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게 웃는 게 죄책감이 느껴지는 날이다. 함께 사무실에 있던 부장님이 회사를 떠났다. 지금 그분의 가족들분위기는 어떠할까. 몇십 년을 다닌 회사를 이렇게 마무리하는 그분의 심경은 어떠할까?
리더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사무실이란 공간에서 몇십 년을 함께 한 사람을 이렇게 떠나 보내도 되는 것일까. 세상이 원래 이런 것인가. 그분이 짊어진 책임에 우리의 몫은 없는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무거운 나의 마음과 상반되게 마지막 그분의 인사는 가벼웠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너를 보고 힘을 많이 얻었네. 고마웠으나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네. 건강 잘 챙기고, 그래야 좋은 날 만난다”
갑작스러운 그분의 메시지에 그제야 소식을 안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드렸다.
“뭘 전화까지 해.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거고, 후배들은 후배들의 길을 가는 거지. 나는 뭐 잘 지낼 테니까(웃음)”
그분다웠다. 그러시며 정말로 나를 보며 힘을 얻었다며, ‘꼬르륵이 변했다’라며 기특해했더니 다른 동료가 ‘꼬르륵은 원래 그랬어“라고 했다며 사담까지 곁들이셨다.
허리 수술 후, 복대를 차고 근무하시던 모습, 술 취해 노래 부르시던 모습, 회식 때 실언도 종종 하시던 모습, 어깨를 들썩이며 웃으시던 모습, ’장‘이 되신 후로는 말을 아끼시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또다시 떠오르는 현실은 리더는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그분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기특했었다"라는 그분의 말이 내내 마음에 오래 머문다.
그러면서 S장님 이전에 그 자리에 계셨던 K장님도 생각이 났다. K장님은 늘 느긋하시고, 정말 안 먹는 분이셨다. 책상에 CD를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두 사람이 먹을 양을 내게 시켜주시던, 그러나 정작 본인은 1인 식사량도 드시지 않던 부장님.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분이라 회사에 적이 없는 분이셨다. 퇴직 후 귀향을 결정하신 K장님은 당시 막내였던 나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꼬르륵이 앞으로 OO랑 00처럼 라디오국을 끌어갈 거로 생각해.“
당시 그분이 건넨 덕담은 과분했다. 나는 막내였고, 그 말을 들을 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종종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실수를 연발하던 때라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였다. 그 후로 그분이 내게 남긴 말을 나는 내내 마음에 담고 회사 생활을 했다.
어떤 이가 떠날 때 하는 말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정작 말을 한 사람은 잊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남은 사람은 삶을 살아간다.
현실이 차갑다.
나를 기대해주고, 격려해주신 S님이 평안하시길, 건강하시길 마음으로나마 바라본다.
S장님이 언젠가 말했다. 조직생활은 마라톤같다고.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길게 봐야 한다고...그 말씀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