 언어 발달에 대해 느리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아들은 느리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들은 '아빠', '안녕', '과자', '김밥', '여기', '잘 자', '눈, 코, 입' 등을 더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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