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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Aug 17. 2020

둘째 아들

서운함과 후회 

  너와 나를 연결했던 탯줄이 끊어졌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집 근처 공원을 두리번거리며 너를 찾는 내 눈빛은 멍했고 우리 사이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린 느낌으로 두려웠다. 집에서 나가라는 내 말에 화가 나 현관문을 쿵 닫고 나가버렸던 네가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의 공원에 있을 리 없는데도 너를 찾아 헤맬 수 있는 곳이 이곳밖에 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마스크 한 장, 우산 하나 없이 밖으로 뛰어 나간 너는 어디에 있을까?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두 아들은 거실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게임을 했다. 기말시험 마지막 날 아침에 공부 대신 게임을 선택한 첫째 아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내가 잔소리한다고 달라지지 않기에 그냥 두고 봤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둘째가 오전 시간을 모두 게임으로 날려버려도 그 또한 아들이 경험해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기에 두고 보는 중이었는데 게임 도중 거칠어지는 말들이 자꾸 귀에 거슬렸다. 나름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묵묵히 아침에 내가 해야 하는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아침 청소와 세탁물을 모으며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둘째의 거친 말들이 자꾸 내 귀로 들어와 잔소리가 되어 입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질세라 아들도 내 말에 대꾸를 하였고 결국 말의 꼬리에 꼬리가 더해져 괴물의 머리가 되어 우리 둘을 집어삼켰다. 성격 비슷한 아들과 난 오늘도 이렇게 또 붙었다. 

 참으려 애쓰지만 결국 못 참고 다 말해버리는 이 구역 미친년 엄마와 화가 나면 가슴의 뜨거운 감정들이 머리를 거치고 못하고 입으로 먼저 나와 버리는 사춘기 아들의 전쟁이 또 시작되었다. 아들은 내 말에 화가 나서 게임 중이었던 키보드를 내리쳤다. 

“그래? 이제 힘으로 하겠다는 거야? 그래 한 번 해봐” 

난 아이가 사용하던 아이맥 전원을 빼서 냅다 던져버렸다. 아이가 사용하던 휴대폰, 아이패드, 방에 있는 공유기까지 모두 거실로 갖고 나와 던져버렸다. 물론 소파 위로 던졌다. 이쯤 되면 아들과 난 속으로 생각한다. 

 ‘아! 잘못 건드렸다.’ 

난 아들과의 싸움에서 주고받은 말로 마음이 무너져 내려 아팠고, 아픈 만큼 화가 났고 지나온 내 시간에 대해 연민이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응급실 간호사 일을 그만두었고 너희가 지금 공부하는 것보다 천 배는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다고 이야기했다. 그 모든 것을 없었던 일처럼 묻어 버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냐고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가 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드라마에서는 아들이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눈물이라도 흘리며 반성을 하겠지만 현실 아들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 확인 화살을 꽂는다. 

 “꼰대같이...”

집안 조명 색깔이 달리 보였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도 아들에 대한 화도 싸늘히 식었다. 내 감정의 색도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들에게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은 집을 나갔다. 아침 식사도 못한 채, 휴대폰, 우산, 마스크, 천 원 한 장 없이. 

네가 나간 지 10분도 안되어 찾아온 불안감에 넋이 빠져 공원에서 널 찾으면서도 땅 위를 걷는지 빗물에 미끄러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말고사인 첫째 아들의 식사를 대충 챙겨주고 차를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내 눈은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둘째 아들이 아닌가 싶어 두리번거렸다. 나의 운전도, 내 마음도 위태로웠다. 둘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두 시간이 흘렀다. 오늘따라 일찍 하원 하는 막내딸 셔틀버스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연락할 수 있는 곳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다시 공원을 헤맸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마음 편히 연락할 어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말고는 믿고 의지할 어른이 아이 옆에는 없었다. 난 아이의 모든 것을 빼앗고 보호의 울타리에서 나가라고 폭력을 행했다. 아파트 놀이터를 가고  가고 또 가봤다. 혹시나 싶어 밖을 헤매면서는 집에 전화도 계속 걸어봤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아파트 주위를 계속 살펴봤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있을까? 유난히 폭우가 자주 쏟아지는 장마기간인데 오늘만이라도 비가 잠시 그치기를 기도했다.

 막내딸은 유치원에서 돌아왔지만 둘째 아들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남편은 걱정이 되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울고 싶었다. 나의 감정상태를 걱정하는 남편에게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불안하다고 했다. 창 너머 보이는 천호대교 위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와 한강 수상구조 보트가 내 심박동 수를 더 빠르게 한다. 후회했다. 아이에게 했던 말들과 행동을 곱씹을수록 가슴이 아팠다. 한강 수위가 높아져 한강공원 진입로를 차단한다는 재난 문자가 연달아 왔다. 아이는 휴대폰도 갖고 가지 않았는데 진입로가 막힌 줄도 모르고 한강공원을 헤매고 있으면 어떡하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마음이 지옥이다.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여섯 살 막내딸을 데리고 둘째를 찾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차라리 어느 PC방에서 엄마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하게 게임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안심이라도 하겠는데. 혹시나 몰라 아들이 운동하러 다니는 체육관에도 연락해보고 갈 만한 아들 친구에게도 메시지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다.

 첫째 아들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동생의 게임 기록을 확인해달라고 문자를 남겼다. 큰 아들은 동생 게임 계정 확인 후 둘째가 집을 나간 이후로는 게임을 한 기록이 없다고 하였다. 난 불안이 똘똘 뭉쳐 이제 가슴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아침도 안 먹고 휴대폰도 없이, 돈 천 원 없이, 마스크, 우산도 없이 밖에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아이의 말에 너무 화가 나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상태로 아이를 밖으로 내몰아버린 나의 폭력성이 부끄러웠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지금까지 남의 육아에 훈수를 두었을까. 앞으로 자식 키우는 것에 대해 한마디도 아는 척하지 말자.

 창밖은 또 빗줄기가 굵어지려 했다. 막내딸에게 쓰레기 버리고 오겠다며 잠시 혼자 있으라 안심을 시키고 또 아파트 놀이터로 가보았다. 아들이 그네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비를 맞고 있었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가가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에 들어가자 하였고 아이는 갑작스러운 나의 손에 놀라면서도 뿌리치지는 않았다. 여전히 아들의 화는 안 풀렸지만 그것조차도 내 손길을 원하는 하나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자. 엄마가 잘못했어.”

우리의 끊어진 줄을 다시 잇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집으로 들어왔다. 서둘러 추어탕을 따끈히 데워 밥 한 공기를 말아 아이를 식탁 앞에 앉게 했다. 힘없이 식탁에 앉은 아들을 보고 있으니 울컥했다. 아들은 국에 만 밥을 힘겹게 떠서 입에 넣었다. 얼마나 배고팠을까? 얼마나 맘이 시렸을까? 비 오는 날 오랜 시간밖에 있었던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봐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한숨 자라 일렀다.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은 쉬겠다며 학원 선생님께 문자를 남겼다.

자고 났지만 저녁에도 잔뜩 움츠려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둘째 아들 방으로 가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얼마나 후회했었는지, 걱정했었는지 이야기했다. 연년생 형제의 동생으로 살아오면서 아이가 느꼈을 상처를 보듬으려 애썼다. 아이는 나의 말에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굳게 닫혀있었다. 진심으로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으나 아이에겐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남편에게 막내딸을 맡기고 둘째 아들만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나는 둘째 아들을 옆자리에 태워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나도 말없이 운전만 했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FM 실황 음악만 들렸다. 가사 없는 음악이 주는 위로가 있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계속 차를 몰았고 우리는 침묵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다 보니 암사 유적지 근처 공터였다. 차를 세우고 그냥 빗속에서 앉아 있었다. 아들에게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 하였다. 10분이 흐르고 드디어 힘겹게 아들이 한마디 건넸다.

“미. 안. 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엄마도 정말 미안해.”

우리는 그렇게 하루 동안 서로에게 쏟은 말과 행동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후회를 서로에게 말로 표현했다.

아들의 말과 태도에 내가 상처를 입듯 나의 분노 쌓인 말에 아이도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내가 분노하여 뱉은 말을 10분도 안 되어 후회하듯 사춘기 아들도 감정조절 안되어 나에게 버럭 거렸던 말을 곧 후회한다. 그러니 너무 상처 받지 말자. 그리고 아이가 착한 행동이든, 웃든, 울던, 화내든 결국 부모에게 관심과 사랑을 달라는 표현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를 화나고 슬프게 했던 아들이 여전히 나에게 원하는 것은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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