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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Aug 20. 2020

My hands Flex

Show me the hands

   눈에 띄게 혈관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손등, 매니큐어는 엄두도 못 내고 짧게 깎이는 것에 익숙한 손톱. 누가 만져 봐도 거친 손의 촉감, 몇 해 전 손가락이 아파 찾았던 병원에서 퇴행성 관절염이 의심되니 손을 아껴 쓰라 들었던 나의 손.  

  난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응급실 간호사였다. 환자의 피부를 더듬어 혈관을 찾아내어 주삿바늘을 찌르고 채혈을 했다. 혈압, 맥박을 측정하고 상처를 소독하는 모든 간호 행위는 내 손을 거쳐서 환자에게 전달되었다. 심정지 환자를 위해 두 손 포개어 환자의 가슴에 얹어 체중을 힘껏 실어 흉부압박을 하였고 119를 통해 병원에 온 환자들을 번쩍번쩍 들어 응급실 침대로 옮겼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 나의 손등 혈관을 발달하게 했고 수없이 사용한 알코올 손소독제는 보습제로 감당할 수 없는 건조함을 내 손에 남겼다. 10년의 간호사 생활이 남겨 준 흔적과 습관이 여전히 내 손에 남아 있다. 하지만 간호사의 세월이 새겨져 있는 그 손이 밉지 않다. 후배 간호사들이 환자의 혈관을 찾느라 애를 쓰다가 마지막으로 찾는 것이 나의 손이었고,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의 눈을 감겨주고, 흐느끼거나 대성통곡하는 보호자들의 어깨를 감싸줬던 손이 바로 간호사로서의 내 손이었기 때문이다. 

  간호사 생활의 고된 흔적을 담은 손은 병원을 그만둔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늘 바쁜 남편과 연년생 두 아들을 집에서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17년 동안 내가 욕실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머리카락 뭉치를 모으면 커다란 눈사람 하나는 거뜬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차곡차곡 개었던 옷가지며 쓸고 닦았던 바닥 면적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다듬어 씻고 썰었던 식재료는 과연 몇 인분이 될까? 4인분*2끼*365*17년=49,640인분≑4만 명분은 될 것이다. 6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온 김장김치는 그다음 해 김장할 때까지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이었고, 계절에 맞춰 오이소박이, 파김치, 열무김치를 몇 번씩 담갔다. 또한 2년에 한 번 간장, 된장, 고추장까지 담그고 있으니 배달음식, 외식을 제외시키더라고 4만의 숫자는 심하게 비약된 계산은 아닐 것이다. 5년 전 합류한 셋째 늦둥이 돌봄까지 포함시키면 내 손은 타인의 돌봄에 매우 최적화되어 있다. 손수 김치와 장 담그기를 하는 나를 보며 좀 더 편하게 돈 주고 사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지인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계절마다 김치와 장을 담그는 것은 경제적, 미각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소품 하나 멋지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나는 일명 똥손이다. 그런 내가 가족들의 의식주 생활을 오랫동안 책임지며 단련된 손으로 유일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이 나에겐 음식이다. 주부라고 다 하지는 않는 또는 못하는 김치, 고추장, 간장, 된장을 만들어내는 바지런한 내 손이 좋다. 

  마흔에 막내딸을 얻고 나서는 내 삶의 시곗바늘이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를 돌보기 위해 내 손을 사용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찾은 것이 요가이다. 5년 전 처음 시작한 요가는 분명 나이와 임신으로 인한 체중 증가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내 몸을 들여다보고 내 맘의 상태를 알아차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가 동작 중 아도무카 스바나사나(다운독 자세)에서 바닥을 짚을 때 손가락 하나, 하나를 매트에 붙이고 손끝으로 지구를 움켜잡듯이 힘을 주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까지 그 단단함이 느껴진다. 다른 동작에서도 마치 발이 바닥을 단단히 딛고 서있는 느낌으로 손바닥과 손가락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손을 바닥에 단단히 짚기 시작하여야 그 힘으로 팔, 어깨, 척추를 관통해 나의 하체를 팔뚝에 올리고 균형을 잡아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리면 바카아사나(까마귀 자세)가 되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연습과 실패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 그 아사나가 되었을 때 순간이지만 참으로 행복함을 맛볼 수 있다. 이제는 손바닥으로 내 온몸을 지탱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꾸로 세워보는 아도무카브륵샤아사나(핸드 스탠드)에 도전해보고 싶다. 평상시에 발로 서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의 몸이 위아래가 바뀌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어 새로운 동작을 할 때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환희가 있다. 요가를 하며 내 손을 통해 난 나를 돌보고 있고 가끔씩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어 행복하다. 


U know the history of my hands? 

난 좋아, 간호사였던 내 손! 

사랑해, 너를 돌봤던 내 손! 

리스펙, 나를 돌보는 내 손! 

Hey~ Listen~ 

Flex~ Flex~ my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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